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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2 (토)

'적국 선동해 우방 공격하는 美' 트럼프 2.0 현실화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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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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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0일(현지시간) 사우스캐롤라이나 경선 유세 과정에서 내놓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관련 발언은 하룻밤 새 유럽과 미국은 물론 전 세계를 발칵 뒤집어놓기에 충분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하면 글로벌 안보 지형이 광범위하게 재편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현실화했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3년 차를 바라보고 있는 유럽의 동맹국들에 분노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11일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첫 집권 때부터 나토의 집단방위 개념을 단 한 번도 믿어본 적이 없지만, 주말 사우스캐롤라이나 유세에서 러시아가 공격하도록 장려하겠다고 한 발언은 문제를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다고 분석했다. 우방보다 적국을 편드는 발언을 함으로써 국제 질서를 뒤엎겠다고 위협했다는 것이다.

NYT는 "적국을 부추겨 미국의 동맹국을 공격하라고 제안하는 발언은 전현직 대통령을 통틀어 전례를 찾아볼 수 없다"며 "트럼프 전 대통령은 어떤 종류의 동맹이든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그가 재선에 성공하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거의 80년 동안 유럽과 아시아, 중남미와 중동의 우방을 지켜온 안보 우산을 효과적으로 종식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미국 의회는 그 어떤 대통령도 상원의 승인 없이 나토에서 탈퇴하지 못하게 하는 법안을 최근 통과시켰다.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은 나토 공식 탈퇴 없이도 나토를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재임 당시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피터 피버 듀크대 교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어떤 군사적 방어 계획도 공허하게 만들고, 미국의 약속을 어설프게 만드는 수준으로 유럽에 주둔하는 미군을 줄일 수 있다"며 "이것만으로 나토는 상처를 입고, 어쩌면 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전 세계 다른 지역의 동맹국이나 파트너 중 우리가 나토를 파괴하는 것을 보고도 미국의 약속을 신뢰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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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동맹국들이 미국에 기댈 수 없게 된다면 미국과 상호 안보 협정을 맺은 다른 나라들 역시 미국의 도움을 확신하기 어려워져 과거 한국전쟁과 같은 상황이 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NYT는 "역사는 나토 약화와 같은 상황이 더 적은 전쟁이 아니라 더 많은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며 "1950년 딘 애치슨 국무장관이 한국을 제외한 극동 방위선(애치슨 라인)을 발표한 지 5개월 뒤 북한이 남한을 침략했다"고 지적했다.

한국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더 내지 않으면 트럼프 전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 동안 주한미군 철수가 지금까지 그의 공언처럼 의제의 우선순위에 오를 것이라고 NYT는 내다봤다. 또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도 더 이상 제공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유럽 각국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 발언과 관련해 거센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샤를 미셸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나토의 안보에 관한 무모한 발언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도움이 될 뿐"이라며 "세계에 더 많은 평화와 안전을 가져다주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라데크 시코르스키 폴란드 외교장관은 NYT에 보낸 이메일에서 "나토 헌장 제5조가 발동된 것은 9·11 테러 이후 미국이 주도한 아프가니스탄 공습 때였다"며 "폴란드는 당시 10년간 여단급 군대를 파견했지만 워싱턴DC에 청구서를 보내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나토 헌장 제5조는 회원국 중 한 나라가 공격을 받으면 나토 전체가 공격받은 것으로 간주하고, 다른 회원국이 자동으로 개입해 공동 방어하는 집단방위 조항을 말한다.

전 나토 관료이자 핀란드 국제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인 에드워드 헌터 크리스티는 엑스를 통해 "진짜 문제는 트럼프가 새로운 균형의 관계 안정화를 원하는지, 관계의 지속적이고 의도적인 침식을 추구하는지다"며 "트럼프가 유럽을 버리고 러시아와 유럽의 머리 위에서 거래를 성사하기 위한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일 것"이라고 밝혔다.

티에리 브르통 EU 집행위원은 프랑스 LCI TV 인터뷰에서 "전에 들었던 얘기다.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다"며 "그는 기억력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큰 나라의 대통령 중 한 명'이라고 기억했으나 실제로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2020년에 나눈 대화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미국 대선에 의존해 우리 안보를 두고 4년마다 동전 던지기를 할 수 없다"며 "유럽 지도자들이 국방비 확대 필요성을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제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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