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젊고 살기 좋은 도시’가 출산율 1위의 동력, ‘복컴’ 등 인프라와 육아 콘텐트 다양
떨어지는 청년 인구와 출산율 추세는 과제, 정주환경 올리는 테스트베드 정책 더 나와야
2023년 12월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세종시 국립어린이박물관이 개관했다. 세종시는 도서관, 박물관처럼 아이들을 위한 인프라 구축에서 전국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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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이 발표한 대한민국의 2023년 합계출산율은 0.72명이다. 이 숫자가 얼마나 심각한지 체감하려면 11년 전의 신생아 숫자를 보면 된다. 2012년 당시 48만 명이 태어났다. 2023년 이 숫자는 23만 명으로 반 토막 났다. 충청북도를 제외하면 전국 모든 시·도의 출생아 수가 감소했다. 2002년 초저출산국(1.3명 미만)이 됐고, 2018년 처음으로 출산율 0점대(0.977명)에 진입한 뒤 반등 없이 바닥을 뚫고 있다. ‘인구 소멸’을 우려하는 일본만 해도 출산율이 1.3명이다.
2023년 합계출산율에서 17개 시·도의 개별 데이터를 들여다보면 ‘음미할 만한’ 사실들이 발견된다. 세종시와 전라남도가 0.97명으로 공동 1위를 차지한 것이다. 그리고 서울시는 0.55명으로 최하위다.
전라남도의 1위 비결은 출생수당 같은 ‘현금 지원의 힘’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합계출산율 전국 1위(1.65명)에 빛나는 전남 영광군을 필두로 강진군(1.47명·2위), 해남군(1.35명·6위)을 비롯해 장흥군(1.26명), 함평군(1.22명), 신안군(1.17명), 고흥군(1.15명), 장성군(1.15명), 담양군(1.13명), 나주시(1.09명), 영암군(1.01명), 광양시(1.00명) 등에서 합계출산율 1명을 넘겼다.
인구 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 ‘영광 모델’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는 배경이다. 흥미롭게도 ‘영광 모델’의 대척점에 선 곳이 바로 세종시다. 파격적인 현금 지원 없이 합계출산율 1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2년 행정중심복합도시로 출범한 이래 세종시는 2022년까지 합계출산율 1.0명 이상을 달성했다. 유입 인구도 증가세를 유지했다. 2012년 7월 1일 출범 당시 세종시 전체 주민등록인구(외국인 제외)는 10만751명이었다. 2022년 12월 말 기준이 숫자는 38만8927명으로 무려 286% 증가했다.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지점은 국부(國富)가 집중된 수도 서울의 거주민일수록 아이를 더 낳지 않는 현실이다. 서울의 출산율 저하는 ‘돈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가설을 성립시킨다. 그러나 취재 중 만난 세종시 주민의 증언을 빌리면 ‘돈은 출산의 꽤 중요한 요인’이기도 하다. “세종에 살지만, 현금 지원이 두둑한 곳을 일부러 찾아가 아이를 낳는 케이스도 주변에서 봤다.” 그렇다면 전남의 합계출산율 1위에는 ‘착시’가 숨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이를 낳는 부모가 현금 지원이 넉넉한 지자체에 ‘일부러’ 주소지를 옮겨놓는 것이지, 돈을 준다고 아이를 안 낳겠다는 생각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답은 단순하지 않다. 동시에 현장 곳곳에 단서를 품고 있을 것이다. 2024년 월간중앙이 창간 56년 특별기획으로 시대의 화두인 인구 문제를 내놓으며 굳이 세종시까지 찾아간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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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 반려견보다 아이들이 더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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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세종시 공무원 이혜영(가명) 씨는 아이를 셋 키우고 있다. 이씨는 “우리 아파트 윗집과 옆집에도 아이를 셋씩 낳아 키우고 있다”며 “구체적 수치는 모르겠지만, 체감상 유독 세종시는 다자녀 가구가 많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왜 그럴 수 있는지에 관해 이씨는 “거리를 걸어보면 유독 젊은 사람이 많다는 느낌이 올 것이다. 세종시의 연령대는 전국에서 가장 낮은 것(38.6세, 17개 시·도 중 유일한 30대)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의 말은 통계로도 뒷받침된다. 2022년 전국 기준 여성인구 1000명당 출생아 수를 연령대별로 분류하면, 20~24세 4.1명, 25~29세 24.0명, 30~34세는 73.5명, 35~39세 44.1명, 40~44세 8.0명으로 집계됐다. 여기서 서울시(25~29세 9.9명, 30~34세 53.5명, 35~39세 43.4명)가 평균을 깎아먹는다면, 세종시는 지탱해주는 역할을 맡고 있다. 세종시의 25~29세 출산율은 40.4명으로 서울의 4배를 넘는다. 또 30~34세(112.6명), 35~39세(55.7명) 출산율도 평균을 훨씬 웃돈다. 즉,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있는 젊은 부부가 많으니 출산율이 올라가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야 할 시점이다. 대체 세종시에 무슨 매력이 있기에 젊은 부부들이 정주를 선택하는 것일까. 이씨는 “아무래도 타 지역보다 공무원 비중이 높아서 소득이 안정적”이라며 “특히 (세종시 조성 초기인) 2013~14년 특별분양을 받은 요인도 클 것”이라고 짚었다. 취재 과정에서 가장 고심했던 부분이 바로 세종시 인구와 출산율은 ‘공무원 도시’라는 특수한 환경 덕분 아니냐’는 문제 제기였다. 이에 대해 한승희 세종시 정책특보는 “세종시는 ‘공무원이 많으니까’라는 식으로 치부해 버리면, 생산적 대안이 나올 수 없다”며 “잘 찾아보면 그 안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유인책이 있는지를 다른 시(市)나 대기업에서 들여다볼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세종시 인구와 출산율=공무원 버프(buff)’라는 프레임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다. 이는 분명 세종시 인구 유입과 출산율 증대에 기여하는 요인이지만, 실제 이상으로 과대평가되고 있는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최성은 대전세종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세종시 인구 데이터에서 직업군을 보면 생각보다 전체 인구에서 공무원 숫자 비중이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최 연구위원은 “세종시는 국가에서 의무재원을 투입한 다자녀 정책이 없을 때에도 다자녀 가구가 많았다”고 덧붙였다. 심지어 다자녀 가구와 공무원 직업은 특별한 상관관계가 발견되지 않았다. 다시 말해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아이를 낳는 부수적 요인은 될지언정 절대 요인은 아니라는 의미다.
