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지에서 먼저 승부수를 띄운 건 국민의힘이다. ‘선(先) 험지 공천-후(後) 양지 공천’ 방식을 택한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는 지난 15일 수원갑·병·정에 각각 김현준 전 국세청장, 방문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이수정 전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등 영입 인재를 단수 공천했다. 지난 총선에서 5개 지역구 모두를 더불어민주당에 뺏긴 만큼 선제적 공천으로 선거 유세 시간을 벌게 한 것이다.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도 지난달 말 총선 핵심 공약인 ‘철도 지하화’를 수원을 찾아 발표하는 등 공을 들이고 있다.
이재명(왼쪽)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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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소속이었던 김진표(수원무) 국회의장을 포함해 갑(김승원)·을(백혜련)·병(김영진)·정(박광온)·무 모두를 수성해야 하는 민주당은 공천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유권자 지형 자체가 불리하지 않은 만큼 공정 공천을 통해 지지층을 결집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여기고 있어서다. 민주당 현역 의원들은 최근 지역구 행사장을 부쩍 자주 찾는 등 저마다 선거 대비에 들어갔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경기도의 중심인 수원에서 수도권 바람을 일으켜야 총선에서 승산이 있다”며 “수원은 단순히 5석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수도권 표심을 공략하기 위한 여당의 공천 전략은 수인선을 따라 인천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버티고 있는 인천 계양을이 주요 타깃이다. 일찍이 이 지역구에 출사표를 던진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15일 공관위로부터 단수 공천을 받았다. 지난 18일 계양축구협회 시무식에서 이 대표와 원 전 장관, 두 사람이 만나 악수를 나누는 영상은 이른바 ‘명룡 대전’의 예고편으로 여의도에서 화제를 불러모았다. 민주당 관계자는 “원 전 장관이 이 대표 안방에 치고 들어온 것이 반갑지만은 않지만, 그렇다고 피할 이유도 없다”며 “워낙 민주당에 우호적인 지역이고, 이 대표 지지세도 높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여권 관계자는 “계양을의 선거 분위기가 인천 선거판 전체로 퍼져나갈 수 있어서 여야 모두 공을 들일 것 같다”고 내다봤다.
김영옥 기자 |
서울에서도 중도층 표심에 가장 민감한 ‘스윙보터’ 지역인 한강 벨트 역시 여야의 격전이 예고되고 있다.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통일부 장관(용산), 김병민 전 최고위원(광진갑), 오신환 전 의원(광진을), 장진영 변호사(동작갑), 나경원 전 의원(동작을), 이재영 전 의원(강동을) 등 주력 선수를 한강벨트에 단수 공천해 일찌감치 공략에 나섰다. 상대적으로 더딘 공천 과정을 밟고 있는 민주당도 광진을에 최고위원인 고민정 의원을 단수 공천하면서, 고 의원은 지난 총선 오세훈 서울시장에 이어 오 시장의 측근이자 서울시 부시장 출신인 오 전 의원과 맞붙게 됐다.
한강 벨트의 주목도가 상대적으로 높다 보니 여야 내부의 내홍도 이어지고 있다. 왕십리와 성수동이 위치한 중-성동갑에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공천 문제를 두고 민주당은 친명계와 친문계 간 계파 갈등이 벌어졌다. 국민의힘은 이런 틈을 파고들며 “임종석 전 실장의 평창동 주택은 호형호제하는 고향 기업인 회사 소유”(19일 김경율 비상대책위원)라고 직격하는 등 엄호 사격을 한 데 이어 윤희숙 전 의원을 단수 공천하면서 민주당을 압박하고 있다.
국민의힘도 마포을 공천 문제를 놓고 큰 혼란을 겪었다.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김경율 비대위원을 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버티고 있는 마포을에 투입시키려 하자 ‘사천 논란’이 벌어져 대통령실과 충돌하는 일까지 벌어진 까닭이다.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한강 벨트를 잡는 당이 그 선거를 90% 이상 이긴다고 봐야 하기 때문에 치밀한 수싸움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며 “지역 경계에 초점이 맞춰진 과거와 달리 최근엔 소득과 연령 분포까지 지역마다 다른 만큼 누구를 출전시키느냐가 더욱 중요해졌다”고 분석했다.
정영환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이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제10차 회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이날 정 위원장은 대구(12곳)·부산(18곳)·울산(6곳)·강원(8곳) 등 44개 지역구에 대한 공천 심사 결과를 발표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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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으로 공천 속도가 느린 민주당이지만 ‘낙동강 벨트’에선 민주당도 선제 공천으로 공세를 폈다. 민주당 공관위는 지난 6일 부산 북-강서을에 변성완 전 부산시장 권한대행, 경남 양산갑에 이재영 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 등 신인을 조기에 투입했다. 지난 15일엔 부산 사하갑에 최인호 의원, 경남 김해갑·을에 민홍철·김정호 의원, 양산을에 김두관 의원 등 현역 중진을 단수 공천해 방어 채비를 갖췄다.
국민의힘 역시 지난 18일 부산 북-강서갑에 서병수 의원, 경남 양산을에 김태호 의원, 김해을에 조해진 의원 등 다른 지역에 공천 신청했던 중진을 재배치하면서 맞불을 놨다. 5선의 김영선 의원도 최근 경남 김해갑 출마를 선언하면서 “낙동강벨트 탈환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장제원 의원 불출마로 공석이 된 부산 사상에 장 의원 측근 김대식 전 민주평통 사무처장을 공천해 수성 의지를 보였다.
낙동강 벨트 전선의 신경전도 고조되고 있다. 민홍철·김정호 의원은 19일 기자회견에서 “김해를 핫바지로 안다”는 강경한 표현을 쓰며 “국민의힘이 낙동강 벨트를 탈환한다는 해괴한 명분으로 김해를 전혀 알지 못하는 타지역 의원들을 내세우고 있다. 낙동강 벨트 선봉에서 반드시 함께 지켜낼 것”이라고 했다. 정광재 국민의힘 대변인은 “낙동강 벨트에서 밀리면 끝장”이라며 “낙동강 벨트 탈환으로 바람을 일으켜 전국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정용환·전민구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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