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방영된 의사 드라마 하얀거탑 포스터 |
요즘 TV 드라마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직업 중 하나는 의사다. 돈도 잘 벌고 환자를 살리는 직업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의대 인기가 높아진 데에는 미미하지만 병원 드라마 영향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최애(最愛) 드라마를 꼽자면 2007년 방영된 ‘하얀거탑’이다. 일본 후지TV가 앞서 4년 전 만든 내용을 재구성한 것이다.
최근 의료계 파업 사태를 보면서 하얀거탑이 문뜩 떠오른 것은 둘 다 ‘이권 싸움’이 주 내용이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감히(?) 정부에 맞서 싸우며 숭고한 의미를 부여한다지만 국민이 볼 땐 결국 ‘밥그릇’ 사정이 나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하얀거탑 역시 병원 내 권력을 누가 잡는지가 핵심이다.
드라마에는 지금 뉴스에서 부각되는 의료계 문제들이 이미 나와있다. 인턴과 레지던트 같은 전공의는 늘 바쁘게 뛰어다녔고, 작은 실수에도 선배들한테 혼이 났다. 시도때도 없이 울려대는 호출기를 찬 채 쪽잠을 잔다. 당시엔 몰랐지만 그들은 초과근무와 박봉에 시달렸다. 반면 전문의·교수가 된 고참 의사들의 삶은 매우 여유롭게 그려진다. 병원 지방 분원에는 좌천된 의사가 내려갈 만큼 지방 기피는 그 때도 심했다.
주인공 장준혁(김명민 분)이 명인대학 외과 과장이 되려고 개인 네트워크를 동원해 권모술수를 부리는 장면들은 매우 인상적이다. 타 대학을 나와 존스홉킨스 의대 출신 인재(차인표 분)는 명인대학 텃새에 밀려 실력 발휘를 못하고 떠나기도 한다. 특정 의대 순혈주의와 배타성을 보여준다. 장기간 병원 생활을 같이 한 터라 의사들끼리 의료 사고를 덮기 위한 공모도 일어난다. 병원 내 권력 암투, 의사들간에 위계질서가 강하다는 점을 그 때 처음 알았다.
지난 3일 오후 서울 여의도공원 옆 여의대로 인근에서 열린 의대정원 증원 및 필수의료 패키지 저지를 위한 전국의사 총궐기대회에서 의협 지도부 등 참가자들이 손을 잡고 상록수를 부르고 있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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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벌어지는 전공의 병원 이탈이나 의대생들 휴학은 그들 각자가 스스로 택한 일은 아닐 것이다. 오랫동안 같이 생활할 수밖에 없는 병원은 개인이 나홀로 불참 의사를 내놓기 매우 힘든 구조다. 파업 종료 후 왕따가 돼서 미운털이 박히면 의사로 살아가는데 지장을 받기 때문에 애당초 독자적인 행동을 하기 어렵다. 최근 인스타그램에 ‘다른 생각을 가진 의대생·전공의(다생의)’ 계정이 만들어져 파업과 휴학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들은 “극한 대립 속에서 각자 사정과 의견이 설 자리를 잃어버렸다”며 병원과 의대에 만연한 강제적 집단주의를 지적했다.
현재 정부와 의료계 모두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언제, 어떻게 해결이 날지 예측이 안된다. 하얀거탑에는 권력 다툼과 무관하게 연구에만 몰두하는 병리학 교수와 환자를 내 몸처럼 돌보는 내과의사가 나온다. 아마 현실 속 병원에도 이들처럼 소명의식이 강한 의사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분들도 면허 정지를 앞둔 제자들을 구하러 파업 대오에 나설 태세다. 드라마에서 본 실력과 양심을 갖춘 훌륭한 의사들이 병원을 떠나지 않길 진심으로 바란다.
김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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