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21일 대구 중구 서문시장에서 시민들과 인사하고 있다.(왼쪽 사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같은 날 광주 전남대 후문에서 시민들을 향해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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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10대 공약에 요양병원 간병비 급여화를 공통적으로 내걸었다. 보건복지부 추산 연간 간병비는 최소 15조원이지만, 재원마련에 대해선 양당 모두 ‘재정 지출구조 조정’이라는 두루뭉술한 설명만 늘어놓고 있다.
#. 지난해 12월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서울의 한 경로당을 찾아 ‘경로당 주5일 점심 제공’을 약속했다. 그러자 국민의힘은 곧장 “우리는 주 7일 제공하겠다”며 맞불을 놨다. 양당은 10대 공약에 이를 포함했는데 연간 1487억원(주 5일 기준)의 재원에는 별도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22대 총선이 역대 총선 가운데 유권자 연령대가 가장 높은 선거가 되면서 ‘노인 포퓰리즘’ 공약이 판치고 있다. 정치권이 노인 표심을 얻기 위해 재원을 고려하지 않은 단발성 공약도 쏟아내고 있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 행정안전부 인구통계에 따르면 60대 이상 인구는 1395만110명으로 이번 선거 유권자인 만 18세 이상 인구 4438만549명의 31.4%에 달한다. 18~29세와 30대를 합친 비중(31.2%)보다 60대 이상 비중이 더 큰 것은 이번 총선이 처음이다.
60대 이상 인구 비중은 18대 총선 18.3%, 19대 19.7%, 20대 22.7%, 21대 26.8% 등 점차 늘었는데 이번 총선은 눈에 띄게 증가했다.
김영옥 기자 |
총선 후보자 연령도 덩달아 높아졌다.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21~22일 이틀간 접수된 22대 총선 지역구 후보의 평균 연령은 57.8세다. 4년 전 21대 총선 평균 연령 54.8세보다 3세 늘었다. 후보 평균 연령도 집계 기록이 시작된 18대 총선(49.2세) 이후 가장 높다. 유권자도 후보자도 역대 최고령인 ‘고령화 선거’가 개막된 것이다.
이에 따라 겉으로는 청년정치를 표방하지만 실상은 노년층 표심에만 관심을 두는 현상이 커질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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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세대에 짐 지우는 정치권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핵심 공약으로 내거는 요양병원 간병비 급여화는 건강보험으로 간병비를 지원하는 게 골자다. 20대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모두 공약했고, 이번 정부의 국정과제였다. 총선 국면이 되자 민주당은 1호 공약으로 간병비 급여화를 약속했고, 국민의힘도 간병비 급여화, 간병 비용 연말정산 세액공제 등을 패키지로 묶어 발표했다.
지난해 12월 21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서울 영등포구 구립 큰숲 경로당에서 김태랑 영등포구 구립 큰숲 노인회관 총무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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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병비는 고령화 추세에 따라 재원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는 사안이다. 연간 15조원의 비용은 지난해 건강보험 지출 90조원의 17%에 달한다. 향후 고령화가 진행되면 지출은 늘어나지만, 저출생으로 경제활동인구가 줄어 수입은 감소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2028년부터 건강보험 재정이 적자로 돌아서면 국민의 추가부담이 불가피하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국민에게 투명한 설명 없이 노인 표심 얻기에만 골몰하고 있다.
양당이 앞다퉈 내놓은 경로당 점심 제공 공약 역시 포퓰리즘에 가깝다는 평가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국 경로당은 2022년 기준 6만8000여개에 달하는데 그중 40%인 2만7000여개에서 주 3일가량 점심이 이미 제공되고 있다. 현재도 정부와 지자체는 경로당의 양곡 구매비, 냉난방 비용을 지원하고 있는데 올해 약 800억원의 예산이 배정돼 있다. “과도한 복지경쟁”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영옥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1일 강원도 원주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민생토론회를 열고 “취약한 어르신을 위한 공공임대주택을 매년 3000호씩 보급하겠다”고 했다. 민주당도 향후 4년 이내에 노인복지주택 10만호 공급을 정책으로 내걸었다. 두 사안 역시 천문학적 예산투입이 불가피하다. 이밖에도 ▶독거노인에 AI안전로봇 제공(국민의힘) ▶노인 급식도우미(민주당) 등 선심성 공약도 여럿이다.
