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경찰위, 소음기준 강화·드론 채증
집회·시위서 불가피한 소음 수인할 의무도 있어
신중해야 할 채증, 드론 도입으로 집회 자유 위축
국가경찰위원회는 지난 4일 제532회 정기 회의를 열어 집회·시위 소음 규제를 강화하고 불법행위 증거를 수집하는 데 무인비행장치(드론)를 활용하기 위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개정령안’과 ‘경찰 무인비행장치 운용규칙 일부개정훈령안’을 심의·의결했다. 집시법 시행령 개정안은 법제처 심사와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연내 시행 예정이다.
참여연대는 이에 지난 8일 논평을 내고 반대했다. 경찰위원회가 개정한 법률안이 민주사회의 핵심 기본권인 집회의 자유를 범죄시한다는 것이다.
◆필수적 소음을 ‘수인할 의무’ 말한 대법원
경찰은 지난해 9월 ‘집회·시위 문화 개선방안’을 내고 국민 불편을 최소화하겠다며 집회·시위로 발생하는 소음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집시법 시행령 개정안은 ‘주거지역·학교·종합병원’의 야간(해진 후∼0시)과 심야(0시∼익일 오전 7시) 시간대 소음 규제 기준을 현행보다 각각 10㏈(데시벨) 낮추고, 그 외 전체 소음 규제 기준은 5㏈씩 하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집회 장소에 배치된 경찰 소음측정 차량.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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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우 주거지역·학교·종합병원의 소음 규제 기준은 주간 65→60㏈, 야간 60→50㏈, 심야 55→45㏈로 강화된다. 또 공공도서관은 주간 65→60㏈ 및 야간·심야 60→55㏈, 그 밖의 지역은 주간 75→70㏈ 및 야간·심야 65→60㏈로 각각 조정된다.
대법원은 집회·시위의 본질적 특성을 고려했을 때 일정 정도 소음을 참아줘야 한다며 ‘수인 의무’를 말했다. 수인 의무는 타인이나 국가가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할 때 그러한 행위에 대해 받아들이고 인내해야 하는 의무를 말한다.
대법원은 2009년 판결에서 집회·시위를 “다수가 공동 목적으로 회합하고 공공장소를 행진하거나 위력 또는 기세를 보여 불특정 다수인의 의견에 영향을 주거나 제압을 가하는 행위”라고 규정했다. 이어 “그 회합에 참가한 다수인이나 참가하지 아니한 불특정 다수인에게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소음이나 통행의 불편 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은 부득이한 것이므로 집회나 시위에 참가하지 아니한 일반 국민도 이를 수인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수인 의무는 헌법재판소 역시 강조했다. 헌법재판소는 2003년 결정에서 “개인이 집회의 자유를 집단적으로 행사함으로써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일반대중에 대한 불편함이나 법익에 대한 위험은 보호법익과 조화를 이루는 범위 내에서 국가와 제3자에 의하여 수인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국가인권위원회도 2009년 의견표명에서 현행 시행령의 소음 규정이 집회·시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고 지적했다. 마찬가지로 집회·시위는 필수적으로 소음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 근거였다.
집회·시위의 자유가 절대적 권리는 아니다. 헌법은 집회·시위의 자유를 규정하면서 동시에 이를 제한할 수 있는 근거를 명시했다. 헌법 제37조 제2항에 따라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해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
◆촬영 행위가 집회 위축할 수 있다는 헌재
경찰위원회에서 함께 의결한 경찰 무인비행장치 운용규칙 일부개정안은 운용 목적과 범위에 실종자·구조대상자 등 인명 수색 외에 집회·시위, 집단민원 현장에서의 범죄수사를 위한 증거자료 수집을 추가했다. 집회·시위 현장에서 드론을 이용해 채증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밖에 △교통관리 및 교통법규 위반 단속 △범죄 예방을 위한 순찰 목적 △그 밖에 경찰 업무 수행을 위해 불가피하다고 인정하는 경우도 포함했다.
지난해 6월7일 서울 강서구 방화대교 인근에서 경찰청 드론수색팀이 드론을 이용해 실종자 행방을 찾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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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집회·시위 현장에서 채증을 카메라로만 했는데 사각지대가 있어 현장 상황을 자세히 담는 데 한계가 있었다는 게 입장이다. 또 드론으로 증거 수집을 하겠다고 밝히는 것만으로도 불법행위 사전 차단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부연했다.
헌법재판소와 인권위는 집회·시위 현장에서 경찰의 채증을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을 낸 바 있다. 경찰관이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는 기존 방식의 채증보다 더 넓은 범위를 촬영하는 드론 채증 방식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헌재는 2018년 예비적 심판청구에서 한 미신고 집회에서 일어난 경찰의 촬영 행위가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해 인격권과 집회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봤다. 또 경찰의 촬영이 집회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며 촬영 행위는 ‘불법행위가 진행 중에 있거나 그 직후에 불법행위에 대한 증거자료를 확보할 필요성과 긴급성이 있는 경우에만’ 허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집회가 신고범위를 벗어났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한 촬영의 필요성은 있을 수 있지만 이는 집회현장의 전체적 상황을 촬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설명하며 카메라 여러 대로 집회참가자의 얼굴을 촬영한 것을 두고는 “집회참가자들에게 심리적 위축을 가하는 부당한 방법으로 집회를 종료시키기 위한 목적이 상당 부분 가미되어 있었다고 보인다”고 지적했다.
헌법재판관 9명 가운데 위헌 의견이 5명으로 합헌 의견보다 많았지만 해당 심판청구는 기각됐다. 헌법재판소법 제23조에 따르면 위헌결정을 위해선 재판관 6명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권위 역시 2014년 광범위한 채증이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의견을 경찰청장에게 제출했다. 더불어 불법행위를 하지 않은 집회참가자를 촬영하는 것은 초상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으며 채증자료의 열람과 판독, 보관과 폐기 과정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에 개인정보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소지도 있다고 밝혔다.
윤준호 기자 sherp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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