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강의 중 ‘위안부는 자발적 매춘’이라고 발언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류석춘 전 연세대 교수가 지난 24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서 1심 선고 공판을 마치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이날 서울서부지법은 류 전 교수의 발언을 허위사실을 적시한 명예훼손이라고 보고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성동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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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일본군 위안부는 매춘”이라는 류석춘 전 연세대 교수의 발언이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을 두고 ‘법원의 이번 판단이 과거사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를 확산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류 전 교수는 31일 위안부 피해자 정기 수요시위 앞 맞불집회를 찾아 “한몫 했다는 보람이 있다”고 했다.
역사적 사실이라 처벌할 수 없다?
류 전 교수는 2019년 9월 발전사회학 과목에서 “지금 매춘 사업이 있지 않냐. (위안부는) 그거랑 비슷한 거다. 살기가 어려워서 매춘업에 들어가게 된다”면서 “직접적인 가해자가 일본이 아니라니까”라고 말한 혐의(허위사실 적시로 인한 명예훼손)로 기소됐다.
서울서부지법 형사4단독(재판장 정금영)은 지난 24일 1심 판결에서 류 전 교수 발언이 부적절하다면서도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역사적 사실은 “분명한 윤곽과 형태를 지닌 고정적인 사실이 아니”고 “재구성되는 사실”이라서 형사 처벌 대상이 되는지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명예훼손이 성립하려면 구체적이고 증명 가능한 사실관계에 대한 진술이 있어야 하는데, 역사적 사실은 고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수요 시위 때마다 엄청난 혐오를 쏟아내는 사람들의 발언이 한국 사회에서 허용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고 판결을 비판했다. 김 교수는 “일본에서 일본군 위안부 관련 판결이 4건 있었는데 모두 피해 사실이 인정됐고 한국 법원에서도 마찬가지”라며 “법원이 이미 법적 판단을 내린 ‘법적 사실’을 고정되지 않은 ‘역사적 사실’이라 무죄 판결을 한 것은 모순”이라고 했다.
31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인근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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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판결로 과거사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가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경희 정의기억연대 사무총장은 “당장 오늘 류 전 교수가 집회를 열고 ‘사법부가 내 주장을 정당하다고 인정했다’고 말했다”면서 “수요시위 현장에서 나오는 혐오 목소리가 커졌다”고 했다. 류 전 교수는 이날 수요집회 앞 맞불집회 연단에 올라 “저 맞은 편의 초라한 수요시위를 보면서 이 과정에서 한몫했다는 보람이 있다”고 했다.
양조훈 전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은 “현대사 문제는 역사 왜곡 발언으로 인한 피해자들이 많아 사실 중심으로 접근해야 한다”면서 “당사자와 유가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표현을 학문의 자유라고 재판부가 너무 쉽게 접근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이어 “4·3사건 배경에 북한의 지령이 있었다는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의 발언에 대해 소송 중”이라며 “(이번) 판결이 사회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법원이 깊은 고민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피해자 특정됐는데 ‘추상성’ 논리는 무리”
이번 재판부 논리에 허점이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재판부는 일본군 위안부 규모가 3만~40만명으로 추산된다며 “위안부를 구성원 개개인이 특정될 수 있는 소규모 집단으로 정의하기는 어렵고, 균일한 특성이 있는 집단이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류 전 교수의 발언도 피해자 개개인에 대한 구체적인 발언이 아니므로 특정성이 성립하지 않아 죄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한국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가 260여명 정도 된다”면서 “등록된 이들이 있고 생존자도 특정된 상황에서 특정성이 없다고 본 것은 무리한 판단”이라고 했다. 전다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변호사는 “검사가 사건 도중에 확인된 피해자를 특정했다”면서 “법원도 똑같은 사람들을 원고로 해서 여러 번 판결해놓고 추상성 논리를 펴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지난해 11월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유족의 일본 정부 상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 2심 선고 기일에서 이용수 할머니가 법원의 1심 각하 취소 판결을 받은 뒤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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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전 교수가 역사학자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재판부는 류 전 교수의 발언이 “시대상을 정의하는 것과 같이 연구자 개인의 종합적 해석이나 평가, 학문적 주장”이라며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고 봤다.
이에 대해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류 전 교수는 강의실 내에서 학문적 연구결과를 강의한 게 아니다”라면서 “류 전 교수가 사회학 중에서 젠더사회학을 연구해서 관련된 내용을 연구한 것도 아닌데, 느닷없이 위안부가 매춘이라고 말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강의내용과 관계없이 자기 편견을 얘기한 것을 학문에 대한 표현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한 사무총장은 “한국과 일본의 정치사회 지형이 굉장히 극우화되고 있다”면서 “사법부와 정치권이 이런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는 형국”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사법부가 역사 문제에 대한 혐오범죄에 대해 다시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이홍근 기자 redroot@kyunghyang.com, 오동욱 기자 5d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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