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교수 담론의 핵심에는 ‘타협’과 ‘통합’이 있었다. 그는 한국에서 1987년 민주화가 대규모 유혈 사태 없이 순조롭게 이뤄진 데 대해, 군부 세력 내 개혁파와 민주화 운동 내 온건파가 타협을 주도했기 때문이라는 시각을 제시했었다. 그 뒤로도 임 교수는 이념보다는 타협과 실용을 주문했고, 팬덤에 휩쓸리는 계파 정치를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인위적으로 경쟁자를 배제하려 한다면 민주주의가 후퇴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임 교수가 지난해 말 민주당 공관위원장으로 선임됐을 때만 해도 민주당 내에선 “교수님은 워낙 강직한 분이라 이재명 대표 말조차 듣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 나왔다. 독립적인 공천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였다.
실제로 벌어진 일은 비명 배제 ‘시스템 공천’이었다. 공천에 치명적으로 작용하는 ‘의원 평가 하위 20%’에 대해 임 교수는 “평가위원회에서 의원들 점수·등수가 적힌 한 장(명단)만 받았다”고 했다. 비명 의원들에게 하위 평가에 포함됐다는 내용을 전하면서도 “저도 잘 모른다. 그냥 통보만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 교수는 ‘친명은 단수 공천을 받고, 비명은 공천에서 배제되거나 친명 후보와의 경선에 부쳐지고 있다’는 비판은 모른 척하고, 친명 여론조사 업체가 동원됐다는 의혹도 외면하고 있다. 그러면서 “윤석열 검찰 정권 탄생에 원인을 제공하신 분들은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달라” “선배 정치인들은 후배에게 길을 터주기 바란다”며 친명·비명 갈등에 불을 댕기기만 했다.
민주당 내에선 “이 대표가 원로 학자를 친명 공천의 방패막이로 세웠다”는 뒷말이 나온다. 노학자가 수십 년간 쌓아 올린 학문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그는 지금 친명의 들러리를 선 것일까, 아니면 스스로 ‘찐명’이 된 것일까.
[김경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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