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5 병원 전공의 집단 사직 예고···19일 의료대란 분수령 될듯
전공의 공백 대비 예정된 수술 취소·연기···환자들 불안감 확산
정부, '면허 박탈' 으름장···의협 비대위 “젊은 의사 지킨다” 맞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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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겠다는 사람을 억지로 주저앉힌다고 한들 환자 진료가 제대로 이뤄지겠습니까. 병원도, 교수들도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을) 못 막습니다. 수술, 진료 일정이 쌓여있어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에) 함께 하지 못하는 게 미안할 따름이죠. ”
서울 한 대형병원 교수는 18일 “면허 박탈을 빌미로 전공의들을 겁박하는 정부의 행태에 진저리가 난다"며 "의대 증원 추진에 반발해 사직한 전공의들이 피해를 입는다면 의대 교수들도 가만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턴, 레지던트 등 대학병원 전공의들이 의과대학 정원 확대에 반발하며 집단행동을 예고한 가운데 의대 교수들 사이에서도 지지 여론이 확산하고 있다. 전공의가 신호탄을 쏘아올린 의료계 집단행동이 전임의(펠로우), 교수들의 집단행동으로 이어지며 2020년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와 의료계 등에 따르면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지난 16일 '빅5' 병원 전공의 대표들과 논의한 결과 오는 19일까지 해당 병원 전공의 전원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20일 오전 6시 이후에는 근무를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빅5 병원은 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병원을 말한다.
이미 현장에서는 전공의들의 사직서 제출이 시작이 됐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16일 전공의의 집단 사직서가 제출했거나 제출이 의심되는 12개 수련 병원에 대해 현장점검을 실시한 결과, 235명이 사직서를 냈으며 이들 중 103명은 실제로 근무를 하지 않았다. 아직까지 사직서가 수리된 병원은 없다. 복지부는 이들 103명에게 업무개시 명령을 내렸고 이에 따라 100명은 현장에 복귀했으나 3명과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복지부는 이 3명이 속한 병원의 수련 담당 부서로부터 업무개시명령 불이행 확인서를 받았고, 추후 처분을 결정할 계획이다. 의료계 안팎에서는 업무개시명령에 불응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이들에 대한 처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박단 대전협 회장(세브란스병원 전공의)은 16일 회원들에게 빅5 병원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을 알리는 공지와 함께 "면허 취소를 각오하고 업무개시명령 발동 시에도 복귀하지 않기로 했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불과 하루 전(15일)에 개인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20일 병원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다음 달 20일 병원을 떠날 예정이다. 회장 업무도 20일까지만 수행하겠다"며 "집단행동은 절대 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던 것과는 기조가 달라졌다. 박 회장은 대한의사협회 '의대 정원 증원 저지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에도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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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 안팎에서는 젊은 의사들 사이에서 정부의 '2000명 의대 증원'에 대한 반발이 큰 만큼 대전협이 정한 시한의 마지막날인 19일 사직서 제출이 몰릴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빅5 병원에 등록된 인턴, 레지던트를 합치면 2700여 명으로 전체 전공의(1만3000여 명)의 약 21% 차지한다. 서울대병원의 경우 전체 의사 1600여 명 중 전공의가 740명(46.2%)으로 절반에 가깝다.
