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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0 (금)

악성 민원이 부른 비극…사직서 던지는 공무원들 [요즘,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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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멱살 잡고 싶네요


차량 정체에 화를 참지 못한 한 시민의 발언과 올라온 한 공무원의 신상정보. 이 게시글은 결국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30대 젊은 공무원의 안타까운 죽음. 이 비극이 민원으로 시작됐다는 소식은 모두를 경악하게 했는데요. 한쪽에선 공감 섞인 눈물이, 다른 한쪽에선 충격의 당황스러움이 교차했습니다.

항의성 민원에 시달리다 온라인에 신상정보가 공개된 30대 공무원이 숨진 채 발견됐는데요. 6일 인천 서부경찰서에 따르면 전날 오후 3시 40분께 인천시 서구 도로에 주차된 차량에서 경기 김포시 9급 공무원인 30대 A 씨가 사망한 채 발견됐습니다.

A 씨의 사망 경위를 조사하다 한 인터넷 카페 게시글이 떠올랐죠. A 씨는 지난달 29일 경기 김포시의 한 도로에서 진행된 포트홀 보수 공사를 담당했는데요. 당시 포트홀 보수를 위해 편도 3차로 중 2개 차로를 통제했고, 이로 인해 차량 정체가 빚어졌는데요. 그러자 이날 오후 9시 40분께 한 인터넷 카페에 김포한강로가 주차장을 방불케 한다는 게시글이 올라온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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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글에는 댓글이 여럿 달렸는데요. 그 과정 중에 한 네티즌이 포트홀 공사를 승인한 공무원이 바로 A 씨라며 그의 실명과 소속 부서, 직통 전화번호까지 공개했습니다. 네티즌들은 “이 공무원은 퇴근했다고 합니다”, “집에서 쉬고 있을 이 사람 멱살 잡고 싶다” “정신이 나갔네” 등의 댓글로 A 씨를 비난했죠. 그러나 비난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A 씨를 향한 직접적인 민원도 이어졌는데요. 김포시 관계자에 따르면 “A 씨는 악성 민원으로 심적 부담을 느꼈다”라며 “직접적인 비난에 힘들어했다”라고 밝혔죠. 또 A 씨는 삼일절 연휴가 끝나고 처음 출근한 4일에 50여 통에 이르는 항의 전화를 받았다고 알려졌는데요. 일명 ‘좌표 찍기’ 신상정보 공개가 만든 상황이었죠. 다만 경찰은 유족 조사 과정에서 민원인들의 항의와 A 씨 사망 간 인간관계를 확실히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힌 상태인데요. 이런 가운데 김포시는 해당 카페 네티즌들을 경찰에 고발하기로 내부 방침을 정했습니다.

시는 “강력한 법적 대응을 위한 진상조사와 경찰 고발을 추진할 계획”이라며, 현재 관련 증거 자료를 모으고 구체적인 혐의를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죠.

현재 해당 카페에서 A 씨 관련 게시물들은 삭제된 상태인데요. A 씨 사망 사실이 알려지자 카페 운영자는 “안타까운 소식에 저희 카페가 관련돼 있다는 점에 뭐라 말할 수 없는 죄책감과 슬픔이 밀려온다”라면서 “단순한 민원성 게시물로 판단해 신상털기와 마녀사냥식 댓글을 인지하지 못했다”라고 사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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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씨 사망 소식에 악성 민원에 분노하는 댓글도 쏟아졌는데요. 해당 댓글에는 같은 공무원으로서 그 스트레스에 깊이 공감한다는 글도 대거 올라왔죠. 머니투데이에 따르면 A 씨의 옆자리 직원은 A 씨 사망 후에 사직서를 내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악성 민원과 관련한 공무원의 회의감이 심각하다는 건데요.

사실 공무원에 대한 이 같은 분위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한때 ‘철밥통’으로 불리며 엄청난 경쟁률을 자랑하던 ‘공무원 인기’는 진짜 ‘라떼’의 일이 되어가는 중인데요.

공무원 인기는 1997년 외환위기 발발 이후 시작됐습니다. 직장이 하루아침에 부도가 나고, 직장인들이 해고를 당하면서 사각지대로 내몰리는 상황이 되자 ‘평생 고용’이 보장되고 연금도 기대할 수 있는 공무원의 인기가 급격하게 상승했죠. 많은 졸업생이 공무원이 되고 싶어했고, 수많은 공시족이 노량진에 몰려 수험 준비를 하는 풍경은 익숙해졌습니다. 매년 높아지는 경쟁률이 당연해졌죠.

하지만 이 인기는 2020년대 들어 급격하게 무너졌는데요. 올해 1월 28일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4749명을 뽑는 국가공무원 9급 공채 선발경쟁률은 21.8대 1을 기록했습니다. 2011년 93.1대 1까지 치솟았던 공무원의 인기가 32년 만에 최저치를 찍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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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인기 하락세는 열악한 처우에 수많은 악성 민원, 수직적인 조직문화에 대한 불만들이 섞인 결과라는 평인데요.

최저시급을 받으며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들과 별다른 월급 메리트가 없는 데다가 민원인들을 상대하는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구직자들의 눈높이에 맞지 않게 된 거죠.

그리고 이 민원의 강도는 더 심해지기만 했는데요. 팬데믹을 거치면서 정부와 시민들이 현장 공무원에게 요구하는 일은 점점 늘어났지만, 한정된 인원으로는 이를 감내하기가 어려워진 거죠. 거기다 관리자들이 악성 민원과 책임을 젊은 공무원에게 떠넘기면서 이들은 더 큰 고통에 시달리게 된 겁니다.

결국, 공무원 또한 요즘 세대라고 불리는 MZ세대들의 유입에 두 손 두 팔 벌리고 있지만, 들어오는 숫자보다 나가는 숫자가 더 많다는 소리가 들려오는데요. 공시(공무원 시험) 준비 기간보다 업무 기간이 더 짧다는 한탄까지 나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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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을 잡아보고자 분위기 쇄신에 나선 지자체들의 헛발질로 웃음을 사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공무원으로 첫발을 내딛는 강원 춘천시 신입 공무원들이 시보 꼬리표를 떼고 공식 공무원이 되는 것을 위한 이벤트로 ‘새내기 공무원 시보 해제 나무심기’를 기획했는데요. 공무원 자긍심과 나무심기가 어떤 상관관계가 있냐는 비판이 쏟아졌죠. 그 상관관계는 다른 곳에서 정확히 일치했는데요. 춘천시청 8급과 9급 공무원이 지난해 1분기에만 9명이 떠났다고 알려졌습니다.

유튜브만 보더라도 ‘공무원 사표냈습니다’, ‘공무원 시험 준비 3년, 공무원 생활 1년 만에 퇴직합니다’, ‘나는 다를 줄 알았지만, 공무원 때려칩니다’ 등의 브이로그가 즐비합니다.

결국 MZ들의 생각에서 MZ를 바라봐야 한다는 조언들이 나오고 있는데요. 윗사람들의 생각으로 “이 정도면 좋은거지”라는 긍정적인 태도는 “내가 때려친다”는 부정적인 결과만 도출된다는 뼈아픈 충고죠. 또 악성 민원을 떠넘기기보다 이를 대처할 수 있는 방어막을 구축해 주는 것이 선임들의 역할이라는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할 현재가 아닌가 싶습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상담 전화 ☎109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투데이/기정아 기자 (kki@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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