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 증시 호황기에는 RA 투자가 주목받으며 크게 성장했지만, 2022년 세계 증시가 하락장에 접어들고 증시 변동성이 커지면서 RA 시장도 타격을 피할 수 없었다. 작년 4분기 RA 운용사들의 투자 유형(안정추구형·위험중립형·적극투자형)별 수익률은 각각 1.87%, 3.00%, 4.41%로 같은 기간 코스피200 수익률(9.57%)을 밑돌았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 RA 계약자 수는 29만2532명으로, 전 분기(37만6122명) 대비 8만명(22.2%) 넘게 빠져나갔다.
RA 기업들은 인공지능(AI) 투자 기술력을 키우고 퇴직연금 일임 시장에 진출해 위기를 벗어나고자 노력 중이다. 그 선두권에 있는 기업 중 하나가 AI 투자 서비스 ‘핀트’를 제공하는 디셈버앤컴퍼니다. 디셈버앤컴퍼니는 핀트의 AI 투자 엔진인 ‘아이작’을 개발하고 2021년엔 국내 최초로 비대면 투자일임 연금저축 서비스를 시작했다. 지난달에는 연금저축 투자일임 금액이 RA 업계 최초로 300억원을 돌파했다.
김일희 디셈버앤컴퍼니 최고제품책임자(CPO)가 2월 15일 서울 강남구 디셈버앤컴퍼니 본사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 카이스트에서 수학을 전공한 김 CPO는 미국 프린스턴 대학에서 이산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2013년 디셈버앤컴퍼니에 합류했다. /디셈버앤컴퍼니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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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주식 투자 서비스도 제공 중이다. 핀트가 제공 중인 ‘미국 주식 전략’ 서비스는 AI가 고객의 투자 성향과 니즈에 맞춰 알아서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와 나스닥에 상장된 모든 주식에 투자해 주는 서비스다. 이 서비스에는 ‘디셈버 미국 주식 솔루션’ 알고리즘이 적용됐는데 최근 3년간 적극투자형 기준 누적 수익률이 105.76%에 달한다. 같은 기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는 35.84%를 기록했다.
김 CPO는 “RA 일임 서비스가 커지면 국민 노후자금이 방치되지 않고 주기적인 리밸런싱(투자 종목 재조정)을 통해 수익률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했다. 다음은 김 CPO와 일문일답.
─AI 투자가 어떻게 이뤄지는 것인지 쉽게 설명해 줄 수 있나.
“한 문장으로 설명하자면 투자에 필요한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서 AI를 활용하는 것이다. 복합적인 의사결정인 만큼 유효한 데이터를 성격에 따라 알맞은 방법론을 적용한다.
경제 상황과 같은 매크로 부분이나 시장 평균 대비 잘하는 섹터, 주식·채권 등 자산군별 비중, 개별 주식의 펀더멘털(기초체력) 데이터 등을 차별적으로 적용한 후 종합해 알고리즘이나 상품단에서 고객에게 어떤 투자가 괜찮을 것 같다는 솔루션을 주는 것이다. 만약 솔루션에 영향을 줄 만한 데이터가 새로 나오면, 해당 데이터를 즉각 적용해 기존 투자 전략을 개선한다.”
─AI 투자에서 일임 서비스가 중요한 이유가 있나.
“RA가 간편하지만, 대중화를 위해선 일임 형태를 취해야 한다. 투자자 성향을 알아본 후 어떤 투자가 적합한지 추천하는 AI 서비스는 2000년대 초반부터 있었다. 하지만 추천 방식으로 이뤄지다 보니 초기 구성된 포트폴리오가 방치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타사 자문형 서비스의 경우 10명 중 1명꼴로 리밸런싱을 진행하는 데 그쳤다.
목돈 예치, 높은 수익률 추구 등 투자자 니즈를 파악한 뒤 뒷단의 프로세스를 알아서 하려면 일임 서비스로 운영돼야 한다. 핀트는 보통 포트폴리오 내 종목을 6개월 정도 보유하는데, 매달 리밸런싱을 진행해 유효한 종목만 남겨 놓는다.
‘타깃 리스크’라고도 부르는데, 개인의 리스크에 맞는 운용을 하는 것이다. 이때 투자자는 수익률 높고 리스크가 안정적이라고 인식해도 이탈하는 경우가 있다. 결국은 투자 ‘효용’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 핀트는 초개인화된 플랫폼에서 다량의 계좌를 동시에 운영할 수 있는 기술을 핵심 기술로 보고 있다.”
핀트 미국주식 투자 3년간 누적 수익률 비교 추이. /디셈버앤컴퍼니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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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RA라고 하면 장기 투자에 적합하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속칭 ‘단타’를 주요 투자 전략으로 삼는 투자자들도 있지 않나.
