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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송성훈칼럼] 의사, 국민을 이길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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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의사 아들보다는 의사 사위가 좋다."

한때 이런 말이 있었다. 의사가 존경받고 소득도 높은 직업이지만 자기 자식한테 시키기엔 너무 고생스럽다는 복잡한 심경이 담겼다. 공부 잘한다고 의대만 가진 않았던 시절 얘기다.

지금은 다르다. 서울대 공대와 비명문대 의대를 놓고 고민하는 자녀 앞에서 요즘 강남 엄마들은 무조건 의대다.

어쩌면 당연하다. 전문의만 되면 일반 월급생활자들보다 5~6배, 변호사나 회계사보다도 평균 2배가량 소득이 많다. 고소득을 이처럼 안정적으로 정년도 없이 오래도록 누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직업이 됐다. 일부 필수의료 분야를 빼면 노동강도가 높지 않은 분야도 꽤 있다. 잘만 찾으면 돈과 명예, 웰빙 모두 보장된다. 여기에 의사 수까지 정부에서 묶어놨으니 치열한 경쟁도 필요 없다. 경제학에선 '지대추구(rent seeking) 행위'로 설명한다. 수요 증가에 맞춰 공급을 늘려줬다면 없었을 이익(rent)이다. 정부가 의료서비스를 시장 원리에 전부 맡기지 않고 개입해 만들어줬다. 그만큼 사회 전체적으로는 '자중손실(deadweight loss)'이라는 후생 감소가 발생한다. 이를 감수하고 정부가 면허를 통해 의사 공급을 제한한 것이다. 변호사도 그렇고 회계사도 마찬가지다.

일종의 독과점 이익을 통해 의사들이 고수익을 가져가도 국민들은 암묵적으로 지지했다. 생명을 다루는 귀한 직업에 대한 존경이고, 소명의식을 가진 의사들의 헌신에 대한 응원이다.

소득이 높아지면서 서비스 시장은 급속도로 커졌다. 법률, 회계, 의료서비스 수요가 크게 늘면서다. 정부는 변호사와 회계사 합격자 수를 크게 확대했다. 물론 반발은 있었지만 변호사나 회계사 그 누구도 파업은 없었다.

의료계는 달랐다. 무풍지대다. 의대 정원을 27년째 단 한 명도 못 늘렸다. 오히려 2000년대 초반에는 의약분업 과정에서 정원 351명을 줄였다. 그 상태로 20여 년을 보내면서 의료계에선 수급 불균형이 심화됐다. 감원으로 줄어든 의사 수만 누적 기준으로 7000명에 육박했다. 돈 되는 피부과나 성형 분야로 빠져나가는 의사가 늘면서 필수의료 분야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급기야 서울시내 빅5 병원 간호사마저 의사가 없어 목숨을 잃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인턴·레지던트 같은 수련의들은 상상할 수 없는 당직 일정을 소화해가면서 병원에서 근무한다. 나아지긴커녕 갈수록 공급 부족 폐해가 심각해지고 있음을 의료현장 스스로 보여주고 있다.

의료계는 의사 수가 결코 부족하지 않다고 한다. 오히려 줄여야 한다는 의사도 있다. 인구 감소로 의료 수요는 줄고, 고령화로 의사 수는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의료 수요가 줄어들까. 인구 감소를 내세우는데 서비스 수요를 머릿수로 계산하진 않는다. 의료서비스 이용량으로 봐야 한다. 10년 전엔 없던 다양한 의료서비스가 생겼듯이 의료서비스는 소득 증가와 함께 갈수록 늘어난다.

그렇다면 의사 공급은 증가한다고 볼 수 있을까. 의사 수 자체는 늘더라도 고령화로 현장에서 활동하는 의사는 줄 것이다. 지금은 6% 수준인 70세 이상 의사 비중이 10년 뒤엔 20%에 육박할 정도다. 고령의 개인택시 기사가 늘면서 날씨만 궂으면 택시 잡기 어려워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여기에 요즘 젊은 의사들은 선배들처럼 밤낮없이 근무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응급실을 70세 이상 의사로 채울 건 아니지 않나.

의료계 내부 주장을 보면 귀담아들을 내용도 있지만 집단사고에 갇혀 있는 건 아닌지 우려스러울 때도 많다. 반대를 위한 반대는 외칠수록 고립시킬 뿐이다.

일찌감치 고향으로 내려간 의사 친구와 최근 사태를 얘기해봤다. 종합병원 내과의사인 그는 "10년 뒤 현업에서 은퇴할 때면 나를 진료해줄 의사를 이 지역에서는 찾기 어려울 것 같다"고 토로했다.

이번에는 의사들이 국민들에게 한발 양보할 때다.

[송성훈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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