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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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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원도 못사줘 김장장갑 끼고 실습…'4배 증원' 충북의대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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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2일 강원대 의대 해부학실습실.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으로 수업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채혜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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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강원도 춘천시 강원대학교 제1의학관 지하 1층 임상해부실습실. 카데바(Cadaver·해부용 시신) 9구가 특수 방부 처리된 천에 보관된 채로 철제 실습대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해부학은 본과 의대생들이 수강하는 기초의학 과목이다. 강원대 의대에서는 본과 1학년 학생들이 한 학기 동안 주 2일 하루 6시간씩 수업을 듣는다. 실습실은 포르말린 용액 등의 독한 냄새를 빼줄 공조시설, 세척이 바로 가능한 위생시설, 각종 약물 등을 처리하는 배수시설 등이 갖춰져 있었다. 교수가 해부하는 모습을 촬영하고 이를 실습실 내 대형 스크린으로 송출하는 각종 영상 기기 등도 있다. 학교 관계자는 “해부학실습실에서 필요한 장비·인력 등은 간단하지 않아 기존 강의실에 만들기가 굉장히 까다롭다”며 “이 규모 실습실을 새로 만드는 데에만 40억 원 정도 들 것”이라고 말했다.



“2년 만에 서울대처럼? 쉽지 않아”



의대 증원에 따라 교육여건 확보가 어렵다는 목소리가 현장에서 나오고 있다. 교육을 위한 공간과 실습 자재, 교수 인력 확보가 단기간에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2025년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본과 과정을 시작하는 2027년까지 3년의 준비 기간이 남았다"면서 지속적인 투자와 교육여건 개선으로 충분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강원대 의대에서는 카데바 1구당 의대생 6명이 붙어 실습한다고 한다. 의대 증원에 따라 강원대는 132명(현원 49명)으로 정원이 늘게 된다. 이 때문에 의대 교수들은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지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채기봉 강원대 의대 비상대책위원회장(강원대병원 외과 교수)은 “증원이 갑작스레 결정됐는데 서울대(135명)와 비슷한 규모로 교수 충원이나 시설 확충이 이뤄져야 한다는 뜻이다.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학교 관계자는 “지방대는 시신 기증 사례도 드물어 전국을 다 돌아도 한 해 10구도 구하기 벅찬 편”이라며 “2025년쯤에는 전국에서 카데바를 구하려는 각 학교의 전쟁 같은 상황이 펼쳐질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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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강원대병원. 채혜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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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의 수도권 유출도 우려한다. 현재 강원대병원은 680병상 규모다. 채 교수는 “춘천이 서울과 가까워 환자가 잘 찾지 않는 상황이다. 지방국립대 의대가 의사 사관학교나 양성소가 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강원대 의대생 가운데 일부는 수련을 위해 수도권 병원으로 택할 것이란 뜻이다. 강원대의 지역인재 선발 비중은 30.6%로 다른 지역보다 낮은 편이다.



‘최대 증원’ 충북대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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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 반발한 손현준 충북대 의대 해부학 선임교수가 25일 오후 충북대학교 의과대학 텅 빈 해부학 실습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의대 정원 확대 문제점을 얘기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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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명에서 200명으로 가장 큰 규모의 증원이 이뤄진 충북대 의대 교수들도 '증원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25일 충북대 의대 본관 1층 실습실에서 만난 배장환 충북대 의대·병원 비대위원장(충북대병원 심장내과 교수)이 기자에게 가장 먼저 보여준 건 ‘의학용 장갑’이었다. 이곳에선 의대 본과 3·4학년이 진짜 환자가 아닌 ‘모사 환자(simulated patient)’를 두고 임상모의실습이 이뤄진다. 배 교수는 “의학용 라텍스 장갑이 부족해 주유소 장갑이나 김장용 비닐장갑을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착용해 실습하기도 한다”라며 “600원짜리 의학용 장갑 하나 사주지 못하는 현실에서 어떻게 정부의 말을 믿을 수 있냐”고 비판했다.

이들은 “해부학・생화학・병리학 등 기초의학을 가르치는 교수는 이른바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과) 교수보다 더 구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기초의학 교수인 최중국 충북대 의대 교수협의회장(생화학교실)은 “생화학교실에서도 올해 3월에 은퇴하는 교수님이 있어서 2월에 채용 공고를 냈지만, 지원자가 5명뿐이었다”며 “자연대・농대 연구원 인건비의 2배 가까이 주겠다고 공고를 내도 지원자를 찾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현재는 적합한 지원자가 없어 재공고를 낸 상황이다.

이들은 “10년 전부터 충북의대 정원을 70~80명 수준을 늘려달라고 했다”며 “그때는 말을 듣지 않더니 갑자기 200명 가까이 늘리는 건 무리”라고 비판했다. 한 번에 200명을 감당할 인프라도, 가르칠 교수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배 교수는 “의대 증원 결정을 철회하고 정부・의료계・연구단체를 한데 모아 확실한 의료 수급 계획을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일부 의대들의 주장에 대해 정부는 '우려할 만한 상황이 아니다'는 입장이다. 내년 증원 이후 입학생들이 본과 과정을 시작하는 2027년까지 3년의 준비 기간이 남아 여건 개선의 시간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또 국립대 의대에 대해서는 2027년까지 전임교원을 1000명 규모로 확충하기로 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올해 상반기 중으로 신속하게 지원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교육부는 “적극적인 예산을 투입해 의학교육의 질을 현재 수준으로 유지하겠다”면서 대학별 의대 증원을 위한 예산 수요조사에 나설 계획을 밝혔다.

춘천·청주=채혜선·문상혁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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