“사실 핀트에도 헤지펀드사에서 초단기 매매를 위해 사용하는 액티브한 매매 전략 기술은 이미 있다. 하지만 수많은 투자자를 대상으로 지속 가능한 투자를 서비스하려면 어떤 전략이 유효한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투자 수익의 원천은 기업의 가치 상승 아닌가.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장 동력의 근간이기도 하다. 실제로 증시는 장기적으로 보면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20~30년 장기 투자하면 실패는 없다는 게 증명이 된 셈이다.
단기적으로 단타 매매를 하면서 하락장에 베팅하는 인버스 상장지수펀드(ETF)에도 투자할 수 있지만, 이는 장기적으로 보면 유효한 선택은 아니다. 투자 전략은 합리적인 이유가 뒷받침돼야 하는데, 단타 매매의 경우 투기성 매매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 때문에 대다수 RA 서비스 철학은 장기 투자에 맞춰져 있고, 핀트 또한 건강한 투자 전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리테일 고객 수요가 다변화되고 있는 만큼 차별화된 서비스 출시를 준비 중이다. 액티브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어떤 테마에 관심 있다고 했을 때 테마 안에서 종목을 추천하는 ‘테마 종목 추천 자문서비스’를 1분기 내 출시 목표로 준비 중이다.”
김일희 디셈버앤컴퍼니 최고제품책임자(CPO)가 2월 15일 서울 강남구 디셈버앤컴퍼니 본사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 /디셈버앤컴퍼니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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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 퇴직연금 일임 서비스 도입을 앞두고 코스콤 심사가 진행 중이다. 퇴직연금을 AI 투자로 진행했을 때 차별화된 장점이 있을까.
“내 퇴직연금이 어떻게 운용되는지 모르는 ‘퇴직연금 깜깜이’ 투자자들이 많다. 실제로 원리금 보장 형태로 방치된 퇴직연금 적립금이 쌓여있다. RA 일임 서비스를 통하면 퇴직연금을 방치하지 않고 동적으로 운용해 준다는 장점이 있다.
퇴직연금이라는 상품 특성에 맞춰 개별 투자자가 어떤 점에서 효용을 느끼는지 설정만 해주면 처음부터 공격적으로 운용하다가 추후 소득 보장형으로 전략을 수정하는 등 효율적인 운용이 가능하다.
핀트는 코인 투자자(공격적 투자)·건물주(배당 투자) 등 투자 성향별 페르소나를 10개 정도 분류한 후 효용 극대화에 초점을 맞춰 연금을 일임 운용할 계획이다. 올해 연말 비대면으로 상용화가 가능해지면 RA 퇴직연금 일임 서비스는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본다.
또 증권사 시스템 통해 오전 9시 반에 핀트에 가입해도 10시 전에 매매를 아무 장애 없이 시작하고, 출금 신청 시 바로 출금되는 다량 계좌 컨트롤 기술에 집중할 예정이다.”
─퇴직연금을 방치하는 투자자를 잡아끌 만한 AI 투자의 핵심 요소는 무엇인가.
“결국 방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누군가 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객이 언제든지 운용의 방향·형태·목적을 쉬운 언어와 클릭 두어 번 하는 정도의 간단한 지시만으로 수행할 수 있을 만큼 용이해야 하고, 목적에 따라 운용 주체가 알아서 운용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고객과 운용 주체가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는 앱 서비스가 필요하다.
디폴트 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만이 완전한 해결책이라고 보긴 어렵다. 퇴직연금 방치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일임 계약 형태라는 점이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핀트의 한국 주식 전략 2월 포트폴리오 화면. /디셈버앤컴퍼니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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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하반기 퇴직연금 일임 서비스가 허용되는데, 추가로 규제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있을까
“그간 퇴직연금 수익률이 나오지 않은 건 근본적으로 책임감 있게 운용할 주체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연금은 장기운용임에도 손실 가능성을 지나치게 크게 인식하고, 이를 회피하기 위한 구조가 많았다. 해외 로보어드바이저 업체들이 장기 자산 배분으로 퇴직연금을 성공적으로 운용하고 성장한 사례를 보면, 우리나라 규제 개선 속도가 상대적으로 보수적으로 보일 수 있다. 상용화를 위한 정책의 변화 속도가 조금 더 빠르고 진취적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현재 중요하게 보고 있는 AI 투자 방향의 변화 또는 개선해야 할 점은.
“기술적으로 개선해야 할 점보다는 인식 변화가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투자 영역에선 신뢰가 중요하다. AI의 경우 투자 안정성에 대한 심리적 허들이 있다. AI가 알아서 매매거래를 진행하는 데 규제 개선 등 시간도 필요하고 인식 변화도 필요하다. 규제 당국, 각 금융사에서도 AI를 활용함에 있어서 투자 철학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AI 투자는 고수익률을 보장하는 정답을 내주는 게 아니라 확률적으로 좋은 선택들, 장기적으로 유용한 선택을 제공하는 것이다.”
강정아 기자(jenn1871@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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