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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3년째 전쟁’ 푸틴이 놓치고 있는 것들 [핫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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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우크라이나 자포리자에서 러시아군의 포격에 숨진 민간인의 시신을 우크라이나 군인과 응급대원들이 옮기고 있다. [사진=A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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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쿠바가 지난 14일 공식 외교관계를 갖게 됐다는 소식에 놀란 것은 북한만이 아닐 것이다. 쿠바가 우리와 수교한 이유가 경제 협력과 문화 교류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장 뼈아프게 자성할 나라는 러시아다. 세계 각국이 친해지고 싶어하는 대한민국 대신 무도한 외톨이 신세인 북한을 잡는 악수를 뒀기 때문이다. 이는 러시아가 세계 조류와 거꾸로 가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특히 1959년 사회주의 혁명으로 태동한 쿠바 정권이 미국에 맞서 소련(이후 러시아)과 긴밀한 사이였다는 점에서 쿠바의 한국 선택은 푸틴에게도 찜찜한 고민을 안겨줬을 것이다.

많은 러시아 젊은이들이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배우러 북한 대신 한국을 찾고 있다. 하지만 그런 나라 대통령만 반대로 가고 있으니 황당한 일이다. 만일 윤석열 대통령이 아프리카 국가 독재자와 만나 웃고 떠든다면 많은 우리 국민은 부끄러워할테지만 푸틴은 이런 국민 감정에 개의치 않는다.

24일로 만 2년인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 국가 이미지는 급전직하했다. ‘침략국 백성’이라는 멍에를 짊어진 러시아인들은 해외에 나가 얼굴을 들지 못한다. 푸틴은 내달 대선 승리로 당분간 권력을 유지하겠지만 그가 만든 전범국이라는 부끄러운 이미지는 후대 러시아인들이 안고 가야 할 짐이다. 얼마 전 푸틴 정적(政敵)이자 서방 지지를 받던 알렉세이 나발니까지 의문사하면서 푸틴 정권의 무도함은 배가되고 있다. 대선 5선 성공은 푸틴에겐 영광일지 몰라도 러시아인들한테는 수모일 뿐이다. 러시아의 반전(反戰)·반체제 작가인 류드밀라 울리츠카야가 “전쟁을 일으킨 푸틴은 부끄러운 줄 알라”고 누차 말했지만 부끄러움은 푸틴 대신 일반 러시아인들의 몫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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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시킨 동상 앞에 마련된 나발니 추모공간 (서울=연합뉴스) 김성민 기자 = 20일 오후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앞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시킨 동상 앞에 러시아 반체제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 추모 공간이 마련돼 있다. 2024.2.20 ksm7976@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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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 대한 국내 호감도는 전쟁 도발과 함께 북한과의 밀착, 우리에 대한 겁박 등으로 크게 악화됐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 오는 러시아 유학생은 많지만 반대로 러시아에 공부하러 가는 한국인은 거의 없다. 한국외대 용인캠퍼스는 희망 전공자가 없어 우크라이나 전쟁 직후 러시아학과를 폐쇄했을 정도다. 우리는 러시아가 북한에 영향력을 발휘해 한반도 안정에 기여해줄 것을 기대했지만 이젠 둘이 한 편이 돼서 우리 안보를 위협하는 칼날이 되고 있다. 그러니 우리 국민 감정이 좋을 리 없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에 따르면 한국인들이 러시아를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는 85%로 폴란드(98%) 스웨덴(96%) 일본(93%) 미국(91%) 영국(90%) 독일(86%) 뒤를 잇는다(2023년 7월 기준). 반면 러시아에 대한 긍정 평가는 2007년 54%에서 크게 낮아져 2022년과 2023년 각각 13%, 14%에 그쳤다.

러시아는 이번 전쟁으로 ‘군사강국’ 신화도 잃었다. 신속한 압승은커녕 북한에서 무기를 빌려쓰는 처지에 몰리면서 핵무기만 믿고 떠드는 나라가 됐다. 중립국이던 핀란드는 나토 회원국이 됐고, 스웨덴도 곧 가입을 앞두고 있어 러시아의 정치적 고립은 커졌다. 전쟁을 일으킨 푸틴의 자업자득이다. 또 월드컵경기 같은 국제경기나 문화예술 행사 참가가 금지돼 러시아인들은 재능을 발휘해볼 기회도 사라졌다. 정부와 민간 모두 국제무대에서 고립에 처한 것 역시 푸틴이 전쟁으로 놓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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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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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외국 기업들은 공장 가동을 멈추고 헐값 매각으로 러시아에서 쫓겨났다. 러시아는 사실상 탈취한 시설을 기반으로 자체 생산하며 문제없다지만 ‘약탈 경제’의 또다른 모습일 뿐이다. 이는 종전(終戰)이 돼도 선진국과의 첨단기술 협력이나 투자 유치를 막는 부메랑으로 돌아와 러시아는 석유·가스에 의존하는 후진 경제로 남을 수밖에 없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러시아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3%, 올해 2.6%가 예상된다. 하지만 전년 대비 기저효과에다 에너지를 중국과 인도, 튀르키예 등에 잘 팔았기 때문이다. 제조업 혁신이나 인공지능(AI), 반도체, 전기차 같은 첨단 분야 성과와는 거리가 멀다.

빅토리아 눌런드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은 지난해 러시아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푸틴 행태를 시대착오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녀는 “푸틴은 20년 간 권력을 경제, 교육, 기술 발전에 쓰지 못했고, 에너지와 무기가 아닌 다른 산업 강국으로 바꾸는데도 실패했다”고 했다. 중동 산유국들이 자원 의존도를 낮추려고 ‘넥스트 오일(Next oil)’ 시대에 대비해 신사업 육성에 매진하는 것과 영 딴판이다. 석유·가스를 파는 일차원적 경제에 머물게 될 러시아는 서방과의 관계 악화로 기술력 격차 확대는 불가피하다.

푸틴은 전쟁을 빨리 끝내고 ‘위대한 러시아’ 따위의 냉전적 마인드부터 버려야 한다. 3년 째 전쟁을 치르며 푸틴은 놓치고 있는 게 너무 많다. 세계 각국이 신기술 전쟁을 치르느라 정신없지만 러시아에서 들려오는 것은 사람 몇 명이 죽고, 남의 땅 어디를 차지했다는 뉴스뿐이다. 부끄럽지 않은가. 급변하는 디지털기술 시대에 총이나 쏘고 있으면 나라는 퇴보하고 피해는 오롯이 국민이 입는다.

김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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