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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 (목)

이슈 [연재] 뉴스1 '통신One'

英 호라이즌 스캔들 우체국 은폐했던 기밀조사 정부 사전인지 정황[통신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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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발주한 재무부 변호사 검토 보고서 "우체국이 실질적 문제"

우체국, 프로젝트 지브라·스위프트 검토·딜로이트 재조사 등 은폐

뉴스1

지난달 16일(현지시간) 일본 정보통신(IT) 업체 후지쯔의 폴 패터슨 유럽 대표가 영국 런던 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자사 개발 회계 소프트웨어 '호라이즌'의 결함으로 불거진 '우체국 스캔들' 사태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2024.01.16/ ⓒ AFP=뉴스1 ⓒ News1 박재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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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뉴스1) 조아현 통신원 =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정부가 '호라이즌' 스캔들의 무고한 피해자인 우체국 운영자들의 무죄를 입증할 수도 있었던 기밀조사를 우체국이 중단했던 사실을 이전에 보고 받았던 정황이 드러났다.

캐머런 전 총리는 지난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재임했다.

이로 인해 정부가 우체국의 이 같은 부정행위를 알고도 방관하거나 묵인했다는 비판이 한층 확산할 것으로 보인다.

호라이즌 스캔들은 1999년부터 2015년까지 일본 후지쯔가 개발한 컴퓨터 회계 프로그램 오류로 수입액이 누락된 것처럼 표기돼 약 900명에 달하는 우체국 운영자와 직원들이 절도, 사기, 부정 회계 등의 혐의로 기소된 영국 사상 최악의 오심 사건이다.

20일(현지시간) BBC에 따르면 지난 2016년에 진행된 관련 기밀조사는 17년간의 기록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호라이즌 IT 시스템의 현금계좌가 원격으로 조작된 빈도와 이유를 밝혀냈다.

정부의 담당 고위 공직자들도 조사가 이뤄지고 있던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누명을 쓴 우체국 운영자들이 법적 조치를 취하자 관련 기밀조사는 갑자기 중단됐다.

해당 기밀조사로 인해 2년 뒤 법정에서는 후지쯔가 우체국 운영자들이 관리하던 수입 계좌에 접속해 원격으로 조작하는 행위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우체국이 인지하고 있었다는 증거가 추가로 제출됐다.

당시 우체국의 증거 은폐와 재판부의 오심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전 우체국 운영자 세노파시 나렌티란은 BBC와 인터뷰 도중에 눈물을 흘렸다.

그는 "이 모든 것을 알면서 왜 우리는 교도소에 수감돼 시간을 낭비하고 가족과 헤어져야 했는지 모르겠다"며 "내 나이가 벌써 69살인데 이 모든 일을 겪기에는 이젠 너무 늙었다"고 말했다.

이번 기밀조사 내용은 2015년과 2016년에 우체국 당국이 우체국 운영자들의 억울함을 밝혀야 한다는 압박을 받던 시기에 BBC가 정보공개청구 제도를 통해 입수한 정부 기밀문서를 분석해 밝혀낸 것이다.

정부 기밀문서에는 영국 재무부 소속 전 수석 변호사 조나단 스위프트의 검토 과정이 포함됐다. 지난 2016년 스위프트가 진행한 검토 내용에는 지난 1999년부터 후지쯔의 원격 접속 여부를 조사한 기밀조사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스위프트는 호라이즌 스캔들 사건 검토를 통해 '영국 우체국의 실질적인 문제(real issues)를 발견했다'고 결론을 내린다.

스위프트의 이 같은 검토는 당시 재무부 장관이었던 사지드 자비드의 승인을 받아 정부에서 발주한 것이었다.

스위프트는 2014년 딜로이트 소속 감사관들이 진행한 프로젝트 코드명 '지브라'의 초기 보고서에서 우체국 이사회에 대한 정보를 발견했는데 그 안에는 후지쯔가 우체국의 각 지점 계좌 금액을 어떻게 변경할 수 있었는지가 자세히 설명돼 있다.

딜로이트는 기업 감사, 컨설팅, 재무회계, 세무 등의 서비스를 전문적으로 제공하는 글로벌 회사다.

스위프트는 당시 관련 증거를 확인하고 검토 보고서에 '우체국이 이 같은 외부 원격 접속 기능을 얼마나 자주, 왜 사용했는지에 대한 추가 조사를 수행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딜로이트는 2016년 2월부터 17년 동안 호라이즌 프로그램이 사용된 모든 거래 내역에 대한 조사를 재개한다.

자비드 장관을 비롯한 다른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우체국의 각 지점 계좌가 우체국 운영자 모르게 원격으로 금액이 변경됐을 수 있다는 의혹을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작업이 진행 중이라는 보고를 받았다.

