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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이슈 연금과 보험

“조직적으로 은밀하게 설계”… ‘뒤쿵’ 보험사기 내부 고발자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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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일러스트=이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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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형 보험사의 보험사기특별조사팀(SIU)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자동차 보험사기를 저질렀던 사람이라고 밝힌 A씨는 자신과 함께 사기를 저질렀던 보험사기단을 고발하고 싶다고 했다. 수백만원의 제보 포상금을 받기 위해 마음을 고쳐먹은 것이다. A씨는 범행 과정을 직접 진술하는 한편 조직원과의 텔레그램 메시지와 통화 내역 등을 증거로 제출했다. 결국 보험사와 경찰은 합동 조사 끝에 보험사기 일당 7명을 검거해 지난달 검찰로 불구속 송치했다. 내부 고발이 있는지 약 1년 만이다.

보험사기를 제보할 경우 포상금을 주는 ‘보험사기 신고자 포상 제도’ 덕분에 묻힐뻔했던 사기 사건이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조직적이고 은밀하게 이뤄지는 보험사기를 적발해내는 데 내부 고발이 핵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보험사기를 뿌리뽑기 위해선 포상 제도를 더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 “저 차야, 잘 받아줘, 지금이야 큐!”

A씨가 보험사기에 가담하게 된 것은 2019년 ‘당일 지급 수도권 면허소지자 130만~160만원 버실 분’이라는 인터넷 글을 통해서다. A씨가 게시글에 적힌 텔레그램 아이디(ID)에 대화를 걸자, 보험사기 조직원 중 한 명인 B씨는 “불법은 아니고 편법이다”라며 보험사기에 가담할 것을 권유했다.

이들이 기획한 것은 ‘뒤쿵’ 사기였다. 고의로 자동차를 쿵 들이받아 사고를 낸 뒤 보험금을 가로채는 수법이다. 사기단은 ‘고액알바’를 미끼로 교통사고에서 가해자 역할을 하는 ‘공격수’와 피해자 역할을 하는 ‘수비수’를 섭외한 뒤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교통사고를 일으켜 보험금을 타냈다. A씨는 공격수를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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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 제공




사기단은 A씨에게 김포공항에서 렌터카를 빌려오도록 했다. 사고 이력이 있는 자동차를 이용할 경우 보험사의 의심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A씨와 조직원 C씨는 함께 렌터카에 탄 뒤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으로 향했다.

C씨는 운전대를 잡은 A씨에게 “벤츠 차량이 섭외돼 있다”라며 “우회전하면서 벤츠 운전석 앞부분을 받으면 된다”라고 지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상 오른편에 주정차된 벤츠가 등장했고, C씨는 “저 차야, 잘 받아줘, 지금이야 큐”라고 말했다.

사기단은 사고를 낸 뒤 곧바로 보험접수를 했다. 우회전 중 보행자를 피하기 위해 정차된 차량을 들이받았다는 내용이었다. 보험사 현장출동 직원에게는 한방병원에 입원하겠다고 알린 뒤 곧바로 통원치료를 받았다.

사기단은 A씨에게 자신들이 보는 앞에서 스피커폰으로 보험사 보상직원과 통화하게 했고, 실시간으로 답해야 할 내용을 텔레그램 대화창으로 전달해 그대로 따라 읽게 했다. A씨는 조사 과정에서 “잘은 모르겠지만 2명은 나와 같은 (보험사기) 가담자를 모집하는 것 같았다”라며 “현장을 뛰면서 관리하는 사람과 보험사와 통화하는 사람 등 역할분담이 되어 있었다”라고 했다.

◇ “포상금 제도 효과 톡톡…더 확대돼야”

보험업계는 A씨의 내부고발이 없었다면 검거도 어려웠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사기단이 은밀하고 철저한 계획 아래 움직이는 만큼 내부자의 진술이나 증거가 없으면 의심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난해 보험사기 적발금액은 1조1164억원으로 전년보다 3.2%(346억원) 증가하며 역대 최대치를 갈아치웠다. 하지만 아직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보험사기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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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한 인터넷 카페에 자동차 보험사기 수법 중 하나인 '뒷쿵'을 뜻하는 은어 'ㄷㅋ'을 검색하자 나오는 게시물. /인터넷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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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인터넷에는 여전히 보험사기 가담자를 모집하는 게시글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 인터넷 카페에 뒤쿵을 의미하는 은어를 검색하자 ‘평택 ㄷㅋ하실분 공격 수비 모두 가능’, ‘경남 ㄷㅋ구합니다. 급하신 분들 연락주세요’ 등등 게시물이 쏟아졌다.

이 때문에 보험사기 신고 포상금 제도를 더욱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금융 당국과 보험사는 보험사기 신고센터를 통해 사기 사건을 제보하는 사람에게 포상금을 주고 있다. 포상금 액수는 개별 사건에 따라 달라지는데, 한해 지급할 수 있는 최고 한도는 10억원에서 지난해 20억원으로 상향됐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기 가담자들의 양심으로만 남겨두면 적발하기 어려운 사건이 많다”라며 “포상제도가 확대되고 보험사기 특별법 개정안도 빨리 시행돼야 한다”라고 했다.

이학준 기자(hakju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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