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첼로 아본단자 흥국생명 감독. 용인=전민규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좋은 시작이요? 아닙니다."
여자배구 흥국생명이 개막 9연승을 질주하며 선두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경기도 용인 흥국생명 연습체육관에서 만난 마르첼로 아본단자(54·이탈리아) 감독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확신이 그의 얼굴에서 엿보였다.
흥국생명은 올 시즌 무패 행진을 이어가는 중이다. 두 번만 더 이기면 구단 최다 개막 연승 기록(종전 10연승·2020~21시즌)도 깨트린다. 디펜딩 챔피언 현대건설을 상대로 두 차례 모두 이기며 독주 체제를 굳혔다. 그러나 아본단자 감독은 "전술적, 기술적으로 잘 된 부분이 있다. 하지만 끝까지 결과를 내려면 더 성장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인천=뉴스1) 이재명 기자 = 마르첼로 아본단자 흥국생명 감독이 12일 오후 인천 부평구 인천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여자배구 '2023-24 도드람 V리그' 흥국생명과 정관장의 경기를 세트스코어 3대2로 승리한 후 김연경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2024.11.12/뉴스1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김연경이란 특급 선수를 보유한 흥국생명은 지난 두 시즌 연속 준우승에 머물렀다. 2022~23시즌 도중 부임한 아본단자 감독도 고배를 마셨다. 특히 2022~23시즌 1위로 챔프전에 직행한 뒤 2연승을 거두고 3연패로 우승컵을 내줬다. 아본단자 감독은 "개인적인 목표는 플레이오프 진출이다. 정규리그 1위도 좋지만, 플레이오프에 오르는 게 중요하다. 선수들에게 휴식을 주면서 길게 보려고 한다"고 했다.
실제로 최근 5번의 챔프전에선 4번이나 2위 팀이 정상에 올랐다. 1위를 차지하고도 부상자가 발생하거나 컨디션이 떨어져 플레이오프를 거친 팀에게 패권을 내준 사례가 많다. 그래서 아본단자 감독은 단단히 준비했다. 다니엘레 투리노 코치를 영입하는 등 18명이나 되는 팀 스태프(통역·매니저 포함)를 꾸렸다. 다른 6개 구단 평균(12.7명)에 비교하면 월등하게 많은 숫자다.
마르첼로 아본단자 흥국생명 감독. 용인=전민규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아본단자 감독은 보통 1주일에 1경기를 치르는 유럽과 다른 한국 특성상 선수단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한국 리그는 코치만큼 피지컬 및 메디컬 스태프가 중요하다. 2, 3일에 한 번 경기를 하고 주전 선수 6~7명이 정해져 있다. 외국인 선수 2명인데 교체가 어렵다. 선수단 건강 관리가 중요하다"고 했다.
이런 구성은 김연경과의 약속이기도 했다. 김연경은 2022~23시즌을 마친 뒤 FA(프리 에이전트)가 돼 이적하려 했다. 하지만 아본단자 감독은 베테랑 김연경을 위해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뜻을 전했고, 결국 팀에 남았다. 아본단자 감독은 "'야키(김연경의 별명)'가 젊지 않다는 것도 고려했다. 체력적인 부담을 줄여주려 했다"고 설명했다.
전략적인 선택도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흥국생명은 트레이드를 통해 세터 이고은을 데려오고, FA 리베로 신연경도 영입했다.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선 순번이 낮았지만 장신인 투트크 부르주(튀르키예)를 뽑아 높이를 보강했다. 아시아쿼터 황루이레이는 컵대회를 마치자마자 아닐리스 피치(뉴질랜드)로 교체했다. 손발이 맞는 시간이 필요했지만, 빠르게 좋아지고 있다. 아본단자 감독은 "태도적으로 좋고, 팀의 비전에 맞는 선수들을 데려와서 만족한다"고 했다.
작전 지시하는 아본단자 감독 (인천=연합뉴스) 임순석 기자 = 24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배구 V리그 여자부 흥국생명과 현대건설의 경기. 흥국생명 아본단자 감독이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2024.11.24 soonseok02@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가장 성공적인 기용은 4년차 아웃사이드 히터 정윤주(21)다. 서브 리시브가 약하지만 공격력이 좋은 정윤주를 주전으로 썼고, 정윤주는 24일 현대건설전에서 21점을 올리며 승리를 이끌었다. 아본단자 감독은 "이따금 머리 속에 평화가 깨질 때가 있는데, 잠재력이 있는 선수다. 스스로를 믿으면 좋겠다"면서도 "힘든 상황을 거치면서 성숙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전술적인 선택도 성공적이다. 여자배구는 3인 블로킹을 거의 쓰지 않는다. 나머지 3명이 넓은 코트를 수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본단자 감독은 과감하게 이를 꺼내들었다. 김연경(1m92㎝), 김수지(1m88㎝), 투트쿠(1m91㎝)의 장신 군단을 전위에 세우고 발이 빠른 이고은과 정윤주, 그리고 리베로 신연경이 뒤를 막는 시스템이다. 덕분에 상대 외국인 선수들을 잘 막아냈다. 팀 블로킹 1위도 따라왔다.
마르첼로 아본단자 흥국생명 감독. 용인=전민규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탈리아인답게 아본단자 감독은 열정적이다. 특히 작전시간 때는 큰 목소리로 강하게 메시지를 전한다. 그는 "감독으로서는 확실히 지시를 내려야 한다. 또, 선수들이 정신적으로 강해져야 하기 때문에 일부러 압박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경기가 아닐 땐 선수들과 장난을 치는 등 편하게 지낸다. 선수단 규율도 엄격하지 않다.
커피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이탈리아인들은 에스프레소에 물을 붓는 아메리카노를 이해하지 못한다. 특히 얼음까지 넣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커피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겨울에도 차가운 커피를 마시더라"며 웃어넘기는 그에게서 한국 생활 3년차를 맞이한 여유가 느껴졌다. 한국, 한국인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 게 좋은 성적의 원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인=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 중앙일보 / '페이스북' 친구추가
▶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