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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대통령이 위험하다 [세상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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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윤석열 대통령이 물가 현장점검을 위해 지난 18일 서울 양재 하나로마트 채소 코너를 찾아 대파를 살펴보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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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복영 | 경희대 교수·전 청와대 경제보좌관



대통령이 가장 위험해지는 경우는 아마도 대통령의 생각이 국민 생각과 멀어질 때일 것이다. 대통령이 늘 국민과 같이 호흡하고 있어야만, 그의 말이 국민 생각과 자연스럽게 교차하여 공감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런데 이 호흡이 어긋나게 되면 대통령은 생뚱맞은 이야기를 하게 되고, 이것이 예상치 못한 큰 정치적 위험을 만든다. 국민들은 ‘저 사람이 우리와 다른 세상에 살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며 바로 거리를 둔다. 의대 증원 문제와 “대파” 발언을 보면 지금 윤석열 대통령은 이런 위험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국민과 같은 호흡으로 산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대통령은 국민들과 일상을 같이하기 어려운 여건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나 매일 출퇴근하겠다고 했을 때 찬성했다. 출퇴근은 그나마 국민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작은 방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통령실 이전을 돌격 작전처럼 하면서 논란만 일으켰고, 지금 보면 공감 효과도 별로 거두지 못한 듯하다. 대통령의 생각이 국민과 멀어진 이유가 무엇일까?



먼저 대통령의 자기 고집이 너무 센 것이 문제다. 의대 증원 논란을 보자. 의사 부족 문제는 분명히 심각한데도 의사들 반발에 막혀 과거 정부는 공급 확대에 번번이 실패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정부가 나선 것은 평가받아 마땅하다. 정책 발표 직후 국민의 지지는 압도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국민의 평가가 달라지고 있다. 환자 곁을 떠난 의사들도 문제지만, 정부가 2천명 증원을 고집하며 국민의 불안을 키우는 데 대한 불만도 같이 높아지고 있다. 의대 교수들이 사직서 제출을 예고하면서 대화의 의지를 보였을 때 정부는 정원 조정을 포함해 대화를 통한 해결에 나서야 했다. 의대 교수들은 사명감으로 일하는 사람들이다. 이들 대다수가 사직서까지 내겠다고 했을 때는 그 전과는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금과옥조도 아닌 2천명 증원을 계속 고집했다. 국민들은 지금 이것을 대통령의 고집이라고 생각한다.



대통령 발언들을 보면 ‘타협’을 매우 싫어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오랜 검사 생활 탓일 것이다. 우리가 해결해야 할 거의 모든 문제는 타협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연금·노동·교육 개혁이라는 3대 과제 모두 마찬가지다. 수학 문제처럼 해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타협의 능력과 의지가 부족해서 해결을 못 하고 있다. 타협을 싫어하는데 어찌 성과를 낼 수 있겠는가? 대통령은 의제를 던지는 자리가 아니라 성과를 만들어 내야 하는 자리다.



국민과 멀어지게 된 두번째 이유는 미디어의 왜곡된 기능 때문이다. 대통령이라고 복잡한 민심을 읽는 특별한 방법을 갖고 있지 않다. 신문이나 방송 같은 미디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언론은 민심의 거울이다. 이 거울이 휘어져 있고 또 휘어진 거울만 본다면 민심을 제대로 읽을 수가 없다. 정부에 유리한 언론, 권력의 눈치를 보는 언론이 당장에는 듣기 좋을지 모르지만, 휘어진 거울이 되어 결국은 대통령을 국민과 멀어지게 만든다. 문제가 제대로 파악되지 못한 채 쌓여만 가다 어느 시점에 폭발할 수 있다. 지금 많은 국민은 공영방송이 이미 휘어질 대로 휘어진 거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비뚤어진 거울을 반듯하게 만드는 것이 대통령 스스로 위험에서 빠져나오는 첫걸음이다.



마지막으로 관료들이 대통령을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 우리나라의 관료들은 열심히 일하지만 모든 관심이 대통령을 향해 있다. 대통령이 지시하고 원하는 바를 달성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지만,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거나 문제가 있음을 말하려는 유인은 거의 없다. 호통을 치는 대통령 앞이면 더 그럴 것이다. 대통령이 시중의 대파 가격을 몰랐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지속가능하지도 않은 물가 대책을 마련해 놓고 마치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행사장에 대통령을 모시고 간 것이 더 심각한 문제다. 4천원 하는 대파에 온갖 지원과 일시적 할인을 중첩해 가격이 내려간 듯이 위장했다. 당장 그 매장만 벗어나면 의미 없어지는 가격이다. 단기 성과를 독려하는 대통령과 어떻게든 결과를 보여주려는 관료들이 대통령을 위험에 빠트린다.



위험에서 빠져나오려면 거울이 민심을 제대로 비추도록 하고, 다른 의견도 큰 용기 없이 말하도록 해야 하며, 관료들이 잔재주로 현실을 가리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대통령은 고집 대신 타협으로 성과를 만들어야 한다. 힘들지만 모두 대통령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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