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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트럼프 전 대통령이 뉴욕 맨해튼 지방법원에서 열린 민사소송에서 3억 5천5백만 달러, 우리 돈 4천7백억 원 벌금을 선고받았습니다. 본인에게 직접 부과된 액수만 이 정도로, 아들 트럼프 주니어와 에릭에게 각각 4백만 달러, '트럼프의 회계사'로 불렸던 앨런 와이셀버그에게 1백만 달러 등 전체 피고인 측 벌금을 합하면 총액은 3억 6천4백만 달러, 4천8백억 원에 이릅니다. 뉴욕타임스는 이자까지 더할 경우, 이번 판결로 트럼프가 물어야 할 돈이 4억 5천만 달러, 5천9백억 원이 넘을 걸로 전망했습니다.
이번 재판은 트럼프 전 대통령과 트럼프그룹이 은행과 보험사로부터 유리한 거래조건을 얻기 위해 보유 자산가치를 허위로 부풀려 신고했다며 뉴욕주 검찰이 지난 2022년 9월, 법원에 민사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재판 기간, 트럼프 측은 자신의 행위로 피해를 본 사람이 없다며 정치적 마녀 사냥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자산 부풀리기 의혹을 반박하며 트럼프의 브랜드 가치가 100억 달러(13조 원), 이름값이 30억 달러(4조 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던 걸로 알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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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 맨해튼의 트럼프 타워
하지만 법원은 허위 재무제표 발행과 사업 기록 위조 등 다수 혐의가 인정된다며 원고 측 손을 들어줬습니다. 그에 대한 처벌로 벌금과 함께 그의 돈줄인 사업체 경영에도 제재가 내려졌습니다. 법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뉴욕주 내 사업체에서 향후 3년간, 그의 두 아들은 2년간 고위직을 맡지 못하게 했습니다. 본인은 물론 현재 뉴욕 주요 자산의 사실상 CEO를 맡고 있는 에릭 트럼프도 기업 경영에서 손을 떼야하는 상황이 된 겁니다. 법원은 트럼프가 뉴욕에 등록된 금융기관에 앞으로 3년간 대출신청을 하는 것도 금지시켰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일가를 더욱 참지 못하게 한 건 따로 있습니다. 법원이 트럼프 그룹 활동 감시역으로 바버라 존스 전 연방 판사의 임기를 3년 연장한 겁니다. 그녀는 이번 판결에 앞서 법원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트럼프 그룹의 내부 통제가 적절히 이뤄지지 않은 것 같다고 밝혀 이번 판결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녀의 활동이 연장되면서 트럼프는 그간 자신의 (뉴욕타임스 표현을 빌자면) '본능과 변덕'(instinct and whim)에 따라 운용하던 호텔과 사무실, 15개의 골프 클럽 등 수백 개 사업체를 더 이상 독단적으로 운영할 수 없게 됐습니다.
'재벌' 트럼프 타격 어느 정도?
이번 판결로 트럼프는 대선을 앞둔 민감한 시기에 재정과 사업, 자존심에 상당한 타격을 입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입은 타격은 어느 정도일까요? 지난 2015년 대선 출마 선언 당시 그가 언급했던 자산액은 90억 달러, 무려 12조 원에 달합니다. 하지만 이후 자산 부풀리기 의혹이 계속됐고 2019년 시작된 뉴욕주 당국의 조사는 결국 이번 소송으로 이어졌습니다. 포브스는 지난해 트럼프의 순자산이 26억 달러, 약 3조 4천억 원에 이르는 걸로 추산했습니다.
그가 이야기했던 액수의 1/3도 안되는 금액이지만, 3조 4천억 원 자체도 어마어마한 금액입니다. 이번 판결 벌금을 가장 크게 잡더라도 6천억 원이 안 되니 설사 이 돈을 다 물게 되더라도 그가 파산하거나 결정적 타격을 입는다고 말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결코 타격이 작은 건 아닙니다. 속된 말로 망하는 일이야 없겠지만 당장 돈 쓸 곳이 많은 상황에서 현금이 바닥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더 타임즈(The Times)가 트럼프의 재무 기록을 검토한 결과, 지난해 기준 트럼프의 현금 및 현금 등가물은 약 3억 5천만 달러인 걸로 나타났습니다. 이번 판결 벌금을 물게 된다면 그의 수중엔 현금이 한 푼도 남지 않게 됩니다. 여기에 지난달 성추행 명예훼손 관련 벌금 1천1백억 원까지 합하면 상황은 더욱 답답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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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측은 이번 판결에 승복할 수 없다며 항소의사를 밝혔습니다. 항소할 경우, 배상액에 일정 비율을 더한 금액을 법원에 예치해야 하지만 직접 현금이나 채권을 맡기지 않고 보증 회사를 통해 해결할 수 있습니다. 240억 원에 달하는 보증 수수료가 만만치 않지만 당장 빈 지급이 되는 건 피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여기에 형사사건 4건을 포함해 다양한 민사 소송이 진행 중이지만 이 소송 비용도 전부 그의 사비를 털어 쓰는 게 아닙니다. 트럼프는 지난해 모금한 정치자금 2억 달러 가운데 1/4인 5천만 달러, 약 650억 원을 각종 소송의 변호 비용으로 사용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전한 현재 트럼프 캠프 보유 현금이 6천5백만 달러(약 868억 원)이라고 하니 여기서 또 얼마를 자기 소송 비용에 쓸지 모를 일입니다.
다만, 그의 소송 비용이 늘면서 선거 자금 압박이 커지는 건 확실해 보입니다. 어찌 보면 트럼프가 니키 헤일리의 사퇴를 압박하며 공화당 경선을 빨리 끝내려 하는 것도 이런 사실과 관련이 있는 듯 보입니다. 91개 혐의로 4건의 재판을 받고 있는 그에게 기자들이 "법정에 있는 동안 선거 운동은 어떻게 할 건가"라고 묻자 트럼프는 "저녁에 하겠다"고 받아넘겼습니다. 성추행 손해배상 소송에서 지고도 같은 주장을 계속해 추가 소송을 당하는 기행도 서슴지 않는 그가 이번 사법 위기에는 어떤 식으로 대응해갈지… 올해 미 대선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한번 지켜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남승모 기자 smna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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