최 연구위원이 주목한 지점은 아이를 낳고 잘 키울 수 있을 것 같은 ‘낙관’을 제공하는 세종시의 인프라와 환경이었다. 구체화하면 일자리, 주택 그리고 교육이 그것이다. 세종시는 태생적으로 일자리와 주택에서 유리한 조건을 점했다. 소득 수준이 올라갈수록 교육의 질 향상이 뒤따라오는 것은 필연이다. 이씨는 “공주, 대전, 청주 등 주변에서 교육을 찾아 많이 이주한다”며 “국회 세종의사당과 대통령 제2집무실 건립 등 미래에 대한 기대감도 있는 것 같다”고 들려줬다.
실제 이씨의 경우만 해도 남편은 공무원이 아니다. 그녀는 “직업 안정성 때문에 아이를 셋 낳은 것이 아니라 ‘아이를 좋아하는’ 개인적 사유가 훨씬 더 컸다”고 고백했다. “출산지원금 등 세종시의 물질적 혜택은 많지 않다. 세종시도 젊은 층 출산율이 계속 낮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2023년 세종시의 합계출산율(0.97명)은 1.0이 깨졌다. 그럼에도 세종시 출산율은 현금성 지원에 치중하는 지자체(주로 소읍)에 밀리지 않고 있다. 그 배경에 깔린 세종시 인프라의 특별함이 도대체 무엇인지, 현장에서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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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키우기 좋은 ‘노잼도시’”
세종시 집현동 복합커뮤니티센터 조감도. 세종시의 ‘복컴’은 아이, 청년, 노인을 위한 편의 시설을 두루 아우르기 위한 용도이기 때문에 규모가 크다. / 사진:행복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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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에서 일하는 30대 공기업 연구원 이민호 씨는 ‘아빠 육아’를 하고 있다. 그는 5살 딸아이를 키우며 생업을 병행하고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묻자 이씨는 쉴 틈 없이 세종시의 콘텐트를 쏟아냈다. “직장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맡아주는 시간 외에도 주말 문화체험이 다채롭다. ‘100인의 아빠단’, ‘대디 데이’ 등 아빠 역할 지원 프로그램 등도 있다. 어린이 박물관과 도서관도 타 도시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종합복지센터에서는 ‘키즈 카페’ 시설도 운영한다.”
세종시 사람들은 우리가 흔히 동사무소 혹은 주민센터라 부르는 곳을 ‘복합커뮤니티센터’라고 지칭한다. 줄여서 “복컴”이라고 불렀다. 정다겸 세종시 여성가족과 주무관은 “복컴 안에는 구청 본연의 업무(행정복지센터) 외에도 지역아동센터, 수영장 등 체육시설, 도서관, 노인 이용시설 등을 겸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시의 특징은 어지간한 구청 규모의 ‘복컴’이 동(洞)마다 분포해 있다. ‘복컴’ 중 18곳에선 장난감 등을 대여해주는 공동육아나눔터를 운영 중이다. 또 13곳에선 방과 후 자녀를 돌봐주는 지역아동센터를 갖추고 있다. 다함께돌봄센터 등 공공돌봄센터도 별도로 있다. 또 종합복지센터에서는 아이, 청년, 노인 등을 위한 맞춤형 콘텐트를 제공한다. 이 밖에 직장맘지원센터 등 외부인은 일일이 명칭을 다 외우기 어려울 정도로 ‘~센터’라는 이름의 육아 인프라가 촘촘하다.
