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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7 (토)

엄상필·신숙희 대법관 취임… 중도·보수 성향 짙어진 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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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합의체 중도·보수 대 진보 8대 5로 재편

전직 판사 "대법관 성향이 아니라 추천·임명의 문제"

아시아경제

4일 취임한 엄상필·신숙희 대법관 프로필. 그래픽=연합뉴스 김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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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엄상필 대법관(55·사법연수원 23기)과 신숙희 대법관(54·25기)이 4일 취임하면서 대법원의 지형 변화가 구체적인 판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법조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엄 대법관과 신 대법관은 지난 1월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 안철상 전 대법관과 민유숙 전 대법관의 후임으로 대법관에 임명됐다. 안 전 대법관과 민 전 대법관은 각각 '중도' 및 '진보' 성향으로 분류됐던 대법관이다.

14명의 대법관 중 법원행정처장을 맡고 있는 천대엽 대법관은 전원합의체에 참여하지 않는다. 김상환 대법관은 2021년 5월부터 법원행정처장을 맡아오다 지난 1월 처장직을 물려주면서 다시 전원합의체에 포함됐다.

전원합의체를 구성하는 13명의 대법관 중 조희대 대법원장과 이동원·오석준 대법관 등 3명은 '보수'로, 노태악·서경환·권영준 대법관 등 3명은 '중도', 김선수·노정희·김상환·이흥구·오경미 대법관 등 5명은 '진보'로 각각 분류된다.

엄 대법관과 신 대법관의 취임으로 전원합의체 중도·보수 대 진보 비율은 8대 5로 재편됐다. 기존 7(중도·보수)대 6(진보)에서 중도·보수 성향이 더 강해진 것.

법조계에서는 진보 성향의 대법관이 수적으로 우세했던 김명수 코트 시절 노동·산업 분야에서 다수의 전향적인 판결들이 쏟아졌던 것처럼 향후 대법원의 기조에 분명한 변화가 있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게다가 오는 8월 진보 성향의 김선수 대법관이, 12월 역시 진보 성향인 김상환 대법관이 각각 임기가 만료돼 퇴임하고 후임 대법관이 임명되면 대법원의 중도·보수 성향은 더울 짙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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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조직법은 대법원의 경우 전원합의체에서 심리·판결하는 것을 원칙으로 정하고 있다. 물론 소부에서 선고할 수 있는 예외적인 경우를 넓게 허용하고 있지만, 기존 대법원의 견해를 변경하거나 명령·규칙의 위헌성 심사 등 사회적으로 이슈가 될만한 중요사건은 전원합의체로 회부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대법관들의 성향이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법원조직법 제7조(심판권의 행사) 1항은 '대법원의 심판권은 대법관 전원의 3분의 2 이상의 합의체에서 행사하며, 대법원장이 재판장이 된다. 다만, 대법관 3명 이상으로 구성된 부(部)에서 먼저 사건을 심리(審理)하여 의견이 일치한 경우에 한정하여 다음 각 호의 경우를 제외하고 그 부에서 재판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1호부터 4호까지 ▲명령 또는 규칙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인정하는 경우 ▲명령 또는 규칙이 법률에 위반된다고 인정하는 경우 ▲종전에 대법원에서 판시(判示)한 헌법·법률·명령 또는 규칙의 해석 적용에 관한 의견을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 ▲부에서 재판하는 것이 적당하지 아니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등 반드시 전원합의체에서 재판해야 할 경우를 열거하고 있다.

현재 대법원에는 금속노조가 원청인 현대중공업에 대한 하청노조의 단체교섭권을 인정해달라며 낸 소송이나 통상임금 관련 소송 등 노동·산업계가 예의주시하는 사건들이 여럿 계류돼 있다.

한편 법원 안팎에서는 특정한 판결 사례 몇 개를 근거로 대법관의 성향을 보수와 진보 등으로 구분하는 것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여러 가지 요소 중에 한 두개의 프레임으로 대법관의 성향을 규정짓는 건 다른 평면에서 여러 오해를 낳을 가능성이 있다"라며 "신 대법관의 경우만 해도 여성 문제에 있어서는 완전 '진보' 성향이지만 제가 오래 지켜본 바로는 노동 문제에 관해서는 중립적인 입장을 갖고 계신 분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법원에서 중립적이라는 것은 법원의 역할이 시스템을 안정화시키고 지키는 것인 만큼 밖에서 볼 때 '중도·보수‘라고 네이밍을 할 수 있겠지만, 과연 신 대법관을 '중도' 혹은 '보수'로 분류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여러 분야마다 각각의 서로 다른 입장을 갖고 있는 대법관을 진보나 보수 어느 한쪽으로 특정해 전체 대법관의 성향을 숫자로 얘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 변호사는 이전 정부 시절 김명수 전 대법원장 체제에서 진보적인 노동 판결이 다수 선고됐다는 평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가령 사용자에게 지금 있는 것보다 하나를 더 주는 판결은 '보수적 판결'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결과 노동자에게 다섯이 더 가게 된다면 그 판결은 보수적이냐 진보적이냐"라며 "진보적인 판결이라기보다는 기업친화적 성향과 대조되는 노동친화적인 판결이라고 부르는 게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변호사는 대법관에 임명된 대법관들의 성향이 문제가 아니라, 애초 대법관 후보자를 추천할 때 함량에 미치지 못하는 후보자가 추천돼 대법관에 임명되는 게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문제는 대법관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본적인 역량을 가진 법관들로 퍼펙트하게 대법원을 구성하느냐의 문제이다"라며 "대통령의 대법관 임명에는 국회의 동의와 대법원장의 제청이 필요한 만큼 세 기관이 견제와 균형을 이뤄 대법관을 임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쉽게 얘기하면 나이나 경력 등 요건을 갖춰 대법관 후보자 군에 포함될 수 있는 법관이나 변호사가 200명이라고 가정할 때, 그중 실제 대법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사람은 20명 정도라고 볼 수 있다"라며 "대법관 역량을 갖춘 그 20명의 카테고리 안에서 대법관이 임명된다면 노동 혹은 조세 등 특정 분야에서 진보나 보수 성향의 대법관이 다소 수적으로 많다고 해서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누가 대통령이 됐다고 해서, 혹은 누가 대법원장이 됐다고 해서 180등에 있는 사람을 '나랑 생각이 비슷한 사람인 것 같다', '우리 편을 잘 들어줄 것 같다'라는 등 이유로 대법관에 추천하고 임명하는 게 문제다"라며 "법원이 제대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시스템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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