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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질병과 위생관리

“공짜로 유전자 분석” 한국인 DNA 정보가 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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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등 해외 유전자 업체들, 정부 인증 안 받고 무단 수집

조선일보

중국의 한 업체에서 만든 DTC 유전자 검사 키트. 이 업체는 면봉으로 입 안쪽 벽을 긁어 특수 용액이 담긴 병에 담아 중국으로 보내면 18일쯤 뒤 500여 가지의 유전 정보를 보내준다고 홍보하고 있다. /이용자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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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김모(33)씨는 최근 인터넷 블로그에서 “침 몇 방울만으로 유전자를 분석해 보세요”라는 제목의 글을 봤다. 한 네티즌이 중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유전자 검사 업체인 A사를 이용한 뒤 올린 이용 후기 글이었다. A사는 “직접 자신의 유전자를 채취해 보내면 유전자 정보를 분석해 준다”며 ‘프리미엄 유전자 검사 키트’를 홍보하고 있었다. 1개당 85만원을 내야 구매할 수 있지만, 신규 가입자에게는 추첨을 통해 무료 제공 이벤트를 연다고 했다.

방식은 간단했다. 소비자가 면봉으로 입 안쪽을 10회 정도 문지른 후 용액 통에 꽂아 흔들면 구강 상피세포 일부가 채취됐다. 이 키트를 반송 봉투에 담아 중국 업체에 보내면 업체가 18일 뒤 애플리케이션으로 암과 질병의 위험 정도, 영양 상태 등 500여 가지 요소를 담은 건강 보고서를 보내준다고 한다. 김씨는 “유전적으로 소화기 계통이 좋지 않아 알아볼까 싶다가도 어떤 중국 기관인지 신뢰가 가지 않아서 그만뒀다”고 했다.

의료기관을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온라인이나 약국 등에서 검사 키트를 구입해 민간 업체에 유전자 검사를 맡기는 ‘소비자 대상 직접 시행(DTC·Direct-to-customer) 유전자 검사’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허용 검사 항목을 특정해 규제하던 정부가 지난 2022년부터 항목을 인증제로 바꾸면서 수요가 늘었다고 한다. 문제는 미국·중국 등에 본사를 둔 해외 유전자 업체다. 국내 업체는 우리 정부의 인증을 받아야 하지만, 미인증 상태에서 영업을 하고 있다. 이 업체들이 ‘무료 검사 이벤트’까지 벌이며 호객 행위에 나서면서 한국인 유전자 정보가 통제 없이 해외로 유출된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조선일보

그래픽=김현국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해외 DTC 검사 업체 190여 곳 중 보건복지부 인증을 받은 업체는 한 곳도 없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022년 DTC 검사 관련 규제를 풀면서 유전자 업체의 검사 인력과 시설, 개인 정보 보호 수준 등을 평가하는 DTC 인증제를 시행했다. 민감한 유전 정보를 다루는 만큼, 정부가 어느 정도 통제는 하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올해 3월 기준으로 인증제를 통과한 기업은 국내 업체 10곳뿐이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작년 8월에 국내에서 영업하는 일부 해외 업체에 인증을 받으라는 공문을 보냈지만 답이 없었다”며 “해외에 있는 업체라 우리 정부가 통제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해외 업체들이 한국인의 민감한 유전 정보를 어떻게 활용·관리하는지 파악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이 해외 업체들은 국내 유전 정보를 국외로 반출하면서 소비자 동의 절차도 밟지 않고 있었다. 본지가 직접 A사에서 유전자 검사 키트 구매를 시도해보니 ‘서비스 약관’과 ‘개인 정보 보호 정책’에만 동의하면 살 수 있었다. 개인의 유전 정보를 국외로 반출하는 데 대한 안내는 찾기 어려웠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관계자는 “유전 정보를 국외로 반출하려면 회원 가입을 할 때 ‘국외 이전에 관한 규정’을 따로 고지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법에 빈틈이 있는 만큼 우리나라도 해외 업체가 직접 내국인의 유전 정보를 수집해 가지 못하도록 법적 규제를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 등 해외에서는 안보 차원에서 자국민의 생체 정보가 다른 국가에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하고 있다. 생체 정보가 축적돼 빅데이터화되면 AI(인공지능) 분석을 통해 사람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8일(현지 시각) ‘미국인 민감 정보 해외 이전 규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미국 내 데이터 중개 업자는 자국민의 유전 정보를 북한·중국 등 ‘우려 국가’에 팔 수 없게 됐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중국도 안보 상황 등을 고려해 해외로 유전 정보를 빼내는 행위를 통제하고 있다고 한다.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는 “미국처럼 국가 안보 관점에서 특정 우려 국가를 지정해 정보가 새어나가지 못하게 할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했다.

☞DTC 유전자 검사

의료 기관을 방문하지 않고 온라인·약국·마트 등에서 소비자가 검사 키트를 구입해 받을 수 있는 유전자 검사(Direct-to-customer). 침을 모으거나 뺨 안쪽을 긁어 검체를 채취한 뒤 검사 기관에 보내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조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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