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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7 (토)

[설왕설래] ‘유전자녀, 무전무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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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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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대한민국 공익광고제 대상’으로 선정된 작품이 있다. 한 여아가 창문 속 펭귄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모습이 언뜻 동물원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사진 밑에 새겨진 ‘멸종위기 1급, 대한민국’이라는 문구를 보면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충격 그 자체다. 멸종위기종 하면 떠오르는 동물인 펭귄이 오히려 한국인 여아를 멸종위기종으로 걱정스레 바라보는 모습을 담아 저출산 문제에 경종을 울렸다.

법이 엄정하게 집행되지 않는 것을 빗대 흔히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한다. 모든 사람에게 평등해야 할 민주주의 헌법 정신이 ‘돈’ 앞에서 무력화하는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돈의 위력은 이뿐만이 아니다. ‘국가소멸론’까지 나오는 저출산 문제 역시 돈과 직결돼 있다. 아이를 키우는 데 많은 돈이 들어간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최근 정재훈 서울여대 교수가 ‘0.6의 공포, 사라지는 한국’이라는 신간을 펴내면서 인용한 소득계층별 출산율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아이를 낳은 100가구를 전제로 2010∼2019년 저소득층·중산층·고소득층의 변화 비율을 살펴봤더니 저소득층 비율은 2010년 11.2%에서 2019년 8.5%로 2.7%포인트 떨어졌다. 반면 고소득층은 46.5%에서 54.5%로 증가했다.

아이 키우기 힘든 ‘웃픈’ 현실은 중국 베이징 인구·공공정책 연구 기관인 위와인구연구소 보고서에서도 확인된다. 한국에서 자녀 1명을 낳아 18세까지 키우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의 7.79배라고 한다. 2022년 기준 한국의 1인당 GDP를 3만2423달러(4300만원)로 환산하면 3억3500만원에 이르는 압도적 1위다. 뉴욕타임스(NYT) 서울지국 기자의 ‘2주 800만원’인 산후조리원 수기도 화제다. ‘유전자녀, 무전무자녀’라는 말이 어색하게 들리지 않는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돌봄의 중요성을 의미하는 말이다. 결혼과 육아가 가장 비싸면서도 매력 없는 선택지가 된 한국이 새겨들어야 한다. 전통적 가족제도가 해체되고 아이들은 유치원·어린이집으로 내몰린다. 금전적 지원도 중요하지만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근로·보육 환경을 조성하는 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이다.

김기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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