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민 90만명 컨테이너 캠프 등 임시 거처에…사방엔 여전히 잔해 널려
"예전의 행복 이젠 느낄 수 없지만…" 컨테이너 학교선 아이들 재잘재잘
지진 흔적 고스란히 남은 튀르키예 하타이 |
(하타이·카흐라만마라슈[튀르키예]=연합뉴스) 장보인 기자 = "이제부터 끝없는 '공포 영화'가 시작될 거예요."
25일(이하 현지시간) 튀르키예 동남부 하타이주(州) 안타키아에 가까워지자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 튀르키예 사무소 관계자가 말했다.
달리는 차에서 바라보는 도로 양옆은 황량했다. 잔해로 뒤덮인 길가에 이전에는 꽤 높은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고 이 관계자는 귀띔했다.
지난해 2월 6일 튀르키예와 시리아 접경 지역에 규모 7.8, 7.5의 강진이 발생하면서 안타키아 지역도 큰 타격을 받았다. 주민들이 살던 집도, 아이들이 아침마다 가던 학교도, 사람들이 찾던 카페와 식당, 종교시설, 도서관까지 모두 무너져 내렸다.
지진이 일어난 지 1년여가 지났으나 워낙 피해가 컸던 탓에 아직 잔해도 다 치우지 못했다. 폐허가 된 회색빛 도심부에는 이곳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오렌지 나무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21세기 최악의 재앙 중 하나로 꼽히는 이 강진은 5만명 이상의 사망자와 10만명 이상의 부상자를 냈다.
하타이 외에도 가지안테프와 카흐라만마라슈 등 튀르키예 동남쪽 지역 곳곳에는 깊은 상흔이 남아 그 참혹함을 짐작게 했다.
무너진 건물 잔해 |
금이 죽죽 간 채 철거를 기다리는 건물들을 지나 곳곳에 '컨테이너 캠프'가 보였다. 지진으로 집을 잃은 주민들의 임시 거처다.
유니세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31일 기준 튀르키예 11개 주에 347개 컨테이너 캠프가 꾸려졌다. 정부와 협력 기관들이 마련한 공식 거처에 머무는 이들은 58만602명이다.
여기에 이재민이 각자 텐트나 가건물 등을 세워 집으로 사용하는 비공식 거처에도 35만2천628명이 사는 것으로 추정된다.
컨테이너 생활은 만만치 않다. 내부 공간이 분리되지 않은 한 공간에서 온 가족이 살거나 바깥에 있는 화장실을 공용으로 사용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컨테이너가 다닥다닥 붙어있어 이웃 간 소음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것도 큰 고충이다.
줄지은 컨테이너 임시 거처 |
그러나 임시 거처에서 만난 주민들은 다시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카흐라만마라슈의 한 컨테이너 캠프에서 만난 중년 여성은 "내가 무너지면 가족도 무너질 것 같아 힘을 내 버티고 있다"며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살아 있는 사람들은 또 힘을 내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지진 이전의 아늑한 집을 기대하긴 어렵지만 정부와 각종 단체의 지원으로 생활 환경이 조금씩 개선되고 있기도 하다.
유니세프의 경우 308만명이 안전한 식수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지원했고 130만여명을 대상으로 화장실 등 위생 시설과 서비스를 제공했다.
남편, 초등학생인 두 아들과 컨테이너 집에 사는 손귤(39)씨는 "지진으로 집이 많이 훼손돼 텐트에 살다가 컨테이너로 옮겨왔다"며 "텐트는 비가 오면 침구류가 다 젖곤 했다. 지금도 답답하고 힘든 상황이지만 여러 단체의 도움으로 마실 물도, 화장실도, 냉·난방기구도 있어 훨씬 나아졌다"고 했다.
컨테이너 집에서 식사 준비하는 손귤씨와 두 아들 |
특히 배움터를 잃어버린 학생들이 다시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된 건 반가운 소식이다.
유니세프는 임시 학교 755개를 마련했다. 튀르키예 교육부 등과 협력을 통해 교사들을 교육하고 지진으로 훼손된 학교 1천279곳의 복구를 지원했다.
학생들은 컨테이너 집에서 나와 인근의 컨테이너 임시 학교로 향한다. 제대로 된 건물이나 체육시설도 없지만 다시 학교에 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학생들은 즐거운 듯했다.
학생 400명이 다니는 카흐라만마라슈의 한 임시 초·중등 학교에선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떠나지 않았다.
지진이 난 뒤 한 학기 동안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는 이렘므(12)는 "친구들도, 학교도 정말 그리웠는데 이렇게 다시 만날 수 있어서 정말 좋다"며 해맑게 웃었다.
같은 반 친구 에네스(11)는 "지진 전에 살던 집이 그립지만 학교는 예전에 다니던 곳보다 여기가 더 좋다. (컨테이너) 집에서도 가깝고 선생님도 좋다"고 말하기도 했다.
컨테이너 학교에서 수업듣는 튀르키예 학생들 |
다만 지진 이전의 일상 회복은 아직도 요원해 이재민들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지진 피해 지역에서 만난 현지인들은 재건에 박차를 가한다고 해도 피해를 복구하는데 여러 해가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지진 이후 임시 거처에서 생활하고 있는 미르귤(53)씨는 "예전에 느끼던 행복을 이제는 느낄 수 없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고 이런 피난처가 있다는 것은 다행이지만 우리의 행복은 예전과 같지 않다. 옛날로 돌아갈 때까지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며 착잡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bo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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