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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이슈 연금과 보험

손보사와 대형 보험 대리점의 ‘이상한 관계’ 결말 [매경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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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수리·보험대리점 초대형사
수비리 부풀려 부당 청구해도
‘판매 줄까’ 눈치보던 손보사
미온대처로 제재와 여론 질타
韓보험사-대리점 균형관계 중요


매일경제

<사진출처=NHK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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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일본 3대 손해보험사 중 하나인 ‘손해보험재팬’의 시라카와 기이치 사장이 물러난 데 이어 이 회사의 지주사인 ‘솜포(손보의 일본식 발음) 홀딩스’의 사쿠라다 겐고 회장 겸 최고경영자가 오는 3월 말 물러나기로 했다. 대형 금융사의 수뇌부가 동반 퇴진하는 것은 경영의 안정성을 중시하는 일본에서 흔치 않은 일이다. 더군다가 최근에는 일본 금융청으로부터 내부 통제와 거래 관행 등을 이유로 업무개선명령까지 받았고 손보업의 신뢰를 떨어트렸다는 따가운 시선도 받고 있다.

연간 수입보험료가 4조5000억엔에 달하는 금융그룹에서 어떤 일이 벌어져 이런 사태를 맞았을까.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매출을 지나치게 중시해 거대 보험대리점의 눈치를 보며 불합리한 거래 관행을 만들었던 것이 소비자 이익을 경시하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게 일본 내 시각이다.

구체적으로는 이렇다. 일본 최대 중고차 업체인 빅모터. 중고차 판매뿐 아리나 차 수리업, 보험대리점 등까지 겸하고 있고 빠른 성장세로 큰 주목을 받았던 업체다. 2022년 6월 빅모터가 수리를 의뢰한 차량에 일부러 손상을 내는 방식 등으로 비용을 부풀려 보험사에 부당 청구를 해왔다는 내부 고발이 나왔고 이에 빅3 손보사는 빅모터에 대한 사고 수리차 소개 업무를 중지했다. 하지만 내부 조사 결과 문제가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한 달 후 손보재팬만 빅모터와의 업무를 재개한다. 매출을 위해 초대형 대리점과의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명분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빅모터의 영업 관행은 작년에 사회적 문제로 확대됐다. 보험사기 피해자로 보였던 손보재팬이 사고 수리차를 소개하는 것에 맞춰 빅모터가 모집한 자동차손해배상책임보험 계약을 할당받았다는 것도 드러나며 ‘피해자가 아닐 수 있다’는 시각이 커졌다. 더군다나 손보재팬은 2016년부터 빅모터의 수리공장에 대해서는 ‘수리비 심사’를 간소화하는 조치까지 도입해주기도 했는데, 이게 수리비 부당 청구의 배경에 있었다는 얘기도 나왔다. 결국 일본 금융청이 작년 9월 현장조사에 착수해 손보재팬의 경영진이 물러나고 손보업계의 신뢰도가 하락하는 결말을 맞았다.

이 사건의 근본적 원인은 무엇일까. 일본에서는 매출에 집착해 온 보험사가 판매에 큰 영향을 미치는 힘센 대리점과 불합리한 거래 관행을 유지해 온 것이 배경에 있다고 해석한다. 매출을 높이려다 보니 거대해진 보험대리점의 눈치를 보며 끌려다니게 됐고 ‘관계의 균형’이 무너져 결과적으로 소비자의 이익이 침해됐다는 해석이다. ‘계약자뿐 아니라 보험대리점도 고객’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게 이런 상황을 보여주기도 한다.

사회구조나 경영환경 등을 감안할 때 일본 사례는 우리의 반면교사가 될 때가 적지 않고 손보재팬과 빅모터의 관계도 그런 연장선상에 있어 보인다. 절판 마케팅을 비롯해 시장 점유율을 둘러싼 과열경쟁에서 볼 수 있듯이 매출을 강조하는 보험사가 한국에 없는 것도 아니고, 법인보험대리점(GA)도 거대화돼 영향력이 커졌다. GA 소속 설계사가 전체의 60%를 넘었고 3000명 이상 소속된 가진 매머드급도 18곳 정도에 달한다. GA에서의 상품 판매가 매출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으니 보험사에서는 ‘GA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말이 나온 지도 꽤 됐다. 일본 시장 환경과 한국이 크게 다르지 않은 셈이다.

GA는 판매 인력 유치를 위한 과열경쟁이나 내부 통제 등으로 지적을 받기도 했지만 여러 회사 상품을 비교 계약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며 소비자 편익에 기여도 해 왔다. 일본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향후 과제 중 하나는 보험사와 GA가 더욱 건전하고 균형 잡힌 협력·견제의 관계를 구축하는 게 되지 않을까 싶다. 협력·견제의 균형이 무너지면 한국에서도 일본처럼 보험업의 신뢰를 떨어트리는 사건이 일어날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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