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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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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공격 시도조차 말라'…김정은 사실은 간곡한 요청? [Focus 인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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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작심하고 한 김정은의 발언에 대해, 그 진의를 추측하는 논쟁이 뜨겁다. 김정은은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과 국방성 연설을 통해, 대한민국이 주적이며 같은 민족도 통일의 대상도 아니라고 규정했다. 또 만일의 경우 한반도를 평정하기 위한 전쟁을 벌일 수 있다고 했다.

중앙일보

김정은이 딸 주애와 함께 조선인민군 창건일인 지난 8일 건군절 오후에 국방성을 방문한 뒤 연설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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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논란이 된 분석은 38North에 실린 지그프리드 헤커(Siegfried S. Hecker)와 로버트 칼린(Robert L. Carlin)의 글이었다. 이들은 최근 김정은의 발언이 1950년 김정은 조부인 김일성의 한국 침공 결정을 연상케 한다고 경고한다.

하지만 이번엔 그들이 틀린 것 같다. 김일성과 김정은은 전혀 다른 전제에서 전쟁을 고려하고 있다. 김일성이 전쟁을 감행하기 2년 전 조선인민군 창설식에서 연설한 내용, 스탈린에게 한국 침공 의지를 피력한 내용을 살펴보면, 김일성이 무력통일을 결심했던 데에는 동족인 한국의 주민들의 완전한 독립과 자주, 즉 민족해방을 추구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또한 김일성이 승산이 있다고 믿었던 데에는 당시 한국에 인민군을 도울 게릴라가 있고, 북한의 남침에 힘입어 곧 한국에서 이승만 정권에 대한 반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반면, 김정은은 전쟁을 언급하면서 먼저 남침할 가능성은 여러번 일축했다. 사실 2022년부터 김정은은 북한의 핵사용 가능성을 언급해왔다. 한국의 재래식 공격 징후에 대해서도 핵으로 대응할 의지를 피력했으니, 이는 대단히 공세적이며 확전의 위험을 높이는 것이다. 그러나 때마다 강조한 것은 ‘북한이 공격을 받게 되면’이라는 조건이었다. 이것은 곧 공격하겠다는 선포라기보다는, 공격 ‘시도’조차 하지 말라는 억제 메시지이고, 어찌 보면 간곡한 요청이다. ‘기습’을 전략의 핵심으로 택해온 북한군이, 이처럼 한ㆍ미가 방어태세를 강화한 상태에서 공격하진 않을 것이다.

또한 김정은은 전쟁을 발언함과 동시에 한국에 대한 동족 개념을 버렸다. 이로써 북한은 혹여라도 먼저 공격하여 한반도를 평정하고 싶을 때, 국제사회에 내밀만한 선대의 변명거리를 폐기한 셈이 됐다. 또한 김일성이 기댔던, 아직도 존재하고 있을지 모를 한국 내 북한 추종세력에게 실망감과 정체성의 혼란을 안겨주게 됐다. 이로써 한국의 공격을 받지 않았는데도 김정은이 한국에 대한 전면전을 감행할 대내외적 명분은 완전히 없어졌고, 한국 내 세력을 포섭하기도 이전보다 어려워졌다.

그렇다면 다음 궁금증으로 이어진다. 한ㆍ미는 그의 발언으로 오히려 방어태세를 강화할 텐데, 선대의 뜻을 이어 동족 개념을 유지하는 게 더 이로울 수도 있었을 텐데, 왜 안 해도 될 발언을 굳이 하며 통일 관련 기관들을 폐기하고, 헌법을 개정하겠다고 하는 것일까?

한국과 미국이 각각 국회의원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지만, 경험상 이들 선거 결과에 북한이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또 북한의 위협은 오히려 궁극적으로 북한에 손실이 되는 방향으로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것을 김정은도 잘 알 것이다. 다만 트럼프 선거 캠프를 겨냥한 움직임으로서, 향후 트럼프와의 협상을 위한 ‘빌드업’일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언제나 주지해야 할 사실은 김정은의 연설은 한국보다는 현장에서 직접 듣는 북한 지도부를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2021년 제8차 당대회에서 제시한 5개년 계획을 2025년까지 달성하는데 국가적 관심과 자원을 집중하고 있다. 예상치 못한 팬더믹으로 지연된 과업들도 상당할 것인데, 2024년은 이것의 달성 여부가 판가름나는 결정적인 해이다. 빠듯한 시간 동안 첫째, 내부의 투지를 최대로 끌어올려 달성 가능한 일에 집중하는 게 필요하고, 둘째, 이때 누구와의 협력이 가능할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협력이 될지 안 될지 베팅해볼 여유가 없다.

북한은 현재 한국 못지않은 출산율 하락에 직면해 있다. 김정은이 젊은 세대, 그리고 그 세대를 키우는 어머니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쏟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출신성분을 가려 기용하고, 평양 외 나머지 지역의 발전을 나 몰라라 하기에는 이제 북한에도 전문화하고, 확장이 필요한 영역이 많다. 한 사람이라도 더 김정은과 당에 충성하도록 해 독점적 권력을 틀어쥐면서도 ‘사회주의의 전면적 발전’에 다가서려면 사상적 단결이 필요하다. 단 한 명의 불충이 아쉬운 젊은 세대에게, 동족과 통일의 담론은 오히려 혼란을 준다고 판단한 것 같다.

결론적으로 북한은 침공을 결의할 때가 아니라, 공격받지 않는 상태에서 5개년 계획 달성과 사회주의의 전면적 발전에 총동원해야 하는 때이다. 김정은은 적들이 섣불리 공격하지 못하도록 억제하고, 최대한 물리적 그리고 사상적으로 일체화한 전쟁에 대비하고 또 발전해야 한다는 것을 북한 지도부와 주민들에게 주지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중앙일보

북한은 지난 14일 김정은이 참관하는 가운데 신형 지상대해상미사일 '바다수리-6형' 검수사격을 시행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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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다시 곱씹어보자. 북한은 대한민국 국민은 동족이 아니고 주적이며, 협상으로 평화를 구걸하지는 않지만, 전쟁을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역사가 그런가? 정작 김정은도 전쟁을 바라지 않기 때문에 결국 ‘늙다리 미치광이’라 부르던 트럼프와 손을 잡지 않았던가. 따라서 대범한 포용력과 꾸준한 인내력을 지닌 대한민국은 흔들림 없이 북한과 세계를 향해 계속 이같이 말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평화를 수호하고 전쟁의 위험을 관리하기 위해서 북한 정권과 군과도 머리를 맞댈 수 있다’고, 하지만 ‘국제사회의 규범을 준수하는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 동족인 북한 주민의 자유와 번영을 결단코 포기하지 않을 뿐’이라고.

전경주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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