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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특파원 리포트] ‘전쟁의 시대’가 돌아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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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오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날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국경에 있었다. 아침 9시쯤 국경 검문소에 도착하니 폴란드로 넘어오려는 피란민의 줄이 이미 수백m였다. 검문소 안에 들어가 사진을 찍으려 하니 소총을 멘 경비원이 앞을 가로막았다. 철창 건너편에서 혼란과 두려움이 가득한 눈으로 우리 쪽을 지켜보던 피란민들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그 일을 시작으로 2년간 총 5번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어 전쟁 현장을 취재했다. 폴란드 국경에서 키이우까지 700㎞를 오가는 길 내내 파괴된 건물과 마을, 전쟁 희생자들의 묘지와 마주쳤다. 공습으로 기반 시설이 파괴된 지방 도시들은 전기와 난방, 수도 어느 것 하나 성한 것이 없었다. 밤마다 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걱정하며 잠이 들고, 대낮에도 끊임없이 하늘을 살피며 길을 걷는 일이 반복됐다. 70년 전 한반도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러시아의 침공 하루 전까지만 해도 우크라이나인 10명 중 7명이 ‘전쟁이 나지 않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서방의 러시아 전문가들 역시 “냉철한 푸틴은 자신의 몰락을 초래할 전쟁에 절대 뛰어들지 않는다”고 장담했다. 이젠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난 16일 자 지면에서 인터뷰한 우크라이나인들은 “전쟁이 벌어지리란 신호는 항상 있었지만, 우린 그걸 애써 무시했다”고 후회했다. 러시아 전문가들은 “수년 내 러시아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간의 분쟁이 벌어질 수 있다”는 암울한 예상마저 내놓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제 3년 차로 접어든다. 중동 전쟁까지 더해지면서 ‘민주’와 ‘독재’로 갈린 국제적 대립은 날이 갈수록 첨예해지는 상황이다. 이 두 개의 전쟁으로 ‘국제 정치’란 현상을 만드는 세계 각국의 역학 관계가 마치 도미노처럼 재편되고 있다. 유럽 정치권에선 “전쟁의 시대가 돌아왔다”는 말까지 나온다. 북유럽과 동유럽 발칸 국가들이 잇따라 나토에 손을 내밀고, 복지 예산까지 줄여가며 군비 증강에 나서는 것은 이런 ‘시대적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유럽 지도자들은 역사책을 다시 펼쳐 들고 자국의 다음 수를 고민하고 있다.

전쟁의 파장은 바다를 넘어 동북아로 들이닥치고 있다. 러시아·중국·이란·북한 간의 밀착이 유럽·중동의 지정학적 위기를 한반도로 전이(轉移)하는 형국이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이민(移民)을 수단으로 삼는 ‘하이브리드 전쟁’이 이미 시작됐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은 과연 이에 걸맞은 준비가 되어 있을까. ‘동맹에 기초해 실리를 추구한다’는 모호한 방법론이나, 한반도와 그 주변국에 매몰된 근시안적 안보 전략으로 살길을 찾기엔 너무나 거칠고 복잡한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파리=정철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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