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가 설문 조사한 전문가 과반수(12명)가 “한국 증시는 40% 이상 디스카운트됐다”고 평가했다.사진은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홍보관에서 한 시민이 전광판 앞을 지나는 모습.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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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이상. 전문가들이 매긴 글로벌 시장 대비 ‘한국의 할인율(디스카운트)’로 한국 증시의 현주소다. 40% 디스카운트가 없었다면 주가(코스피)는 14일 기준 4367.4로 4000선 고지를 넘었다.
신재민 기자 |
14일 중앙일보는 학계를 비롯해 연구기관 전문가와 국내외 기관투자가 20명 대상 설문 조사로 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과 해결책을 진단했다. 응답자의 과반수(12명)가 “한국 증시는 40% 이상 디스카운트 됐다”고 평가했다. 이중 “반 토막(50%) 수준”이라고 응답한 전문가가 5명이다. 20% 미만으로 저평가됐다고 평가한 사람은 한명에 불과했다.
유럽 최대 연기금인 네덜란드 연기금자산운용(APG)의 김정남 아시아ㆍ태평양 매니징 디렉터는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에 따르면 저평가된 MSCI 일본 지수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1.5배를 넘지만 한국은 1배를 밑돈다”며 “신흥시장 내 비슷한 산업 구조를 갖춘 대만(2.4배)과 PBR 격차는 더 벌어진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증시에 ‘할인’ 꼬리표가 붙는 가장 큰 원인으로 기업지배구조를 꼽는다. 뒤를 이어 미흡한 주주환원, 정책 일관성 부족, 조세 제도 순으로 응답이 많았다. 특히 기업지배구조는 한국만의 고질적인 문제다. 대기업 총수(대주주) 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기업 전체를 지배하는 구조가 소액주주의 이익을 침해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글로벌경쟁력지수(GCI)에 따르면 한국의 기업지배구조는 2017년 기준 140개국 가운데 100위에 머무른다. 자본시장 체질개선이 필요한 이유다.
신재민 기자 |
서준식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부 대주주의 기업 사유화로 소액주주의 주식 가치나 권리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며 “특히 이를 견제ㆍ감시해야 할 이사회는 대주주(경영진 포함)와 거의 ‘깐부(같은편)’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미흡한 주주환원도 취약한 지배구조에서 비롯됐다. 경영진의 경영 우선순위에서 일반 주주는 소외되다 보니 기업의 배당성향은 낮을 수밖에 없다(이남우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 강소현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의 주주환원율은 2010년부터 9년간 45개국 가운데 40위 이하로 최하위권에 속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소액주주를 위한 상법 개정이 고질적인 기업지배구조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봤다. 이사회가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액주주의 이익을 책임 있게 반영하도록 법을 바꾸는 방법이다. 이남우 교수는 “이사회가 경영진을 견제하고, 소액주주의 이익을 반영할 수 있도록 (법적 강제력을 지닌) 경성 규범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 센터장도 “상법 개정으로 주주가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있을 때(주주행동주의) 비로소 장기투자 문화가 자리 잡는다”고 말했다.
일부는 대주주의 사익 추구를 차단하는 방법으로 자사주 제도 개선을 제시했다. 자사주는 회사가 발행한 주식을 다시 취득해 보관한 주식으로, 금고주(treasury stock)로 불린다. 올해 금융당국은 상장법인의 인적분할 시 자사주에 대한 신주배정을 제한하기로 했다. 대주주의 지배력을 높이는 데 자사주가 활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국내 기업은 자사주 매입을 자산관리 수단으로 활용한다”며 “미국처럼 실질적인 효과를 보려면 매입에 그치지 않고, 영구 소각해야 주주 이익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모회사와 자회사가 동시에 상장(중복상장)해 기업가치가 중복되는 ‘더블 카운팅’ 이슈도 해소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학균 센터장은 “중복상장에 따른 더블 카운팅 문제가 한국의 지주회사(모회사) 주가가 잘 오르지 않는 가장 큰 원인”이라며 “중복 상장이 지속할 경우 모회사 주주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박경민 기자 |
한국 증시가 제값을 받으려면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일관성없는 정부의 정책도 걸림돌로 꼽고 있다. 지난해 11월 6일부터 올해 6월 말까지 전면 금지한 공매도가 대표적인 사례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불법 무차입 공매도를 막기 위해 금지를 택했다는 게 당국의 입장이지만, 아직 제도 개선 법안이나 공매도 전산시스템 마련은 진척이 없다”고 말했다.
김정남 디렉터는 “(한국은) 최근 공매도 규제처럼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따라 급조된 제도가 많다”며 “(기관투자가 등) 장기투자자에겐 커다란 위험(리스크)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도 “정권별 기업정책의 변화가 심하다 보니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 결정의 불확실성을 키운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기업, 투자자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노력이 단순한 주가 부양에 그쳐선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혁신성장산업을 육성하는 ‘투트랙 전략’으로 나서야 투자자(가계)와 기업의 부를 늘릴 수 있다고 강조한다. 자본시장 체질 개선 만큼 기업이 주주환원 재원을 마련할 수 있도록 사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도 중요하다. 또 저평가 해소로 주식시장에 몰린 자금은 다시 모험 자본으로 이동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문이다.
강소현 연구위원은 “주주환원과 투자자 권익 제고를 위한 제도 개선과 함께 상장 기업의 성장성과 수익성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 교수는 “기업과 국내외 투자자의 국내 투자를 늘리기 위해선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은 정부 규제와 조세 제도는 개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경진 기자 |
중앙일보는 전문가 설문조사를 통해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주요 정책의 효과성을 10점 만점 척도로 평가했다. 답변을 종합한 결과 기업 밸류업(가치 제고) 프로그램에 대한 전문가의 평가가 평균 7.4점으로 가장 높았다. 뒤를 이어 소액주주를 위한 상법 개정(7.2점), 자사주 제도 개편(6.4점), 상속세 제도 개편(6.3점) 순으로 정책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했다.
반면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를 비롯해 주식 양도세 대주주 기준 상향, 공매도 제도 개선에 대해선 전문가들은 효율성이 낮을 것(평균 3.7점)으로 평가했다. 전문가 상당수가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와 주식 양도세 대주주 기준 상향은 글로벌 스탠다드와 역행하고 정책 일관성 측면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단기적인 수급 개선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염지현, 나상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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