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시장이 침체기를 끝내고 2024년부터 ‘슈퍼 사이클(초호황)’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2023년 12월 국내 한 증권사 반도체 담당 애널리스트의 발언.
지난해 12월 조선비즈가 국내 주요 증권사 15곳에 2024년 유망 투자처를 묻자 모두 1순위로 ‘반도체’를 꼽았다. 당시 전문가들은 “메모리 반도체의 고정거래가격이 반등하기 시작했다”며 2024년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 규모가 전년보다 70%가량 커질 거라고 내다봤다. 반도체 업황이 살아나면서 주식시장도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었다.
2개월이 흐른 지금도 주식 전문가들은 반도체를 올해의 매력적인 투자 영역으로 추천한다. 다만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중국 스마트폰 재고 증가와 최근 시장금리 재상승 등의 악재가 주식시장에서 반도체 업종에 하방 압력을 가하고 있어서다. 당분간 보수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 나온다.
◇ 코스피200 반도체 1월 수익률 -9.3%
12일 미래에셋증권에 따르면 올해 1월 한 달간 코스피200 반도체와 코스닥150 반도체는 각각 -9.3%, -7.7%로 시장 수익률을 밑돌았다. 반도체 업종 부진은 설 연휴 직전까지 이어졌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코스피 12개월 선행 영업이익 컨센서스(시장 전망치 평균)는 지난 일주일 동안 0.91% 낮아졌다. 대신증권은 “삼성전자(-3.3%) 등 반도체가 가장 높은 하향 기여도를 기록했다”고 분석했다.
김영건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작년 11월 이후 연초까지 형성됐던 반도체 업종 전반에 대한 기대감이 이달 9일 삼성전자의 잠정실적 발표를 기점으로 하락 전환해 반등 트리거(방아쇠)를 찾지 못했다”며 “큰 틀에서는 2023년 4분기 실적 시즌이 임박하자 리스크를 회피하려는 수급적 영향이 있었다고 판단한다”고 했다.
칩 메이커가 밝힌 전략 방향성이 비관적으로 읽히면서 반도체주 부진으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있다. 김 연구원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컨퍼런스 콜에서 보수적인 공급 기조를 내비쳤다”며 “수요 회복 기대가 지배적인 지금과 같은 국면에서는 상승 모멘텀(동력)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 쌓여가는 中 스마트폰 재고
불안한 분위기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송명섭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작년 12월 중국의 스마트폰 출하량은 2680만대”라며 “실제 판매량보다 출하량이 많은 추세가 이어지면서 중국 시장 내 스마트폰 재고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있다. 송 연구원은 “2024년 1분기 춘절(중국 설) 판매가 여전히 부진할 경우 2분기 이후로는 재고 관리에 따른 메모리 반도체 주문이 축소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그간 한국 반도체 주가는 중국 정보기술(IT) 수요 증감률(전년 대비)과 동행하는 경향이 강했다. 또 중국 IT 수요 증감률은 중국의 경기선행지수 증감률과 비슷하게 움직인다. 문제는 중국 경기선행지수 증감률이 20개월간 상승하다가 작년 12월 하락 전환했다는 점이다.
또 반도체 주가와 동행해온 글로벌 유동성도 최근 시장금리가 재상승하면서 위축했다. 송 연구원은 “글로벌 유동성 급증세가 둔화하면 반도체 주가도 약세를 보이고, 올해 2분기 IT·반도체 수요 강도 역시 글로벌 유동성 증감률과의 6개월 선후행 관계를 고려할 때 소폭 둔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 “삼성전자 주가, 단기 조정 거칠 것”
증권가 전문가들은 이런 여건을 근거로 설 연휴 이후로도 당분간은 반도체 투자 시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김영건 연구원은 “메모리 가격 상승기에는 상승의 가시성이 높아질수록 이를 선반영하는 경향이 강해진다”며 “1분기 선제적인 가격 상승으로 2분기 가격 상승 폭은 상대적으로 축소됐다”고 했다.
현재 주식시장은 2분기 메모리 가격 상승률 둔화 가능성을 반영하고 있다는 게 증권가 시각이다. 김 연구원은 “2분기 전후로 스마트폰 신제품 출시 효과가 종료되는 가운데 데이터센터의 메모리 재고 조정도 막바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며 “재고 조정의 끝이 보이면 3분기로 예정된 가격 상승 폭 확대 시점이 2분기로 당겨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하이투자증권은 반도체 대표주 삼성전자에 대해 당분간 보수적으로 접근할 것을 권고했다. 송명섭 연구원은 “경제 위기 직후 회복 1년 차에는 기저효과로 모든 경기·업황 증감률이 상승하고 반도체 주가도 오른다”며 “기저효과가 사라지는 회복 2년 차에는 경기·수요·업황의 본격적인 회복이 나타나야 반도체 주가가 상승을 지속할 수 있다”고 했다.
회복 2년 차의 경기·수요 강세 여부는 1년 차의 금리·재정 정책이 충분히 완화적인지 아닌지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송 연구원은 “연말·연초에 예상되는 경기선행지수의 하락 전환, 반도체 업체들의 1분기 감산 원복 가능성 등을 고려하면 이번 주가 상승 사이클은 단기 조정기를 거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전준범 기자(bbeom@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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