하지만 2016년 9월 우체국 운영자들이 소송을 제기하기 시작했을 때 정부는 우체국 장관으로부터 그들을 대리하는 선임 변호사의 '매우 강력한 조언(very strong advice)'에 따라 조사가 폐기됐다는 소식을 듣는다.

문서에는 당시 캐머런 총리가 이 같은 기밀 수사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적시돼 있지 않다.

우체국은 2년간 후지쯔의 원격 접속 여부에 대한 증거와 보고가 담긴 프로젝트 지브라, 재무부 소속 수석 변호사 조나단 스위프트의 검토 보고서, 2016년 딜로이트 재조사 등 3가지 사안 모두 공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해 왔다.

결과적으로 스위프트의 검토 자료와 프로젝트 지브라는 누명을 쓴 우체국 운영자들에게 공개되지 않았고 피해자들은 법정에서 자신의 혐의를 벗는 데 사용할 수도 있었던 중요한 정보를 빼앗긴 셈이 됐다.

딜로이트의 재조사 내용은 결과를 발표하기도 전에 중단됐다.

BBC가 입수한 정부의 미공개 문서에는 2014년 4월 우체국 이사회 산하 소위원회 위원들이 딜로이트의 프로젝트 지브라 작업에 대해 논의한 내용이 나와 있다.

소위원회에는 최고 경영자 폴라 베넬스, 법률 고문담당 크리스 오자드, 정부 소속 고위 공무원인 리처드 칼라드가 포함돼 있었다.

같은 해 5월 딜로이트는 조사 내용에 대한 전체 보고서를 제출했고 6월에는 우체국 이사회를 위한 브리핑 보고서를 작성해 후지쯔가 지점 계좌를 변경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을 기록해 뒀다.

이사회 브리핑에서 발췌한 내용은 스위프트가 자신의 검토 기록에도 그대로 인용해 두었지만 브리핑 보고서 자체는 공개되지 않았다.

딜로이트 감사관들은 데이터베이스 접근 권한을 가진 후지쯔 직원이 가짜 디지털 서명이나 보안키를 사용해 우체국 운영자가 전자 서명한 고객 구매 데이터를 삭제, 생성, 수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후지쯔 직원은 그런 다음 가짜 보안키로 다시 전자 서명을 하는 방법으로 계좌 관리 시스템에 접근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딜로이트는 후지쯔 직원이 각 우체국 지점 장부에 직접 거래 내역을 생성할 수 있는 이른바 '밸런싱 거래'라는 긴급 프로세스를 통해 프로그램 오류를 수정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프로세스는 우체국 운영자의 승인이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체국은 2012년 우체국 운영자들이 부당한 누명을 썼다는 주장에 대해 조사를 의뢰했던 회계 전문회사 세컨드 사이트에는 프로젝트 지브라의 조사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다.

우체국은 이후에도 5년 동안 후지쯔가 원격 조작으로 각 우체국 지점 계좌의 현금 잔고를 변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2016년 2월 8일 자로 기록된 스위프트의 검토 기록에는 우체국이 외부에서 우체국 지점 계좌로 접근이 가능한 '밸런싱 거래' 기능에 대해 '항상 알고 있었다(had always known)'라고 언급돼 있다.

또한 우체국은 현행법에 따라 재심을 요청한 우체국 운영자들에게 해당 문서를 보여줄 의무가 있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스위프트의 검토 권고에 따라 딜로이트는 프로젝트 지브라 후속 작업을 재개하고 호라이즌 스캔들에 대한 독립적 조사를 수행하도록 요청받았다.

하지만 2016년 6월 딜로이트가 3개월간 진행해 온 조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갑자기 중단된다.

당시 우체국 운영자들을 변호한 폴 마셜은 "중요하게 눈여겨봐야야 할 점은 2014년에 우체국 이사회가 후지쯔의 원격 접속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라며 "하지만 2019년에도 우체국 운영자들의 주장에 대한 방어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까지 했는데 이는 거짓이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전 우체국 최고 경영자였던 폴라 베넬스와 법률 자문위원 크리스 오자드, 우체국 이사회에서 정부를 대표했던 고위 공직자 리처드 칼라드는 진상규명을 위한 공개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논평을 거부했다.

영국 재무부 소속 수석 변호사였던 조나단 스위프트는 검토 작업을 마치고 2년 뒤인 2018년 고등법원 판사로 임명됐고 같은 해에 기사 작위를 받았다.

하지만 윌리엄스 공개 조사에 예정된 증인 출석 명단에 스위프트 이름은 현재까지 포함되지 않았다.

호라이즌 스캔들에 대한 진상 조사는 2020년 9월 29일부터 시작됐고 2021년 6월 1일에 법정 조사로 전환돼 지금도 진행중이다. 이번 조사는 은퇴한 고등법원 판사인 윈 윌리엄스가 주도하고 있다.

tigeraugen.ch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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