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협 비대위 체제로 전환만 공개…파업 늦출 듯
3월 계약 갱신 포기, 한번에 연차 소진 방안 등 논의
12일 서울의 한 대형 종합병원에서 의료진이 오가고 있다. 2024.2.12/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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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정부의 의대 증원 결정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설 직후 단체행동에 돌입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즉각적인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 모양새다. 정부가 압박 수위를 높여 전공의들의 집단 행동에 따라 강도 높은 법적 대응을 선포하면서 비대위 체제로 대응방안 등을 더 마련한 뒤 단체 행동의 시기와 방식 등을 재논의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설 연휴 마지막날인 12일 밤 9시 온라인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2025학년도 입시부터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는 정부의 결정을 저지하기 위한 단체 행동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이튿날 새벽까지 토론을 벌였지만 어떤 결론에 도달했는지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다만 이들은 회장을 제외한 집행부 전원이 사퇴하고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대응해 나가기로 결정했다. 대전협은 13일 오전 공지문을 통해 “지난 12일 진행된 온라인 임시대의원총회에서 '제27기 대한전공의협의회 부회장, 이사, 국원 전원 사퇴 및 비상대책위원회 전환에 대한 건'에 대해 참석한 194단위 중 찬성 175단위, 기권 19단위로 가결됐다”며 비대위 전환 소식을 알렸다.
의료계에서는 전공의들이 설 연휴가 끝나자마자 즉각 단체 행동에 나설 것으로 예상했다. 정부의 의대 증원 결정 소식이 들리면서부터 결집을 위한 움직임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앞서 대전협은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3일까지 전국의 수련병원 회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140여개 수련병원 1만여명의 회원들 중 88.2%가 '의대 증원시 단체행동에 참여하겠다'고 답한 바 있다.
전체 전공의의 15%에 해당하는 2300여명이 소속된 '빅5' 병원 중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전공의들도 대전협 결정에 따라 단체 행동에 참여하겠다는 의견을 모아놓은 상황이다.
박민수 중앙사고수습본부 부본부장(보건복지부 제2차관)이 13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의료개혁과 의사 집단행동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설명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2024.2.13/뉴스1 ⓒ News1 김기남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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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이날 대전협 대의원 임시총회에서도 압도적인 지지 속에 파업 등의 집단행동이 통과될 줄 예상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파업 여부를 두고도 찬반으로 나뉘어 의견이 팽팽히 맞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의료계에선 정부의 강도 높은 압박과 강경 대응 방침에 당장 파업에 돌입하는 등 단체 행동에 나서는 건 무리가 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보건복지부는 이번 의대 증원 결정을 관철하기 위해 지난 6일 발표 직후 법무부, 국방부, 행정안전부, 경찰청 등 관계부처, 17개 시·도와 함께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를 꾸리고 의사들을 압박해왔다.
특히 의사 파업에 동력이 되는 전공의들이 집단 행동에 나설 수 없도록 각 병원에 3인1조로 직원을 배치해 감시에 나섰고, 대전협에서 집행부 역할을 하는 전공의들에게는 경찰청 협조를 요청해 경찰 인력까지 배치해 감시를 강화해왔다.
또 전공의들이 업무개시명령을 사전에 차단하고자 집단 사직 움직임을 보이자 즉각 '집단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을 내리고 "단체 행동의 일환으로 집단 사직서를 제출하더라도 적법하게 업무개시명령을 할 수 있고 정당한 사유없이 이를 거부하는 경우 처벌될 수 있다"고 압박했다.
대통령실도 정부의 압박에 힘을 실었다. 대전협 임시총회가 열린 날에도 "지금 하는 의사의 단체행동 준비와 또 앞으로의 단체행동에 대해서는 명분이 없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며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분명 자제돼야 한다"며 엄정 대응을 경고했다.
여론도 의사들이 자신들의 밥그릇 챙기기를 위해 국민들의 생명을 볼모로 잡는다며 냉랭한 반응이다. 실제로 보건의료노조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국민여론조사에 따르면 의대 증원에 찬성하는 국민이 89.3%를 차지했다. 이 조사에서 '의협이 진료 거부 또는 집단 휴업에 나서는 것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답도 85.6%에 달했다.
13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 의대 증원을 반대하는 손팻말이 놓여 있다. 2024.2.13/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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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전협도 즉각적인 집단 행동을 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또 전공의들이 치르는 전문의 실기시험이 지난 3일부터 시작돼 15일까지 이어질 예정이라 파업에 즉각 돌입하기엔 시기도 적절하지 않다는 게 중론이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현재 법이나 제도 등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많은데 그냥 무대포로 무작정 하기에는 피해가 있을 수 있어 일단 당장은 하지 않고 대비하는 쪽으로 결정한 것 같다"며 "선배 의사들도 이들을 보호하는 차원으로 방안을 강구해 같이 머리를 맞대고 대응 방안을 찾아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임시총회에서도 당장 행동에 나서는 건 모두에게 위험하다는 판단이 있었고, 비대위를 꾸려 정부의 법적 대응에 맞설 만한 방안들을 논의할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의료계 관계자는 "파업을 안 하겠다는 건 아니고 4월 총선이 맞물려 있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확실하게 해야 파괴력이 있으니 두 달은 열심히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전공의들은 또 오는 3월에 있을 계약 갱신 시점에 계약을 하지 않는 방식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계 관계자는 "전공의 계약을 병원마다 1년씩 하는 데도 있고 통으로 하는 데도 있는데 이 계약 시점이 보통 3월"이라며 "계약을 안 하는 부분도 투쟁의 일환으로 고려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공의는 인턴 1년, 레지던트 3~4년 과정을 밟는다. 대학을 졸업하고 인턴에 들어갈 때 계약을 하고 레지던트 과정으로 전환할 때 계약을 한번 또 해야 한다. 레지던트 과정에서는 1년씩 갱신해 계약을 하거나 전과정을 한번에 계약하는 방식으로 나뉜다.
이에 갱신되는 계약을 하지 않거나 인턴 계약, 레지던트 전환 계약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연차를 동시에 쓰는 방식도 있다. 3월부터 새로운 연차가 들어오면서 한꺼번에 연차를 모두 소진하는 것이다.
이에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은 "물론 이 가능성에 대해서도 사전에 검토한 바가 있지만 실질적으로 현장에서 이행되기가 쉽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며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지 않도록 계속 대화하고 설득하고 함께 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전공의들은 현재 이탈 없이 각자의 자리에서 본연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빅5 병원 관계자는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병원은 조용하다"며 "전공의들 또한 평소처럼 모두 성실히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에 떠밀려 사는 전공의들인데 본인의 업무를 해내는 것도 버거운 데다 파업 관련해 전화도 빗발쳐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상황"이라며 "선배 의사들도 조심스럽게 분위기를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sssunhu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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