이들 병원은 당장 20일부터 전공의들의 공백이 생길 것에 대비해 비상상황에 돌입했다. 다음주로 예정된 수술 중 중증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수술부터 취소 또는 일정을 미루는 식이다. 통상 수술 하루 전날 입원하다 보니 주말 사이(17~18일) 19일 입원 예정이었던 환자 중 일부는 수술 지연 또는 취소 통보를 받았다. 진료과 마다 사정이 다르지만 마취통증의학과 전공의 공백이 생기면서 수술을 진행하는 모든 진료과가 영향권에 들 수 밖에 없다. 서울 서대문구 소재 세브란스병원(신촌)은 마취통증의학과가 평소 대비 50% 미만으로 운영 가능할 것이란 예상 아래 16일 각 진료과에 수술 스케줄 조정 및 운영을 요청했다. 이 병원은 일주일 평균 1600여 건의 수술을 시행한다. 삼성서울병원은 20일부터 전공의 공백이 발생할 상황에 대비해 18일부터 집도의(교수), 전임의(임상강사), 전공의, 전문간호사 등이 환자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수술 연기를 설명하고 있다. 진료과별로 파업이 19일로 앞당겨질 가능성 등에도 사전 대비책을 세웠다. 이 병원은 하루 평균 200여 건의 수술을 소화하고 있다. 문제는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일 뿐, 전공의 의존도가 높은 대학병원들의 구조상 전공의 집단이탈 시 진료일정을 정상적으로 소화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서울아산병원, 서울성모병원 등도 비슷한 상황이다. 빅5 병원 관계자는 “당장 예약된 진료 일정을 소화하는 데는 무리가 없을지 몰라도 며칠 버티기 힘들 것”이라며 “머지 않아 정해진 수술의 4분의 1을 진행하는 수준에 이를 것"이라고 대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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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파업에 대한 여론은 곱지 않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폐암 4기로 진단된 아버지의 수술이 의사 파업 때문에 지연됐다며 "환자 생명으로 자기 밥그릇 챙긴다고 협박하는 게 의사가 할 짓인가요"라고 하소연하는 글이 올라왔다. 이 글에는 전공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는 내용의 댓글이 1000개 이상 달렸다. 애타는 환자와 가족들을 외면한 채 정부와 의료계 강대강 대치는 이어지고 있다. 여권에서도 "의사 단체들이 끝내 불법 파업에 돌입한다면 반드시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처리할 것"이라며 맞불을 놨다. 윤희석 국민의힘 선임대변인은 17일 논평을 통해 "대화를 통한 타협을 위해 끝까지 노력할 것이지만, 의사 단체들이 끝내 불법 파업에 돌입한다면 반드시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처리할 것"이라며 "향후 어떠한 구제와 선처도 없을 것이라는 점도 분명하게 밝힌다"고 경고했다.
여기에 의협 비대위는 "단 한 명의 의사라도 이번 사태와 연관해 면허와 관련한 불이익이 가해진다면 이를 의사에 대한 정면도전으로 간주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행동에 돌입할 수 있다"고 응수했고, 의대 교수들 사이에서도 전공의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지지 여론이 확산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협의회는 지난 16일 긴급 이사회를 열어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을 결의하고 관련 절차를 밟고 있다. 서울의대 교수협의회는 지난 2020년 문재인 정부 시절 의대 증원 추진에 반발해 전공의들이 단체행동에 나섰을 때도 병원 소속 교수들과 함께 비대위를 꾸리고 관련 현안에 대응했다. 당시 이광웅 서울대병원 외과 교수가 비대위원장을 맡았다. 파업이 장기화하면서 전공의 고발 등 정부의 처분 수위가 높아지자 전국 의과대학 교수협의회와 연대해 전공의, 전임의, 의대생 등 젊은 의사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목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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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교수들은 2020년 문재인 정부의 의대 증원 추진에 반발해 80%에 가까운 전공의들이 파업에 나섰을 때도 이들을 지지하며 뒷배 역할을 해왔다. 과거 사례를 돌이켜 볼 때 전공의 파업이 장기화하면 전임의(펠로우), 교수들의 집단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2020년 9월 가톨릭중앙의료원은 산하 8개 병원이 공동 성명을 내고 전공의와 전임의를 지지하겠다는 뜻을 표했다. 의대 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신설 관련 정책이 전면 다시 논의돼야 한다는 전공의·전임의들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파업의 원인이 정부의 정책에 있으므로 부당한 행정처분이나 공권력 집행을 중단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실제 서울성모병원 외과 교수 일동은 의협이 2020년 9월 7일 강행한 전국의사총파업에 맞춰 외래 진료와 수술을 중단한 바 있다. 이날 중앙대병원 신경외과 교수들도 '사직 성명서'를 발표했다.
여의도성모병원 외과 교수로 재직 중인 김성근 서울시의사회 부회장은 15일 서울특별시의사회 주최로 용산전쟁기념관 앞에서 열린 의대정원 증원 정책 반대 궐기대회에서 "우리나라 의료를 마지막 끝에서 버텨주는 곳이 대학병원들인데 그 중심을 지키는 전공의들이 사라지고 있다. (대학병원들이) 곧 기능을 상실할 처지"라며 "우리(의사)는 정부와 싸우자는 것이 아니다.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한 현실적 대안을 마련해 달라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안경진 의료전문기자 realglasse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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