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 동구 계림동에 위치한 한 여인숙 방 내부. 고귀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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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오후 광주광역시 동구 계림동 한 여인숙의 2층 달방. 성인 두 명이 간신히 누울 만한 좁은 방에는 먹다 남은 통조림, 빈 소주병 등과 뒤섞인 음식물 쓰레기로 심한 악취가 났다. 창문이 외풍을 막기 위해 비닐로 막혀 있어 환기가 어려운 탓이다.
4년째 이 방에 거주하는 50대 A씨는 “익숙해져 생활에 불편한 것은 없다”며 “며칠 동안 일을 하지 못해 앞으로 끼니를 어떻게 때워야 할지가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3일 광주광역시에 따르면 오래된 여인숙과 모텔 등 쪽방에 사는 지역 주민은 500가구가 넘는다. 달방이라고도 불리는 이 거주지는 세면·취사·화장실 등의 부대 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대신 보증금 없이 10만~20만원의 월세만 내면 살 수 있어 취약계층이 주로 이용한다.
문제는 쪽방 거주자 가운데 사회와 단절돼 은둔 생활을 하는 1인 가구가 많다는 점이다. 경제적·사회적인 상황이나 불안정한 심리 상태로 스스로 고립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광주시 동구가 지난해 쪽방 주민 160명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이들은 사업실패나 실직, 이혼 등을 경험한 비율이 높았다. 응답자의 40%는 ‘큰 절망을 경험했다’고 답했고, ‘극단적 선택을 생각한 적이 있다’는 비율도 27.5%에 달했다. 사회적 고립 문제도 크다. 이들 중 60%는 ‘연락할 사람이 없다’고 응답했다.
위기 상황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긴급복지나 주거·고용 등 지원이 가능한 거주자도 있지만 복잡한 신청 절차와 신분 노출 등을 우려해 담당 공무원 등과의 대화를 꺼리고 있다. 쪽방은 노후 건축물에 마련된 경우가 대부분으로, 건물주나 임대인은 따로 살아 거주지 관리도 부실하다. 그런 탓에 임차인의 생활 환경을 파악하기도 힘들다.
실제 지난달 20일 계림동 한 여인숙에서는 이틀 동안 음식을 먹지 못해 사경을 헤매던 60대 주민을 공무원들이 발견해 구조했다. 주민등록이 말소돼 생계가 어렵고, 석 달 동안 월세도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복지 서비스와 연계되지 못했다.
지난 2월 27일 오후 여인숙 등 쪽방이 밀집해 있는 광주광역시 동구 계림동 한 골목에서 공무원들이 거주자 실태조사를 하고 있다. 고귀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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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과 생활고 등을 견디다 못해 생을 마감한 ‘송파 세 모녀의 사건’ 10주기를 계기로 전국 지자체가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한 정책 발굴에 집중하면서 광주시도 쪽방촌 등 소외계층에 대한 사회 안전망 구축에 힘을 쏟고 있다.
민관 협업을 통한 ‘돌봄 울타리’ 체계를 구축해 고립된 이들의 주거 환경을 개선하고 사회적 복귀를 돕는 게 핵심이다.
우선 동구는 쪽방 거주자의 70%가 몰려있는 계림동과 충장동 쪽에 지난달 11일 ‘쪽빛 상담소’를 열었다. 5개 자치구와 광주사회서비스원·광주도시공사·지역자활센터·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 관계 기관, 민간단체 등이 협력해 쪽방 거주자들에 생활 안전과 사회 정착을 돕는다.
심리 상담을 비롯해 치과 진료, 주거·자립 지원을 비롯해 요청 시 취업과 직업 훈련을 연계한다. 또 공용 부엌과 빨래방, 샤워실도 이달 새로 만들어 누구든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동구는 지난달부터 쪽방촌 전수조사에 착수해 쪽방 관리자들과 함께 거주자들의 상황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방안을 구상할 예정이다. 밑반찬과 생필품 등의 지원도 검토하고 있다. 이와 관련한 조례안도 발의된 상태다.
박병훈 사회복지학 박사는 “쪽방 거주자들은 오랜 기간 마음의 문을 닫고 잠적 생활해 왔던 만큼 관련 정책을 펼치는 지자체는 이들의 자연스러운 변화와 참여를 유도하도록 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고귀한 기자 g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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