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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2 (월)

중소업체 “사업 다 접을 판”...공멸은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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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통생태계 교란 현실화

오프라인매장 상황은 더 심각

제조사도 저가 완제품에 긴장

일각에선 지속가능성 의문도

헤럴드경제

“저가 제품 홍보는 우리가 다 했는데 알리는 편하게 돈만 가져가는 형국입니다. 피해가 너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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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판매업체 이지텍은 지난 2016년부터 생활가전부터 칫솔, 유아옷 등 다양한 중국산 저가 제품들을 국내로 들여와 이커머스(전자상거래) 플랫폼에서 판매했다. 지난달 이지텍은 해당 사업을 접었다. 중국 이커머스에서 초저가 제품들을 국내에 직접 팔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같은 제품을 3~4배 저렴하게 파는 중국 이커머스와 대적할 도리가 없었다.

백운섭 이지텍 대표는 “우리는 5000원짜리 물건 하나만 가지고 와도 인증 비용만 몇백만원인데 알리는 인증도 검증도 없이 제품을 팔고 있다”며 “이러다 보니 가격 경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중국계 이커머스발(發) 국내 유통 생태계 교란이 현실화하고 있다. 중소 해외 직구 판매업체는 먼저 직격탄을 맞았고, 온·오프라인에서 제품을 판매하는 업체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오래전부터 경영환경이 어려웠던 중소 제조사들에는 더 짙은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알리익스프레스나 테무, 쉬인 등 중국계 이커머스 업체들은 국내 온라인 시장에서 영향력을 급속도로 키우고 있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달 알리익스프레스의 ‘월간 활성화 이용자 수(MAU·한달간 앱을 이용한 순수 이용자 수)’는 561만명이었다. 1년 전(253만 명)보다 121.7% 늘었다. 테무는 국내에 앱을 선보인 작년 8월 34만명에서 5개월 만인 지난달 459만명으로 1250% 늘었다. 앱 신규 설치 건수를 봐도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는 같은 기간 각각 106.9%(29만 건→60만 건), 428.6%(42만 건→222만 건) 급증했다.

중국계 이커머스들은 ‘초저가’를 내세우며 국내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중국의 저렴한 인건비와 물류비, 대량생산, 대량주문·운송 등 낮은 원가를 바탕으로 상상을 초월한 낮은 가격을 책정하면서다. 특히 중국 직구 상품들은 KC인증 등 국내 안전 인증도 받지 않아 비용을 한 번 더 절감할 수 있다.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국내 이커머스 업체들이 중국 이커머스 업체를 따라갈 수 없는 이유다.

실제 유사한 카디건 제품은 국내 이커머스에서는 1만9900원에, 알리익스프레스에서는 1만4000원에 팔리고 있다. 같은 로고가 박힌 슬리퍼도 알리익스프레스에서는 500원에 살 수 있지만, 국내 이커머스에서는 1만원이 넘는 가격에 판매한다.

온라인에서 저가 제품을 취급하는 국내 중소 판매업체들은 말 그대로 최악의 상황에 부닥쳤다. 사업을 중단하거나 아예 접는 사례도 점점 늘고 있다. 이지텍의 경우 중국산 제품 조달 사업을 접고, 일본과 국내 간식류를 판매하는 것으로 업종을 전환했다.

오프라인 중소형 매장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애초에 온라인 시장이 커지면서 매출이 줄어든 데다, 중국산 초저가 제품까지 밀려든 영향이다. 이들은 물건을 팔아도 수익이 거의 남지 않는 처지라고 입을 모은다.

용산구에서 장난감 가게를 운영하는 김모 씨 역시 하루하루가 폐업 고민의 연속이다. 가뜩이나 출산율이 줄고 온라인으로 장난감을 사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매출이 줄었는데, 최근 온라인 직구로 초저가 중국산 제품이 쏟아지자 두 손을 들었다. 김씨는 “시장이 어려워지면 인터넷에서 싸게 파는 사람들이 많아지는데 최근 알리 같은 초저가 제품 판매가 늘면서 가격이 상상 이상으로 떨어지고 있다”며 “심지어 우리가 가게에 들여오는 가격보다 싸게 팔 정도”라고 설명했다.

제조업계에서도 긴장감은 고조되고 있다. 중소 제조사들은 높은 인건비 등 문제로 어려움을 겪어왔지만, 중국산 저가 완제품들이 시장에 더 많이 풀리면 국내 제조 상품들의 설 자리가 더 좁아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중소 제조사들이 예전부터 중국이나 인건비가 저렴한 곳에서 부품들을 사들여와 국내에서 조립하는 식으로 비용을 절감했다”며 “중국산 초저가 완제품들이 시장에 직접 풀리면서 상황은 더 어렵게 됐다”고 했다.

중국계 이커머스의 지속가능성에 물음표를 제기하는 일각의 반응도 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알리익스프레스가 올해 물류센터를 짓고 본격적으로 국내 사업을 시작하게 되면 각종 규제를 받으며 관련 비용이 늘어날 것”이라며 “중국계 미니소가 막대한 자본력으로 국내 시장에 점유율을 늘렸지만, 지금은 거의 사라졌는데 중국 이커머스도 이와 유사한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중국에 대한 반발심리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이미 알리익스프레스는 ‘중국 한복’이라는 항목을 만들어 중국 한푸를 팔거나, 김치를 중국식 야채 절임인 파오차이로 팔고 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내 누리꾼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유통전문가는 “중국 이커머스가 앞으로 국내에 공격적으로 투자를 늘리겠지만, 품질 이슈나 ‘동북공정’ 같이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며 “많은 걸림돌을 어떻게 처리할지가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김벼리·박병국 기자

kimsta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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