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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적개심이 된 ‘지못미’…검찰 정치보복성 수사가 부추겨 [이철희의 돌아보고 내다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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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22년 5월23일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13주기 추도식. 무대 옆 대형 화면에 노 전 대통령의 생전 사진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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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죽음과 박근혜 탄핵으로 품게 된 ‘지못미’의 감정적 앙금 때문에 두 당은 각각 피해의식으로 뭉쳤고, 상대에 대한 적개심으로 전의를 불태웠다. 두 당은 서로를 경쟁자가 아니라 적으로 여기게 됐다. 자신들은 억울한 피해자, 상대는 무도한 가해자였다. 지지 정당에 대한 애착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증오가 당파성의 중핵으로 자리 잡게 됐다.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정치 양극화가 무조건 나쁜 건 아니다. 정당이 번갈아 가며 집권하더라도 정책이 바뀌지 않고, 내 삶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정치에 참여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경쟁하는 정당들이 사회의 주요 균열과 쟁점에 대해 서로 다른 해법을 제시함으로써 유권자들을 투표장으로 나오게 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필요조건이다.



하지만 정당 간, 즉 정치 엘리트나 활동가들 그리고 지지자들 사이에 ‘우리 편애, 그들 적대’(in-party favoritism out-party animus)의 정서적 양극화는 심각한 해악을 끼친다. 가장 우려스러운 점이 선거 기능의 무력화다. 집권자나 정당이 잘하는지에 대한 평가, 여러 정당들이 제시하는 대안에 대한 호오가 아니라 어느 편인지에 따라 지지와 투표가 결정되면 승패만 남고 달라지는 게 없는 단순 이벤트로 전락하게 된다.



정서적 양극화는 감정(affect), 즉 자존심이 상하거나 상대를 미워하는 혐오감을 자극하는 어떤 계기를 통해 활성화된다. 저잣거리의 그것처럼, ‘이렇게까지 할 일이냐’, ‘우리를 다 죽이겠다는 거네’ 따위의 정서적 내러티브가 생기게 되면 싸움이 거칠어지기 마련이다. 우리 정치사를 가까이 되돌아보면 두 번의 중대 계기가 있었다. 2009년의 노무현 전 대통령(노통)에 대한 수사와 그의 서거, 2017년의 박근혜 대통령(박통) 탄핵과 적폐청산이다.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은 2007년 대선에서 압도적인 차이(22.5%포인트)로 승리했고, 다음 해 4월 총선에서도 153석을 얻어 81석의 민주당에 대승했다. 이 정도 격차면 퇴임한 전직 대통령을 정쟁에 끌어들일 이유가 없다. 왜 그랬을까? 파국의 드라마는 총선 직후 5월부터 있었던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에서 시작됐다. 정부의 굴욕적 협상과 광우병 우려로 도심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고, 대통령이 사과성명을 낼 정도로 이명박 정부는 궁지에 몰렸다. 대통령 지지율은 21.2%(한국갤럽, 5월), 17.2%(미디어리서치, 6월)까지 떨어졌다. 위기였다.



“이명박 정권은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했다.” 수사 책임자 이인규의 언급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6개월만에 사퇴 압력을 받고 잇따라 대국민 사과성명을 발표하는 판에, 전직 대통령은 현실 정치나 사회에 대한 발언을 이어가고 봉하마을을 찾는 국민들이 넘쳐나자 여권에서 정치적 위기감을 느꼈다는 것이다.”(이순혁, ‘검사님의 속사정’) 요컨대, 수세 탈출의 반전 카드로 노통에 대한 검찰 수사가 선택됐다는 얘기다.



2008년 국세청의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탈세 고발 사건으로 시작된 수사로 12월 노 전 대통령의 형이 구속됐다. 이듬해 1월 새로 부임한 이인규 대검찰청 중수부장과 우병우 중수1과장 등이 수사를 확대해 노통 관련 수사를 밀어붙였다. 검찰이 4월30일 그를 공개 소환해 망신을 줬고, 노 전 대통령은 채 한 달도 안돼 죽음을 선택했다. 낡은 정치 타파의 아이콘이자 최초의 정치팬덤인 노사모를 탄생시킬 정도로 사랑받던 ‘바보’ 노무현, 그를 따랐던 세력과 지지자들로선 감정이 복받칠 수밖에 없었다. 절치부심!



