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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7 (토)

[그 영화 어때] 똥은 똥이 아니라 빛이다, 영화 ‘오키쿠와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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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신정선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48번째 레터는 21일 개봉한 영화 ‘오키쿠와 세계’입니다. 누군가 저에게 이번주 딱 한 편만 추천해보라고 한다면 이 영화 ‘오키쿠와 세계’입니다. 이 영화는 아름답다라는 형용사를 소리로 보여주고 냄새로 들려줍니다. 사랑한다는 동사를 체온으로 전해주고, 눈으로 말해줍니다. 냄새라곤 똥냄새뿐인데, 색이라곤 흑백뿐인데. 그런데도 다 들리고 다 느껴지는 90분간의 영상 시집입니다. 심지어 웃기기까지 해요. 더러운 똥이 나오는데 사랑스러운, 신기하고 신비한 영화랍니다. 왜냐고요. 이 영화의 똥은 똥이 아니라, 어둠에 깃든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빛이기 때문입니다.

조선일보

첫 눈에 반한 영화 '오키쿠와 세계' 포스터입니다. 세 사람이 처음 만나는 장면이기도 하죠. 똥거름장수, 폐지장수, 무사의 딸이 우연히 만나 함께 비를 긋던, 똥이 있어 아름답던, 청춘의 나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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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이건 봐야해!’ 이 영화 포스터를 본 순간 꽂혔습니다. 와. 감탄이 나오더군요. 정말 시적이지 않나요. 게다가 두 남자 주인공이 똥을 퍼다 나르는 똥거름장수라니. 극과 극 사이에서 아름다움이 탄생하는 걸까요. 포스터 장면은 영화 초반부에 나와요. (그러고보니 포스터 글자색이 똥색, 아니 황금색이네요.) 젤 왼쪽이 폐지장수를 하다 똥장수로 전업하는 츄지, 가운데가 주인공 오키쿠, 오른쪽이 츄지와 동업하게 되는 야스케입니다. 세 사람은 비를 피하다 처마 밑에 모이게 되는데, 오키쿠는 이때 이미 츄지에게 마음이 있었죠.

이 영화의 배경은 19세기 에도. 100년도 더 된 얘기고 다른 나라 얘긴데,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아요. 왜냐.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인이나 일본인이나, 언제 누구에게나, 중요한 똥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영화 첫 장면은 큼지막한 뚜껑. 무슨 뚜껑이냐. 바로 똥뚜껑입니다. 절간 스님들의 똥을 고이 모셔둔 똥뚜껑을 열고 한 청년이 똥을 퍼냅니다. 우리의 야스케가 바가지로 작업하는데, 사뭇 전문가의 손길이 느껴집니다. 철푸덕철푸덕, 질퍽질퍽, 소리도 어쩜 그렇게 잘 넣어놨는지. 영화는 이런 식으로 똥을 생생하게 보여주는데 일말의 주저함이 없습니다. 4DX 상영관이 아닌데 냄새가 맡아지는 느낌이 들어요, 정말.

그런데도 더럽거나 거부감이 느껴지기보다는 아련하고 애잔해요. 똥장수 야스케가 똥을 대하는 마음을 보여주거든요. 야스케는 똥을 황금의 사금파리라도 되듯 소중하게 쓸어담습니다. 맨손으로요. 똥 팔러 갔다가 멸시당하고 똥통을 뒤집어써도 저주하거나 원망하지 않아요. 츄지가 “힘들어 보이는데 오늘은 그만하자”고 해도 “무슨 소리야. 지금도 사람들이 곳곳에서 똥을 싸고 있어! 똥이 우리의 식비야. 고마운 줄 알고 받아야해”라며 똥을 푸러 일어섭니다. 과연 그 어느 누가 똥장수 야스케보다 더 자신의 밥벌이에 진실할까요.

똥을 두고 오가는 대사는 시공을 초월하는 사실감이 질펀합니다. 폭소가 절로 터져요. 홍수가 나서 강 건너 사는 똥장수가 오지 못하게 되자, 오키쿠가 사는 공동주택은 똥처리가 안 돼 주변이 똥바다가 됩니다. 제 표현이 과하다고 느끼실 수 있는데, 정말 문자 그대로 똥이 거리에 넘쳐나서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이하 주민들의 대화를 한 번 보실까요.

“악, 똥 밟았어! 비키라니까!”

“조심해, 다 튀잖아!”

“이대로 두면 제 코가 다 닳아 없어질 것 같아요!”

“곧 넘칠거야, 쭈그려 앉으면 엉덩이에 닿을 지경이라고!”

“지릴까봐 재채기도 못하겠네, 싸질 못하니 먹지도 못하잖아, 어떻게 좀 해달라고!”

(아, 제가 쓰면서도 그 장면이 생각나 웃음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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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나라도 괜찮나요?" 대답 대신 그녀는 그의 손을 꼭 잡습니다. 날리던 눈이 쌓이고 두 무릎은 시린데 알 수 없이 따뜻하던 어느 겨울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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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오키쿠와 세계’인데요, ‘세계’라는 말은 무사인 오키쿠 아버지의 대사에서 나왔어요. 아버지가 똥 푸러 온 츄지한테 그러거든요. “세계라는 말을 아나. 이 하늘 끝이 어딘지 아나. 끝 같은 건 없어. 그게 세계지. 요새 나라가 어수선한 건 그걸 이제 알아서야. 그야말로 우물 안 개구리야. 이보게, 사랑하는 여자가 생기면 이 세계에서 당신이 제일 좋다고 말해줘. 그보다 더 좋은 말은 없어. 그게 제일 좋은 말이야.”

네, 그래서, 츄지는 “세계에서 당신이 제일 좋다”는 말, 세상에서 제일 좋은 그 말을 오키쿠에게 합니다. 그 장면이 위의 스틸 사진입니다. 오키쿠는 영화 중간에 모종의 사고로 목소리를 잃고 손짓 발짓으로 뜻을 전하는데요, 츄지도 말 대신 몸짓으로 “세계에서 당신이 제일 좋다”고 합니다. 먼저 주먹으로 가슴을 치고, 크게 또 치고, 머리를 때리고, 무릎을 꿇고 땅을 치고, 커다랗게 원을 그려보여요. 그 와중에 눈이 오기 시작하는데, 눈이 하얗게 하얗게 쌓일 때까지 츄지는 계속 땅을 치고 두 팔을 벌렸다가 원을 그립니다. 보고 있던 오키쿠가 가만히 그런 츄지를 안아주지요. 세계에서 당신이 제일 좋으니까. 아무리 냄새가 나도. 그 냄새가 똥냄새라도. (아, 코끝이 시리게 아름다운 장면이에요.)

제가 위에 말씀드렸죠. 이 영화의 똥은 똥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빛이라고요. 똥이 빛이 되는 마법, 이 영화에서 꼭 만나보세요. 90분 영화는 거의 흑백인데, 중간중간 장(章)이 바뀌기 직전에 살짝 꽂아둔 엽서처럼 컬러 장면이 나오는데요, 그 부분만 모아서 다시 보고 싶네요.

이 밤을 새면서 더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저희 레터 서비스도 마감 시간이 있어서 여기까지 줄일게요. 자정이 다 돼서. 자정 전에는 마감을 해야 내일 목욜자에 여러분 이메일로 날아갈 수 있어서요. 오타가 걱정되지만 급히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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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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