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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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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액 테러’ 당한 女교사 “텀블러 안에 손소독제 같은 게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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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측 "피해자에게 직접 체액 묻힌 게 아닌 텀블러에 묻혔기 때문에 추행 아닌 재물손괴죄 적용"

세계일보

JTBC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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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남학생으로부터 체액 테러를 당한 교사가 "텀블러 안에 손 소독제 같은 게 떠 있었다"며 피해 상황을 자세히 토로했다.

JTBC '사건반장'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여교사 A 씨는 한 남자고등학교에서 계약직 교사로 일하던 중 체액 테러를 당했다.

당시 기숙사에 있는 야간 자율학습실에서 학생을 감독하던 A 씨는 쉬는 시간에 화장실을 갔다. 약 7분 뒤 자리로 돌아온 그는 자신의 텀블러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고.

A 씨는 "물을 마시려고 텀블러를 들었는데 입구가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 있었다. 이건 누가 무조건 뚜껑을 열었다가 닫았다고 생각했다"며 "처음 텀블러를 열었을 때는 손 소독제 같은 게 벽에 붙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너무 화가 났다. (텀블러) 바로 앞에 손 소독제가 있었다. 일부러 나를 골탕 먹이려고 손소독제를 넣은 줄 알았다"면서 곧바로 기숙사에 있던 상담 교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고 전했다.

학생들이 아무도 자수하지 않자, A 씨는 학교 복도 CCTV를 확인했다. 그러자 A 씨가 자리를 비운 그때, 자율학습 중이던 한 남학생이 A 씨의 텀블러를 가지고 세탁실과 정수기 쪽으로 갔다가 다시 교실로 돌아오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CCTV에 포착된 문제의 학생은 "자습실에서 음란물을 보다가 순간 교탁에 있던 A 씨의 텀블러를 보고 성적 충동이 들었다"며 "그래서 체액을 넣었는데 다시 씻으려고 세탁실 내부의 세면대로 갔다"고 자백했다. 당시 자습실에는 잠을 자는 다른 학생들도 있었다고.

학생은 "텀블러를 씻으려고 했는데 잘 씻기지 않았다. 대신 물이라도 받아야겠다 싶어서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 다시 교탁에 올려놨다"고 덧붙였다.

A 씨는 해당 학생과 이날 처음 만나 일면식도 없어 원한을 살 일이 없었다고 한다. 사건 이후 A 씨는 나흘간 병가를 썼고, 학생은 2주 정도 근신 처분을 받아 등교하지 않았다.

당초 A 씨는 "학생 인생에 전과가 생기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선처했고, 학교 측은 학생에게 '특별 성교육' 등의 자체 징계를 내리는 것에 그쳤다.

그러나 A 씨는 학생과 그 부모가 사과하지 않고, 학교도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에 결국 학생을 경찰에 신고했다.

특히 A 씨가 학교 측에 산재 처리와 교육청 신고를 요구하자, 학교 측은 "산재 처리는 개인이 알아서 하는 거다. 시일이 지난 일이라 지금 하면 벌금을 내야 하니 신고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A 씨는 "학생은 반성하는 것 같지도 않고 학교 측도 '얌전하고 착한 학생'이라고 학생을 감싸면서 2차 가해를 해 고소하게 됐다. 고소하니 '무슨 꿍꿍이냐'고 비난했다"고 주장했다.

현재 A 씨는 트라우마로 정신과에 다니고 있다고 한다. 경찰 측은 "피해자에게 직접 체액을 묻힌 게 아니고 텀블러에 묻혔기 때문에 추행이 아닌 재물손괴죄를 적용했다"고 밝혔다.

해당 사건이 알려진 후 도 교육청은 "감사관실에서 학교 방문 등을 통해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해 대응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한겨레에 따르면 체액 테러 사건은 피해자에게 성적 불쾌감을 준다는 측면에서 성범죄의 성격을 띄지만, 관련 법 규정이 없어 주로 타인의 물건을 손상시킨 혐의(재물손괴죄)로 다뤄진다.

체액 테러 같은 비접촉 성범죄 처벌 입법 공백 문제는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꾸준히 제기됐다.

법무부 디지털 성범죄 등 전문위원회도 2022년 “온·오프라인 상에서 다양한 형태로 발생하는 성범죄를 방지하기 위해 ‘성적 인격권’ 침해 범죄를 신설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체액 테러나, 메타버스상 캐릭터를 대상으로 한 성적 괴롭힘처럼 신체접촉 없이도 성적 불쾌감을 유발하는 성범죄가 늘어나는 만큼 이를 처벌할 법조항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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