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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웹툰 ‘미생’ 12년 만에 완결… “세상에 완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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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호 작가 인터뷰

조선일보

‘미생’ 시즌2 단행본(더오리진) 완간 기념으로 27일 서울 마포구 슈퍼코믹스 스튜디오에서 만난 윤태호 작가가 웹툰 ‘미생’ 원고를 살펴보고 있다. 지난 2012년부터 ‘미생’ 연재를 시작해 지난달 완결, 12년 만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는 “평행 우주에 사는 장그래 이야기를 차기작으로 준비 중”이라고 했다. /남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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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생(完生)은 없다. 평행 우주에서 장그래는 미생(未生)으로 또 한 번 산다.”

2012년 1월부터 온라인 연재를 시작한 웹툰 ‘미생(未生):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자’가 지난달 12년 만에 종지부를 찍었다. 다만 완결은 났지만 완생은 없는 모양. 27일 서울 마포구 슈퍼코믹스 스튜디오에서 만난 윤태호(55) 작가는 이미 다음 작업에 돌입했다. 차기작은 한국기원에서 나온 주인공 장그래가 종합 무역상사 원 인터내셔널이 아닌 전혀 다른 업종의 회사에 취직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일종의 멀티버스 세계관이다. 평행 우주에 사는 또 다른 장그래의 삶을 떠올렸다. 장백기·안영이 등 기존 캐릭터도 그대로 등장한다. 이미 2화분까지 작업을 마쳤고, 올 추석쯤 공개할 계획이다.

12년을 붙들고 있었지만, 아직 장그래를 보내주지 못했다. 그는 “장그래라는 이름, 그 캐릭터에 애착이 너무 크다”고 했다. 다만 시즌3으로 기존 이야기를 이어가지 않는 이유는 “지금 스토리에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장그래가 승진하거나 회사를 만들어 돈을 버는 이야기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게 ‘미생’의 가치는 아닌 것 같습니다. 장그래라는 캐릭터의 원형질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게 낫다 싶어요.” 장그래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바람 머리 스타일은 차분하게 바꾼다.

2014년 tvN 드라마로까지 제작·방영되면서 전 국민적 인기를 끌었던 ‘미생’ 시즌 1은 대기업에 입사하는 신입 사원을 미생으로 조명한다. 직장인이란 냉정하게 말하면 조직의 부품. 그러나 이들이 제 나름대로 매일 치열하게 살아내는 모습을 담아 수많은 샐러리맨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 시즌2는 대기업에서 나와 중소기업 온길 인터내셔널을 차린 이들의 분투기다. 회사의 생존 자체가 미생으로 그려진다. 2012년 1월부터 시작해 2013년 7월까지 빠르게 내달린 시즌 1과 달리, 시즌 2는 2015년 11월에 시작해 여러 차례 휴재와 연재 중단을 거치며 마침표를 찍는 데 8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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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미생’에서 장그래를 연기한 배우 임시완(왼쪽). 오른쪽은 웹툰 ‘미생’의 장그래. /tvN·윤태호·슈퍼코믹스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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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에게도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시즌 1의 성공이 부담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성공 뒤에 피폐해지는 시기가 옵니다. 내 성취와 남들의 칭송에 흠뻑 젖어들다 보면 여러 군데에서 괴리가 느껴져요. 비유하자면 곳곳에 시체처럼 쓰러져 있는 내가 보였습니다.” 그는 “계약된 다른 작품을 하다가 3년 만에 돌아왔더니 장그래 그리는 법을 까먹기도 했다”며 멋쩍게 웃었다. ‘미생’ 휴재 기간에 연재를 시작한 웹툰 ‘어린(물고기 비늘)’을 그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대형 기획사의 전속 작곡가가 대중의 관심, 유명세의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남극으로 떠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 “마이너스도 나, 플러스도 나… 그걸 인정하자. 자신을 다독였죠.”

카카오웹툰에 올라와 있는 ‘미생’ 최종화에는 댓글이 달리고 있다. 28일 오후 기준 약 1800개. “월급쟁이라는 게 참 이상한 사회적 위치를 갖는다. 안정된 월급으로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하지만 나의 일이 아닌 누군가 시키는 타인의 목표를 지탱해주며 내가 점점 희미해지는 자리이기도 하다… 모든 월급쟁이들, 오늘도 힘내봅시다.” 송곳처럼 폐부를 찌르고 때론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미생’의 명대사 못지않다. 윤태호는 “’미생’은 댓글까지 읽어야 완독하는 것”이라고 했다.

요즘은 차기작 원고 작업과 웹툰 ‘이끼’의 드라마 시나리오 작업을 병행한다. 한시도 쉬지 않는 이유에 대해 “모든 웹툰 작가는 ‘은퇴당해선 안 된다’는 불안감을 갖고 있다”고 했다. 윤태호는 연재 마지막쯤 바둑 기사 유창혁 사범에게 ‘완생이란 무엇인가’를 물었다. 그러자 “그런 게 있을 수 있나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부를 얻고 성공을 이뤘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다 채워진 건가요? 아니죠. 완생이라는 말은 성립할 수가 없는 말이라고 봅니다.” ‘미생’은 끝났지만, 완생은 없다. 그래서인가. 장그래는 또 돌아온다.

[황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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