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송시대 선승의 시를 현대적으로 해석
하이쿠, 센류처럼 선시 또한 매력적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앞에서 원철 스님이 옛 선사들의 게송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윤서영 인턴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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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높으면 돌덩이에 새길 필요가 없다. 오가는 사람들의 입이 비석이다."
설 연휴 직전인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 전법회관에서 만난 원철 스님. 제일 반응이 좋은 구절을 꼽아 달라 하자 '아주 오래된 시에서 찾아낸 삶의 해답'(불광출판사 발행)을 펼쳐 들고서는 '명고불용전완석(名高不用鐫頑石) 노상행인구시비(路上行人口是碑)'를 짚었다.
불교 선종의 창시자 달마대사에 대한 찬양이 들끓을 때 분(賁) 선사가 지었다는 게송(偈頌· 불교의 시) 가운데 한 구절이다. 같은 맥락에서 청백리였던 조선 선비 박수량(1491~1554)은 38년간 중앙정계에서 활동했으나 글자 하나 새기지 않은 백비(白砒)만 남겼다. 기릴 만하다면 후대가 알아서 기릴 일이고 안 기릴 만하면 그것대로 그뿐인 일이지, 혹여 누가 몰라줄까 봐 비석에다 제 입으로 자찬을 늘어놓는 건 구차하다는 얘기다. 자리 이름값에 얽매여 싸우기 일쑤인, 지금의 사회에서도 곱씹을 말이다.
1000년 전 선시, 지금도 유효하다
책은 이렇게 불교의 옛 선사들이 남긴 시 가운데 한두 구절만 짧게 발췌해 풀어 주는 내용이다. 선사들의 시라는 게 대개 1,000년 전 당송 시대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잘 풀어서 전달해 준다면 21세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더 잘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희망 때문이다. "시대가 변했어도 사람의 성정은 그대로"라고 생각해서다.
이런 희망엔 이유가 있다. 1986년 경남 합천 해인사에서 출가한 원철 스님은 법전 스님의 상좌였다. 조계종 종정인 법전 스님은 성철(1926~2014) 스님의 제자였으니 원철 스님은 성철 스님의 손자뻘 된다. 출가 이후 그가 주력한 것은 경전과 선어록 연구, 강의였다. 당송대의 선승 81명의 전기를 기록한 '선림승보전' 30권을 처음으로 모두 번역해 낸 것이 대표적인 성과다.
그런데 이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잘 읽히지 않는다는 게 아쉬웠다. 경전 밖으로 고개 들어 세상을 내다보니 인터넷 시대가 열리고 있었다. 뭔가 바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2003년 서울로 왔다. 오래된 얘기를 잘 아는데, 그걸 쉽게 잘 풀어낸다는 입소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지금껏 그렇게 묶어낸 책이 10여 권이다.
"처음 서울로 올라올 때만 해도 주변에선 서너 달 만에 내려올 거라고 했지요. 산중사찰에서 경전 보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 대도시 서울에서 버틸 수 있겠냐는 거죠." 그랬는데 총무원, 교육원 등에서 각종 소임을 맡은 데 이어 지금은 불교사회연구소장으로 서울에 머물고 있다. "수도승(修道僧) 아닌 수도승(首都僧)"이라며 웃었다.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 전법회관에서 이야기 중인 원철 스님. 윤서영 인턴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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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에서 화제가 된 시집이 있다. 일본의 실버세대가 지은 센류(川柳) 시집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포레스트북스 발행)이다. 일본의 짧은 정형시 하이쿠와 센류는 이미 서양에 널리 알려져 있다. 누구나 일상 속에서 한두 구절 정도 읊어낼 수 있을 것 같은, 재치와 유머가 재미있어서다. 시 짓기가 일종의 놀이가 된 셈인데, 이 때문에 우리 문학계에서도 옛시조가 오히려 'K문학'의 선두 주자가 될 수 있다는 얘기가 돌기도 했다. 원철 스님은 거기다 선시를 얹은 것이다.
새해 계획? 설날 이후 열심히 합시다
원철 스님이 이 책과 거의 동시에 낸 '지금 여기, 찰나를 거닐다'는 좀 더 본격적이다. 극히 짧은, 거의 두 문장으로 이뤄진 본인의 글을 모아둔 책이다. 이 책의 핵심은 '두 줄'이란 제목의 짧은 시에 그대로 드러난다. '두 줄'의 전체 내용은 이렇다. '한 줄은 외롭고 / 세 줄은 번다하고.' 다만 이 책은 비매품이라 시중에서 구할 수 없다. 대신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이 전국 템플스테이 등에 비치할 예정이니 혹시 들를 일이 있으면 한번 챙겨 보면 된다.
해가 바뀌고 설이 지났다. 원철 스님은 초나라 시인 굴원(BC343~277?)의 글을 약간 변형해 '신년목(新年沐) 신년욕(新年浴)'을 화두로 던졌다. '양력설에는 머리는 감고 음력설에는 목욕을 한다'는 것인데 "양력설에는 머리로 새해 설계를 하고, 음력설부터 비로소 몸을 움직이며 실천에 들어간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새해 계획이 벌써 실패했다 울상 지을 필요는 없다. 설날 이후에라도 열심히 하면 될 일이다. "만해 한용운(1879~1944)처럼 내용이 단단하면서도 법정스님(1932~2010)처럼 쉬운 글을 쓰고 싶다"는 원철 스님이 내놓은 격려이자 응원이다.
조태성 선임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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