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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7 (토)

[조형래 칼럼] 이강인이 맨유의 퍼거슨 앞에서 그랬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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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파’ 이강인의 돌출 행동이

세대·문화적 차이라는 것은

절반만 맞는 이야기

유럽 구단에서 식사 미팅은

생각을 공유하는 훈련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다시 새겨야 할 명언

조선일보

손흥민이 지난 21일 오전 본인 인스타그램에 사과하러 런던에 온 이강인과 웃으며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사진을 올렸다./손흥민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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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수비수로 꼽혔던 스페인의 세르히오 라모스도 경기 중 상대 선수에게 손찌검을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은 적이 있다. 2010년 11월 유럽 클럽 축구 최대 라이벌전인 레알 마드리드-바르셀로나 경기에서 레알이 0대5로 형편없이 밀리자, 짜증이 폭발한 라모스는 상대팀 에이스인 리오넬 메시의 정강이를 걷어찬 데 이어 항의하는 상대방 선수의 빰을 후려쳐 넘어뜨렸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선수가 스페인 국가대표팀의 부주장으로 스페인을 남아공 월드컵 우승으로 이끈 카를레스 푸욜이었다. 국민 영웅인 대표팀 대선배에 대한 도발에 스페인 전역이 난리가 났다. 레알 마드리드 팬들 사이에서도 “라모스가 제정신이냐” “축구계에서 퇴출시켜야 한다”는 비난이 쏟아졌고 결국 라모스는 기자회견을 열어 푸욜에게 공개 사과했다. 인성이 좋기로 유명한 푸욜이 “경기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이미 잊었다”고 쿨하게 넘어가지 않았다면 라모스의 선수 생명이 위태로울 뻔했다.

이강인의 ‘탁구 게이트’가 터지자 일각에서는 스페인에서 자란 이강인 선수와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훈련받은 손흥민 선수의 문화 차이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는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이야기다. 간혹 유럽 선수들이 경기 중 잔소리를 하는 코치진을 향해 “닥쳐!”라며 소리 지르고 “출전 시간이 적다”고 대들기도 하지만, 팀을 위한 헌신과 경기에 임하는 태도, 각자의 역할에 대한 존중과 책임 의식은 훨씬 엄격하다. 축구가 종교인 유럽에서 ‘더비(derby)’ 경기로 불리는 지역 라이벌전에 임하는 선수들을 보면 중세 기사들이 창과 칼 대신 축구공으로 싸우는 느낌마저 든다. 클린스만 감독처럼 이런 경기에서 지고도 웃었다가는 그날로 대역 죄인이 된다.

박지성 선수의 스승인 알렉스 퍼거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은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명언을 남겼다. 그는 부진한 후배 선수들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던 주장 로이 킨, 광고 촬영에 정신이 팔렸던 데이비드 베컴 등 당대 최고의 스타들도 팀 분위기를 해치면 가차 없이 내쫓았다. 데이비드 베컴의 모히칸 머리 사건도 유명한 일화(逸話)다. 베컴이 영국 축구의 성지인 웸블리 구장에서 열린 경기에 닭 볏처럼 정수리 부분만 머리카락을 남기고 양쪽을 민 모히칸 헤어스타일로 나타나자, 화가 난 퍼거슨은 “당장 머리를 밀지 않으면 경기에 출전시키지 않겠다”고 엄포를 놨고 베컴은 눈물을 머금고 머리를 완전히 밀어버렸다. 베컴의 빡빡이 헤어스타일은 그렇게 등장했다.

유럽 구단에서는 퍼거슨 시절만큼 강압적이지는 않지만 여전히 선수단 관리에 세세하게 관여하는 감독들이 많다. 클린스만 감독처럼 자유방임형이 오히려 예외적이다. 현재 최고의 명장으로 꼽히는 페프 과르디올라 맨체스터 시티 감독은 훈련장에서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하는 것은 물론, 피자와 탄산음료, 심지어 과일 주스도 못 먹게 한다. 또 훈련장에서는 반드시 모든 선수가 함께 식사를 하게 한다. 선수들이 함께 식사를 하는 것도 서로 소통하면서 생각을 공유하는 훈련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국제 대회에 임하는 유럽의 국가 대표팀들도 마찬가지다. 훈련장이나 식사 미팅에 늦었다가 벌금을 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번 사건에 온 국민이 폭발적인 관심을 보인 것은 이미 사회 곳곳에서 비슷한 행태의 갈등과 충돌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기업에서도 이강인처럼 재능은 뛰어나지만, 과도하게 자기중심적인 인재들의 요구를 어디까지 수용할 것이냐를 놓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아무리 뛰어난 인재들을 끌어모아도 팀워크가 붕괴하면 축구든 기업이든 치열한 경쟁에서 성과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또 팀워크가 무너지면 이를 재건하는 데 오랜 시간과 비용이 들고 심지어 영원히 불가능할 수도 있다. 퍼거슨 퇴임 이후 팀워크가 흔들린 맨유가 지난 10년간 퍼거슨 감독 재임 27년에 비해 2배가 넘는 스카우트 비용을 쏟아부으며 특급 선수들을 데려왔지만 단 한 번도 리그 우승을 못 한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조형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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