반면에 국회는 연금개혁은 손도 대지 못했다. 이번 국회 임기 내 개혁을 목표로 2022년 연금개혁특별위원회를 꾸렸지만, 아직 산하 공론화위원회에서 방향성을 논의 중이다. 지난해 12월 국회는 2024년도 예산안에 대한노인회 예산 104억원을 책정했다. 두 사안을 두고 “전형적인 노인 눈치보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강원 원주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를 주제로 열린 22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노인복지주택 입주자 조선원 씨와 악수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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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층을 위한 정책·공약에는 노인 공약에는 없는 ‘조건’이 여럿 달렸다. 민주당이 저출생 공약 1호로 내건 ‘결혼·출산지원금 1억원 대출’은 신혼부부(소득·자산 무관)가 첫 번째 자녀를 출산해야만 무이자로 전환된다. 민주당의 24평(두 자녀)·33평(세 자녀) 분양전환 공공임대주택이나 국민의힘의 ‘아빠 출산휴가 1개월 의무화’ 공약은 현실성을 뒷받침할 제도적 장치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엄기홍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노인을 위한 공약을 늘리게 되면 다른 정책은 뒷순위로 밀려 미래세대가 피해를 볼 수 있다”며 “장기적 안목으로 정책을 펴야 미래세대에게 부담을 덜 지우면서 안정적인 노인정책을 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청년층 비해 투표율 높은 고령층…여론조사 정확도 흔들리나
4·10 총선 최대 변수로 ‘고령화’가 부각되면서 최근 정치권에선 “여론조사와 실제 투표 결과의 간극이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노인층이 대거 투표장에 나서면 연령별 투표율을 반영하지 않은 여론조사 수치와 실제 득표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현행 여론조사는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 통계를 기준으로 성별·연령별·지역별 인구 비율에 따라 응답자에 가중치를 부여한다. 여론조사 결과가 실제 인구 분포와 유사하게 수치를 조정하는 것이다. 가령, 전체 응답자 중 20대 응답자 비율이 전체 인구 중 20대 인구 비율보다 낮으면 20대 응답자에게 가중치를 더 부여해 맞추는 식이다.
하지만 이러한 여론조사 수치 보정 항목에 투표율은 포함되지 않는다. 즉, 모든 연령대의 투표율이 일정하다는 가정을 전제로 여론조사를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다. 문제는 실제 연령별 투표율은 큰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4년 전 21대 총선 당시 60대 투표율은 80%, 70대 이상은 78.5%를 기록했다. 반면 20대(58.7%)·30대(57.1%)·40대(63.5%)의 투표율은 60대 이상 고령층 투표율에 비해 20%포인트 가까이 낮은 수준이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3일 민경우 전 비대위원의 '노인 비하' 논란 사과를 위해 용산구 대한노인회 중앙회를 방문해 김호일 회장을 만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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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고령층일수록 상대적으로 높아지는 투표율을 고려하면 현재 발표되는 여론조사와 실제 총선 결과가 일치하지 않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된다. 특정 연령대가 대거 투표장에 나와 특정 후보·정당에 표를 몰아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선거는 60대 이상 유권자 숫자가 전체 유권자의 31.4%에 달하기 때문에 이들이 대거 투표장에 나오면 변수로서의 영향력이 더 커질 수 있다. 이강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소장은 “60대 이상은 인구도 많은 데다가, 투표율도 높다”며 “2030세대와 인구수는 큰 차이가 없지만 파급력은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로선 각종 여론조사에서 밀리는 국민의힘이 노인층 투표에 기대를 걸고 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보수 위기론이 불붙으면 노인층이 대거 투표장에 나올 것”이라고 했다. 반면 민주당 관계자는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86세대 일부가 60대에 접어든 만큼 한 쪽으로 표가 쏠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김효성·박건 기자 kim.hyos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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