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허정지·구속" 정부 엄포 놨지만, 전공의 이탈·동맹휴학 되레 확산
'2000년 의약분업·2022년 증원반대 파업' 모두 정부가 '백기투항'
당시 국시 거부한 의대생마저 구제…"정부는 의사 못 이긴다" 확신 키워
브리핑 하는 주수호 의협 홍보위원장 |
(서울=연합뉴스) 김잔디 서혜림 기자 =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의 대규모 병원 이탈에 이어 의대생들의 동맹휴학 등 의료계가 '동시다발적 실력행사'에 나서면서 의료대란이 현실로 나타났다.
전공의는 물론 선배 의사인 개원의 단체, 예비 의사인 의대생들까지 집단행동에 나서는 데에는 '무패'(無敗)의 경험이 적잖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아무도 대체할 수 없는 인력'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결국 정부가 의료 붕괴를 우려해 의사에 손을 내밀어야 했던 그간의 경험이 '자신감'을 키워줬다는 얘기다.
'의대생 동맹휴학 결의...현실화할까' |
◇ "면허박탈" 엄포에도 집단사직·동맹휴학 확산…"정부는 의사 못 이겨"
22일 의료계에 따르면 정부는 의대 증원을 발표한 이래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있을 경우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하겠다고 강조해 왔다.
보건복지부는 업무 미복귀자에 대한 '의사면허 정지', 법무부는 집단행동 주동자에 대한 '구속수사' 원칙을 내세우며 엄포를 놨다.
하지만 정부의 '엄포'를 비웃듯 전공의 사직과 동맹휴학은 들불 번지듯 확산일로를 걷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날까지 주요 100개 수련병원 소속 전공의의 74.4%인 9천275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도 8천24명에 달한다.
의대생들의 동맹휴학도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 사흘간 총 34개 의대에서 1만1천778명이 휴학을 신청했다. 전국 의과대학 재학생 1만8천793명의 62.7%에 이른다.
의사들과 의대생들은 정부의 엄포에 대해 '비웃음'에 가까운 반응마저 내비쳤다.
노환규 대한의사협회(의협) 전 회장은 SNS에 "정부는 의사들을 이길 수 없다"며 "(정부가) 의사들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어이없을 정도로 어리석은 발상"이라는 글을 올렸다.
그는 "겁을 주면 의사들은 지릴 것으로 생각했나 보다", "의료대란은 피할 수 없을 것" 등 격한 발언을 이어갔다. 실제로 그의 '예언'대로 의료대란은 현실이 됐다.
의대생 동맹휴학에 교육부는 "동맹휴학은 대학 학칙상 휴학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법과 원칙에 따른 엄정한 학사 관리를 강조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응도 '빈정거림'에 가깝다.
의대생 동맹휴학을 다룬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정부의 엄포를 비웃는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한 작성자는 "휴학계 내더라도 실제 1년 유급 안 된다"며 "1년 인턴 인원이 없어지는데 그렇게는 안 되고, 결국 다 올라갈 수 있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될 듯하다"고 적었다.
다른 작성자도 "다 같이 휴학계 내면 어차피 나중에 다 같이 구제될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의협, 서울 도심 집회…"의료계와 합의없는 의대증원 결사반대" |
◇ 파업 때마다 정부 '백기'·국시 거부한 의대생마저 '구제'…'자신감' 커진 의사들
의사들이 이처럼 '자신감'을 내비치는 데는 그 동안 파업 등 집단행동을 통해 정부의 '항복'을 얻어낸 수차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2000년 의약분업 시행 당시 병원의 약 처방이 불가능해지자 의료계는 전공의부터 동네의원까지 대규모 파업에 돌입하는 등 강력하게 반발했다.
의료대란이 현실화하자 정부는 어쩔 수 없이 다양한 '당근책'을 내놓아야 했다.
수가 인상, 전공의 보수 개선 등과 함께 '의대 정원 10% 감축'에 합의했다. 이 때 정원 감축은 나중에 의사인력 부족을 불러오게 된다.
2014년에는 정부가 원격의료를 추진했으나, 이에 반대하는 대한의사협회가 총파업을 주도해 집단휴진을 벌였고 결국 정부가 물러섰다.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공중보건 위기 상황에서 정부는 다시 의대 증원을 추진했다.
여당과 정부는 공공의대 신설과 더불어 10년간 총 4천명의 의사 인력을 추가로 양성하는 방안을 내밀었다.
의협은 즉각 '총파업'을 선언했고, 전공의들은 '집단휴진'에 들어갔다.
이들이 대학병원 중환자실, 분만실, 수술실, 투석실, 응급실 등 필수인력까지 모두 포함한 전면 파업에 나서면서 '의료대란'이 벌어졌다. 정부는 또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결국 의협은 2020년 9월 의대 증원과 공공의대 설립을 원점에서 재논의한다는 정부의 '항복 선언'을 받아냈다.
당시 의대생들은 동맹휴학과 함께 의사 국가고시마저 대규모로 거부했다.
정부는 의대 증원을 포기한 후에도 "국시 재응시는 원칙에 어긋난다"며 의대생의 재응시를 거부했으나, 의료계의 잇단 탄원에 결국 재응시 기회를 줬다.
재응시 기회를 얻은 의대생들은 시험을 치르고 면허를 취득했다.
당시 동맹 휴학했던 의대생과 집단휴진을 벌였던 전공의도 무사히 학교와 병원으로 돌아갔다. 정부는 '업무개시명령'을 어긴 전공의들에 대한 고발도 취하했다.
이처럼 번번이 정부가 의사들의 저항을 이기지 못하고 물러서다 보니 '의사불패'의 신화가 만들어졌고, 이는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는 발언이 나온 배경이 됐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사회정책국장은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처벌받지 않는다는 게 각인되고, 학습된 상태여서 '자신감' 있게 집단행동에 나서는 게 아니겠느냐"고 분석했다.
그는 "오래 가면 갈수록 (정부가) 버틸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지금도 가지고 있는 것"이라며 "하지만 지금은 의대 증원 찬성 여론이 압도적이라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jand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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