한나라당은 유독 노통을 적대시했다. 1997년 외환위기(IMF 구제금융)와 디제이피(DJP) 연합, 제3후보(이인제)의 등장으로 인해 처음으로 정권을 잃었을 때와 달랐다. 그 당 의원들 중엔 대놓고 그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까지 공언할 정도였다. 외환위기에 책임도 있었고, 자신들의 분열과 경쟁자들의 연합 때문에 패배한 것이니 김대중 정부의 탄생은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5년 뒤의 정권회복만큼은 자신했고, 실제 그럴 만 했다. 김대중 정부 말기 지지율은 24~26%에 머물렀던 만큼 정권교체론이 대세였다. 대통령 아들 구속과 카드 대란, 여당의 자중지란에도 2002년 대선에서 2.3%포인트 차이로 졌다. 정몽준·노무현 간 후보 단일화도 깨진 상태에서 맞이한, 준비 안 된 패배였기에 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정치적 지형 변화에 대한 우려도 작용했다. ‘김대중’은 소수파인 호남 출신이라 미래에 대한 우려가 적었지만 ‘노무현’은 보수 우위의 근본 토대였던 영남의 일부, 즉 부산·경남(PK) 출신이라 향후 이 부산·경남이 대구·경북(TK)과 따로 가는 디커플링(탈동조화)은 심각한 위협이었다. 이렇게 되면 역대의 집권전략이었던 영남지역 중심의 다수파 구성이 매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대선 직후 불법 대선자금에 대한 검찰 수사까지 이어져 감정이 극도로 나빠졌다. 이 수사로 노무현 정부도 큰 타격을 입었지만 한나라당은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됐다. 기업으로부터 선거자금을 탑차에 박스로 실은 채로 받았다는 ‘차떼기 정당’이란 오명에 다수 인사들이 구속까지 당했다. “실제로 불법 대선자금 수사는 노무현 대통령보다는 야당인 한나라당에게 더 큰 타격을 주었다.”(이인규,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 이 열패감이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을 손잡도록 추동했다. 과거 민주당은 지지율 하락을 이유로 노무현 후보의 교체를 밀어붙인 구원이 있는 데다, 대선 후엔 그를 따르는 그룹이 탈당 후 열린우리당을 만든 까닭에 역시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해 있었다. 두 당이 혐오연대를 맺고 대통령 탄핵을 의결했다. 하지만 뒤이은 총선에서 탄핵 백래시로 두 당은 패했고, 최초로 의회권력 교체가 이뤄졌다. 망연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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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1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외치며 시위하고 있다. 박승화 선임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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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은 2012년 총선·대선에서 예상을 뒤집고 승리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 회피 등 위기를 자초한 끝에 2016년 총선에서 석패했다. ‘의회방패’(legislative shield)를 잃어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결국 박근혜 대통령은 파면당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펼쳐진 검찰 주도의 대대적인 적폐청산 수사로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롯해 정무직 고위 관료들이 무더기로 구속되는 등 보수정당은 초토화되다시피 했다. 김찬호 교수의 지적대로 감정은 사회적으로 구성되며 생각과 행동을 좌우한다. 그들로서도 처음엔 창피했겠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억울하고, 분개하는 마음이 커지는 집단적 경험이 됐고, 이는 양극화의 사회적 힘으로 작용했다.



노통의 죽음과 박통의 탄핵으로 품게 된 ‘지못미’의 감정적 앙금 때문에 두 당은 각각 피해의식으로 뭉쳤고, 상대에 대한 적개심으로 전의를 불태웠다. 심리학자 뉴슨 등에 따르면, 이런 경우 구성원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충성심을 확인하고, 서로 결속하고, 상대에게 욕설을 퍼붓는 것이다. 당할 때 구성원들 간의 유대도 강해진다. 일례로, 2003~13년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구단들 중 가장 성적이 저조했던 팀인 헐 시티의 팬들이 사회적 유대관계가 가장 강한 것으로 조사됐다. 두 당은 서로를 경쟁자가 아니라 적으로 여기게 됐다. 자신들은 억울한 피해자, 상대는 무도한 가해자였다. 지지 정당에 대한 애착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증오가 당파성의 중핵으로 자리 잡게 됐다.



헌법에 정해져 있는 탄핵 시도가 상대를 자극하는 계기가 되긴 했지만 결정적으로 서로를 원수처럼 대하게 된 동력은, 정치보복으로 비치는 수사와 그로 인한 피해의식이었다. 노통 수사나 적폐수사는 의도했건 안했건 결과적으로 집권세력의 정치적 필요에 따른 전략적 선택으로 추진됐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적극적 기획이든 소극적 방관이든 당하는 쪽에선 정치보복으로 받아들여졌다. 요컨대, 정서적 양극화는 ‘피해-복수의 내러티브’가 내화·흑화된 결과라 하겠다.



자, 그렇다면 이런 정서적 양극화가 정치 엘리트들만의 잘못일까? 보수와 진보의 두 진영 간 지지율 격차가 줄어든 탓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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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 방송에서 정치평론을 하다 정치에 나서 20대 국회의원, 문재인 정부 마지막 정무수석을 지냈다. 2020년 ‘대통령 탄핵 결정요인 분석: 노무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 과정 비교’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인자를 만든 참모들’ ‘정치가 내 삶을 바꿀 수 있을까’ 등의 책을 냈고, ‘진보는 어떻게 다수파가 되는가’ 등의 역서가 있다. 우리 정치가 어쩌다 이렇게 나빠졌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해야 나아질 것인지 등에 대해 터놓고 얘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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