세종시 여성가족부 내부 자료에 의하면 “국공립어린이집 136개소, 공동육아나눔터 18개소, 맞벌이 부모를 위한 육아 야간프로그램 운영 4개소, 방과 후 아동돌봄시설(지역아동센터 13개소·다함께돌봄센터 10개소), 공공형 실내놀이터 3개소 외에 아이돌봄서비스 지원을 종전 연 840시간에서 960시간으로 확대할 것” 등의 내용들이 나와 있다. 또 남성의 육아 장려를 위해 2022년부터 아빠장려금(월 30만원, 최대 6개월) 지급을 적시하고 있다. 세종시는 일련의 정책들을 “세종형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라고 압축했다.
이씨는 “세종시는 노잼도시”라고 말했다. 여기서 ‘노잼’은 ‘천국은 평온하고 지루한 곳’과 유사한 맥락이다. 그는 “딱히 유흥거리가 없으니 가족 중심의 사교모임이 활성화돼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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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의 독특한 연령 분포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주관한 세종시 ‘100인의 아빠단’ 발대식. 아빠의 육아 참여를 활성화하고 육아 노하우를 공유하기 위해 만들어진 온·오프라인 모임이다. / 사진:세종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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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의 인구 피라미드를 그래프로 시각화하면 아주 독특하다. 전국 기준으로는 거의 마름모형(◇)에 가깝다. 중간(50대)이 가장 두껍고, 연령대가 낮을 수록 급격히 가늘어진다. 반면 세종시는 삼각형 두 개를 얹은 탑모형에 가깝다. 가장 두꺼운 라인이 전국 평균에 비해 아래(40대)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20대에서 급격히 가늘어지다가 10대 이하 나잇대에서 다시 한 번 두꺼워진다. 세종시 주민인 이씨는 이런 특수성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12년 된 도시인 세종시는 10대와 30대 인구 비중은 높고, 20대만 낮다. 대학 진학 때문에 20대가 빠져나가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뒤집어 말하면, 이는 세종시가 앞으로 추구할 방향성을 시사한다. 일자리와 교통 외에도 대학과 종합병원 인프라 확충이 인구 유지의 요건일 수 있다.
30대 후반의 전업주부 채성은(가명) 씨는 두 아들의 엄마다. 남편은 세종시 공공기관에서 일한다. 그녀는 세종시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기로 결심한 첫째 요인으로 ‘안전’을 꼽았다. 세종시 도심을 거닐면 곧잘 눈에 띄는 것이 공원·도서관·박물관이라면, 반대로 안 보이는 것도 있다. 바로 노숙자와 모텔이다.
채씨도 세종시 인프라의 수혜자다. “공동육아나눔터를 찾아가면 레고와 보드게임까지 갖춰져 있다. 특정한 날에는 공연도 열린다. (같은 목적으로 찾아온) 비슷한 또래의 엄마들과 정보를 교류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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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미래는 청년층을 어떻게 붙잡을지에 달려”
도심으로 한정한다면 세종시는 신도시 특유의 아우라를 뿜어낸다. 새 아파트가 즐비하고, 유흥시설은 거의 없으며, 공원이 많고, 도로는 깔끔하다. 지역안전지수, 녹지 비율(52%), 삶의 만족도 부문에서 세종시는 모두 전국 1위다. 차 없이는 이동이 불편하고 좁은 도로 탓에 정체가 심한 교통 문제는 여전하지만, BRT(간선급행버스)라는 대안이 있다. 이런 요소들은 모두 집값 상승을 추동한다. 안정적 소득과 안정적 자산은 2012년 7월 1일 출범 이후 지금까지 세종시의 인구 유입을 이끌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제 이런 요인들은 세종시 인구 증가와 출산율 유지에 부담으로 변모하고 있다.
2023년 4월 최성은 대전세종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이 작성한 [세종시 출범 10년에 따른 지역 인구변화 진단을 위한 상생협력연구]라는 보고서 역시 ‘지금까지는 꽤 잘해 왔지만, 앞으로 10년은 어찌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바닥에 깔고 있다. 하나의 본보기로 최 위원은 일본 3040세대가 가장 살고 싶은 도시로 꼽는 ‘요코하마 모델’을 꺼냈다. “주거·육아·돌봄에 방점을 찍는 요코하마의 ‘도시 디자인’이, 지금도 도시 계획이 진행 중이며 동과 읍·면 사이 불균형이 우려되는 세종시에 일종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진단한 것이다. 어떤 형태가 됐든 세종시가 대한민국 인구와 출산율 반등의 ‘테스트베드’로 기능해야 한다는 관점이다.
세종시에서 취업한 30대 정수영 씨는 “지역균형 전형을 통해 서울 소재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에 한해, 졸업 후 제도적으로 출신 지역으로 돌아와 일하게 하는 발상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 위원도 “일본의 ‘J턴’(젊은 층이 로컬로 돌아가는 현상)처럼 교육 등의 이유로 세종시를 떠난 청년들이 다시 돌아와 살고 싶은 지역, 매력적 정주 환경을 제공할 수 있을지에 관해 세종시 차원에서 고민해야 할 시기가 온 것 같다”고 바라봤다.
-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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