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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9 (금)

이슈 질병과 위생관리

니가 왜 거기서 나와···자궁경부암 백신 광고모델 계보 살펴보니[약 읽어주는 안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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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방 앰배서더에 '세븐틴' 선정

이벤트 대박에 학생 접종 늘어

항문암·구인두암 예방에도 효험

'남녀 모두 접종' 인식전환 필요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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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산부인과는 왜, 어디 아파?”

지난 주말 오랜만의 동창 모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해 어느새 중학생 딸을 둔 K가 산부인과 일정이 늦어졌다며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습니다. 다행히 어디가 아픈 건 아니고 딸의 자궁경부암 백신 2차 접종을 맞힐 때가 되어 산부인과에 간거라고요. K를 뺀 나머지 친구들은 마침 자녀가 없거나 초등학교에 갓 들어간 자녀가 있다보니 ‘자궁경부암 백신을 꼭 맞혀야 하느냐’와 ‘접종시기’와 같이 본의 아니게 제법 건설적인 주제로 대화의 꽃을 피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K가 딸에게 자궁경부암 백신을 맞히게 된 계기가 가장 흥미로웠는데요. 민규의 광팬인 딸이 세븐틴 포토카드를 받아야 한다며 비싼 ‘가다실9’을 맞아야 한다고 우기는 바람에 난처했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질병관리청이 12~17세 여성 청소년의 사람유두종바이러스(HPV) 백신 접종 비용을 전액 지원하는 제품은 ‘가다실’과 ‘서바릭스’ 2종으로 제한되거든요. ‘가다실9’은 사람유두종바이러스 6·11·16·18·31·33·45·52·58형이 유발하는 질환을 예방하는 9가 HPV 재조합 백신입니다. 기존 ‘가다실’(4가백신)에 5가지 혈청형을 추가해 현존하는 HPV 백신 중 가장 많은 HPV 유형을 포함한다는 장점을 갖췄는데, 그만큼 가격도 비싸긴 합니다. ‘가다실9’의 접종 가격은 회당 약 17만~23만 원 정도로 3회 접종할 경우 약 50만~70만 원이 든다는 얘기죠. 딸의 건강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면서도 무료 백신을 두고 쌩돈을 써야 한다는 게 그렇게 아깝더라는 친구의 말에 한참을 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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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다실’과 ‘가다실9’을 공급하는 한국MSD는 작년 8월 아이돌 그룹 세븐틴을 HPV 예방 캠페인 앰베서더로 선정했는데요. 세븐틴이 모델인 ‘가다실9’을 접종하는 이들에게 세븐틴 포토카드를 제공하는 이벤트가 소위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중고거래장터에서 포토카드 한 장에 5만~10만 원까지 거래됐을 정도라고요. 마침 지난 3월 21일은 마침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암 예방의 날이었는데요. 사실 암을 완벽하게 예방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 보입니다. 국립암센터가 발표한 암예방 수칙을 살펴보면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것은 물론 다른 사람이 피우는 담배 연기도 피해야 하고, 하루 한 두잔의 소량 음주도 피하라고 되어 있죠. 평소 채소와 과일을 충분히 섭취하면서 균형잡힌 식단을 유지하고 주 5회 이상 운동하되 암 검진을 빠짐 없이 받는 것도 중요합니다.

10개의 암예방 수칙 중에는 HPV 백신 접종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HPV 백신은 현재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의약품 중 암을 예방할 수 있는 유일한 약으로 꼽힙니다. 질병청이 운영하는 국가 필수예방접종(NIP) 사업에 HPV 백신이 포함된 것도 그러한 근거가 반영됐죠. 그런데 궁금하지 않으세요? 2021년 가다실9의 광고모델로 활동했던 배우 정경호부터 서강준, 여진구, 그룹 세븐틴에 이르기까지 언제부턴가 HPV 백신 광고에는 하나 같이 남자 연예인이 등장하고 있죠. 단순히 여성 접종자들의 팬심을 자극하려는 의도만은 아닙니다. HPV 백신은 자궁경부암 뿐 아니라 남성도 감염되는 항문암·두경부암·구인두암 등 HPV 감염으로 유발하는 암의 90% 이상을 예방할 수 있거든요. 전 세계적으로 1분에 한 명씩 HPV 관련 암에 걸리고, 성인 인구의 약 70%가 일생 동안 적어도 한번은 HPV 감염을 겪는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성적 접촉을 통해 남녀 누구나 HPV에 감염될 수 있기 때문에 학계에서는 남성에게도 HPV 백신 접종을 적극 권고합니다. 여성 청소년에게만 지원되는 HPV 백신을 남성 청소년에게도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HPV 백신 남녀 무료 접종을 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했죠.

실제 젊은 남성들 중에는 여자친구와 함께 HPV 백신을 접종하기 위해 병원을 찾는 사례도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다만 HPV 백신보다는 자궁경부암 백신이라는 표현이 흔히 쓰이다 보니 여전히 남성 접종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낮은 것도 사실입니다. 제약사 입장에서는 남성 모델을 적극적으로 기용함으로써 HPV가 남녀 모두의 문제임을 드러내려는 의도가 숨어 있는 셈이죠. 본래 의도와 조금 다를지 모르지만 K의 사연 대로라면 백신 광고가 긍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음은 분명해 보입니다. K팝 가수들의 활약이 암예방까지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면 새삼 뿌듯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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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진 의료전문기자 realglasse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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