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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5 (월)

할머니 239명 대학 간다…“아들 박사학위 딴 것보다 기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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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일성여자중고등학교 졸업식이 열린 27일 오전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에서 고교 졸업생 이복자(65)씨가 학술상을 받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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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3520원.



이복자(65)씨는 50년 전 고등학교 등록금을 10원 단위까지 정확히 기억한다. 아프신 아버지 병원비를 대느라 6남매는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가족들 몰래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봤어요. 합격통지서를 혼자 가슴에 안고서… 끝내 부모님께 말씀을 못 드렸어요. 그게 한이 되더라고요.” 혼자 눈물짓던 여중생은 50년이 지나고서야 꿈에 그리던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씨와 같은 40∼80대 여성 만학도들이 다니는 2년제 학력 인정 평생학교 ‘일성여자중고등학교’ 졸업식이 27일 오전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렸다. 이날 중학교 294명, 고등학교 239명 총 533명의 졸업생이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강당을 가득 메웠다. 특히 올해 고교 졸업생 239명은 모두 대학에 진학하며 ‘18년 연속 대학 진학률 100%’라는 대기록도 이어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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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성여자중고등학교 졸업식이 열린 27일 오전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에서 2024학년도 수능 최고령 응시자 김정자(83)씨가 상을 받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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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중학교를 졸업한 김순자(72)씨는 “아들이 미국 대학에서 박사학위 딴 것보다 내가 중학교 졸업한 게 더 좋다”며 웃었다.



김씨는 어릴 적 경제적 어려움으로 초등학교를 그만두고 버스 매표소에서 표를 팔았다. 교복 입고 중학교에 가는 친구들을 보면서 남몰래 울기도 했던 김씨는 이제 고등학생이 된다.



미국에 있는 손자들과 영어로 대화하는 게 꿈인 김씨는 대학교 영문과 진학을 준비할 계획이다. 김씨는 ‘어린 나에게 어떤 말을 해 주고 싶냐’는 질문에 “그래도 진솔하게 살다 보니까 오늘이 있는 거 아닐까요? 지금 내게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라고 답했다.



졸업식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건 시상식이었다. 최고령 졸업생 김재술(88)씨가 대표로 졸업장을 받았고, 2024학년도 수능 최고령 응시자이자 숙명여대 사회복지과 신입생 김정자(83)씨는 국회인권포럼상을, 인천 강화도에서 4년 내내 왕복 5시간 통학을 한 박순자(63)씨는 학교장상을 받았다. 상을 받은 졸업생들은 “나 상 받았다!”며 두 팔을 번쩍 들고 외치거나, 강당 2층을 가득 메운 가족들의 격한 환호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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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성여자중고등학교 졸업식이 열린 27일 오전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에서 졸업생들이 선생님들에게 ‘하트’로 고마움을 표현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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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이선재 교장의 축사와 교사들의 축가가 이어지며 눈물바다가 됐다.



학생 대표로 전별사를 낭독한 김주순(69)씨는 “공부를 할 수 없는 어려운 가정 형편에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자녀들의 학창시절 가정환경 조사서를 쓸 때는 어떻게 쓸지 고민하기도 했다”며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에 놀라고 가슴 아팠다. 같은 아픔을 갖고 있기에 서로가 마음의 문을 열어 가며 좋은 동문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며 눈물을 삼켰다. 자리에서 일어나 전별사를 듣던 졸업생들도 곳곳에서 손수건으로 연신 눈가를 닦았다.



이복자씨는 이날 평균 90점 이상의 우수한 성적을 거둔 학생들이 받는 학술상을 받았다. “50년 전 중학교 졸업식이 생각난다”며 눈물을 훔치는 그의 뒤로 서강대학교 캠퍼스가 보였다. 이씨는 서강대 미래교육원 사회복지학과에 합격해 입학을 앞두고 있다. 학사 학위를 딴 뒤에는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계속할 계획이다. “사회복지사 자격을 따서 노인복지재가센터를 운영하는 게 꿈이에요. 자신 있어요.”



김채운 기자 cw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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