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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의사 된다며 명문대 그만둔다는 아들, 어찌하나요?" [중·꺾·마+: 중년 꺾이지 않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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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교육: <2> 신념 있다면, 의대 재수 결정 수용해야

편집자주

인생 황금기라는 40~50대 중년기지만, 크고 작은 고민도 적지 않은 시기다. 중년들의 고민을 직접 듣고, 전문가들이 실질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
20대 초반의 도전은 해볼 만
30대 이상 직장인은 신중해야
의사 직업 경쟁력 유지될 듯
한국일보

삽화=박구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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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아들을 둔 중년 아줌마입니다. 아들이 지난해 재수해서 명문대 반도체 관련 채용 조건형 계약학과에 입학했습니다. 그런데 올해 의대에 가겠다면서 자퇴나 휴학을 한답니다. 2,000명 의대 정원 증원 이슈까지 겹친 '의대 열풍'으로 고3 재학생과 N수생, 심지어 직장인도 앞다퉈 의대 준비에 뛰어들고 있다는데, 힘들게 합격한 학교를 포기하고 의대에 도전하는 게 현명한 선택일까요? 아들을 응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됩니다."

의대 열풍은 꽤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1996학년도 입시기관 배치표를 보면 서울대 의예과가 맨 위에 자리했고, 그 뒤를 서울대 컴퓨터공학과와 치의예과, 연세대 의예과, 가톨릭대 의예, 경희대 한의예과, 아주대 의예과가 이어갔다. 이후 1997년 외환 위기와 2000년대 후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등 연이은 경제 위기는 의사를 비롯한 전문직 선호도를 올려놨다. 국내 의대 입시에 실패한 학생들이 우리나라 의사 국시가 가능한 헝가리 의대에 지원하는 사례와 유명 학원가에 국영수 선행 학습으로 의대 합격 확률을 높이는 '초등 의대반'까지 등장한 것은 우리나라의 의대 열풍을 단적으로 잘 보여준다.

이렇게 의대 선호 현상이 공고화돼 이공계 기피가 심해지고, 의대 증원 이슈까지 겹치면서 필자는 최근 위와 같은 질문을 꽤 받는다. 질문자의 고민인 '현명한 선택'은 매우 주관적인 기준이므로, 이를 '의대 준비에 너무 늦은 시기는 아닐지'와 '의대 증원 이슈로 의사의 직업 경쟁력이 유지될지'로 치환해서 답변해 보려 한다.

먼저, 위 사례처럼 대학교에 갓 입학했다가 다시 의대를 준비하는 건 객관적으로 늦은 시기는 아니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의학전문대학원의 경우 대학교 졸업생을 뽑았으니 오히려 질문자의 아들은 일찍 진로를 결정한 셈이다. 다만 아무리 의대 열풍이라도 30대 중후반~40대 등은 신중해야 한다. 의대를 준비한다면 의대 입학 후 의사가 되기까지 인턴(수련의), 레지던트(전공의), 펠로(전임의)를 거쳐 적어도 11년은 걸리니 시간과 비용, 적응 과정 등을 잘 고려해야 한다. 극단적인 예로, 40대 이후에 의대에 입학하면 공부 과정 중 끊기는 수입이나, 수련 과정에서 자신보다 어린 선배 의사와의 관계 설정도 큰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만약 아들이 지방 고교 출신이라면 의대 입학이 다른 학생보다 수월할 수 있다. 교육부는 몇 년 전부터 지역인재 육성과 지방대 균형 발전 차원에서 '지역인재 전형'을 만들어 의대 정원의 20~40%를 해당 지역 학생으로만 뽑고 있다. 지방 고교 출신이라면 향후 3년간은 이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교육부는 이 전형 정원을 앞으로 60%까지 늘린다고도 한다. 단, 올해 중 1부터 지역인재전형 자격 요건이 지방 거주 6년으로 변경됐다.
한국일보

그래픽=송정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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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로, 의사 공급이 증가한다고 해도 의사의 직업 경쟁력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5년간 한 해에 2,000명씩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하자, 의사 공급이 증가하면 의사의 소득이나 대우가 지금과는 달라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조성되고 있다.

그러나 의사라는 직업의 기대 근무 연한이 길고 기대 소득이 타 직종보다 높은 것은 변함이 없다. 같은 전문직이라도 변호사처럼 재판마다 평가받지 않고, 대기업 임직원처럼 승진 경쟁이나 실적에 대한 압박감 등이 훨씬 적다는 점도 의사의 직업 경쟁력을 높이는 요인이다. 몇 년 전 의사 세미나에 연사로 참석해 자녀의 희망 진로를 물었더니 대부분 의대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모순적이게도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의 '2020년 전국의사조사(Korean Physician Survey·KPS)'에 따르면, 의사 직업의 미래에 대해 부정적 전망(75.6%)이 긍정적 전망(24.4%)을 크게 앞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의사 일이 고된 것을 알면서도 자녀를 의대에 보내고 싶어 하는 의사가 많은 것이 아닐까 싶다.

다만 의대 입학에 있어 의사의 직업 경쟁력만 따져보는 것이 아니라 의사의 사명감을 잘 이해하고, 그로부터 겪는 정신적 스트레스와 육체적 긴장감, 위험 부담 등을 감당할 수 있는지 고려하는 게 최우선이다. 의업은 단순히 '직업'을 넘어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중대한 일이기 때문이다.

의사 입장에서 의사라는 직업이 편안한 직종은 아니다. 수련 기간도 길고 의대 교수가 되기도 쉽지 않다. 개원한다 해도 '안피성 정재영(안과 피부 성형 정신 재활 영상의학)'이 아니면 잘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여기에 아프고 병든 우울한 환자를 상대해야 하니 감정노동자까지 병행해야 한다. 힘든 날이 반복되면 사명 의식이 가물가물해지기도 한다. 종합병원에 근무한다면 퇴근 후에도 수시로 병원 호출을 받아야 하고, 특히 바이털 진료과(흉부외과, 혈관외과, 산부인과, 응급의학과 등)는 위험 부담도 크다. 만약 질문자의 아들이 여기에 대한 각오가 돼 있다면 부모로서 아들의 결정을 말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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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기 유웨이교육평가연구소장 겸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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