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계 출신 최초 美 국무부 통역국장…"북미 정상 만나리라고 상상 못 해"
"북한말 100% 못 알아들어 영어 통역 받아적어 가며 단어 공부"
"한미동맹 피로 새겨 굳건…정권마다 우선순위 다르지만 토대 변치 않아"
판문점 북미정상회담 통역하는 이연향 씨 |
(워싱턴=연합뉴스) 김경희 특파원 = "비현실적이었다."
북미 정상회담을 비롯해 굵직한 회담에서 한국어 통역을 도맡은 이연향 미 국무부 통역국장은 27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처음으로 마주한 싱가포르 회담 당시를 이렇게 규정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국무부 한국어 통역관으로 활동한 이 국장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비롯해 현재 조 바이든 대통령까지 정상들의 통역을 비롯해 국무장관 등 고위직 통역을 도맡은 인물이다.
그는 국무부 최초의 소수인종 출신 통역국장으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지난해 국무부 홍보 영상 '토니와의 산책'에 출연하기도 했다.
이 국장은 이날 한미경제연구소(KEI) 초청 대담에서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과 관련해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으로서 '비현실'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국무부 근무를 결심한 이유 중 하나가 북미 관계 개선에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희망은 있었지만, 북미 정상이 실제로 만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국장은 "그렇기 때문에 이는 정말로 놀랍고 흥분되는 일이었다"며 "그러나 차분하고자 노력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나는 초조하지는 않았다. 물론 내가 참여한 다른 어떤 회의보다도 긴장감은 높았다"며 "오랫동안 외교 통역으로 활동하며 이런 종류의 환경에 익숙했지만, 이는 전혀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었다. 매우 흥분되는 일이었다"고 덧붙였다.
이 국장은 "북미 정상이 긍정적인 분위기에서 대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했다"며 "통역은 단지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해야 하고, 전체적인 분위기를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나는 회담에서 긍정적 역할을 하고자 노력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의 인상을 묻는 말엔 "현역 통역가로서 답할 수 없으니 양해해 달라"고 답을 피했다.
북한말을 통역할 때의 어려움에 대해선 "한국에서 자랐기 때문에 북한말을 들은 적이 전혀 없었다"며 "처음으로 뉴욕에서 북한과 마주했을 때 북한말을 100% 알아들을 수 없어서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수십년간의 단절이 이렇게 큰 언어적 차이를 낳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며 "북한말과 북한쪽 통역관이 영어로 하는 말을 같이 적어서 단어를 익히고 공부해야 했다"고 공개했다.
그는 또 "동시에 내가 북한말을 이해하는 것이 어려운 만큼 북측에서도 나의 한국말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자각했다"며 "되도록 쉽게 말하고, 외래어를 사용하지 않고, 단문을 사용하는 전략을 썼다"고 부연했다.
이 국장은 북한의 통역가들에 대해선 "그 정도의 고위 통역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매우 훌륭한 자질을 갖추고 있다"며 "나는 항상 어디에서 그들이 영어와 통역 기술을 배웠는지 궁금했다"고 평가했다.
한편 이 국장은 한미 관계 변화에 대해선 "피로 쓴 혈맹으로써 한미는 매우 강력한 전략적 동맹이며 기조나 원칙, 기본 토대는 변치 않을 것으로 본다"며 "그렇기 때문에 양국 관계에서 변화가 있다 하더라도 이는 우선순위의 문제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권마다 우선순위가 다르고 접근 방식이 다르다. 양국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 요인도 있다"며 "예를 들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나 가자 문제 등 외부 요인이 한미 관계에 영향을 미치지만, 우리 동맹의 강력한 토대는 변치 않을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제 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한국어 통역사 역시 핵심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면서 "모든 국제회의마다 한국어 통역의 수요는 커지고 있으며 한국어가 모든 국제 행사에서 중요 언어로 자리매김해 기쁘다"고 했다.
kyungh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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