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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 (화)

이슈 국회의원 이모저모

노조에 끌려다닌 野 … 80만 中企 '졸속입법' 희생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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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윤재옥 원내대표, 임이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간사를 비롯한 국민의힘 의원들이 25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중대재해법 적용 유예를 호소하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있다. 한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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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유예하는 법안이 25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했다. 여야가 각각 지지층의 여론에만 기대며 유예 연장안 논의에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다가 최악의 상황을 피하지 못한 것이다. 여야는 합의 실패에 이르자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촌극'을 연출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년간 법 시행 준비를 하지 않은 정부의 공식 사과, 향후 2년간 구체적인 재해 예방 계획과 예산 지원 방안, 2년 추가 유예 후 법을 반드시 시행한다는 정부·경제단체의 공개 약속 등을 '3대 조건'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협의 막판에는 '산업안전보건청(산안청)' 설치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결국 여야가 이 문제를 두고 서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으면서 협상이 결렬됐다.

국민의힘은 전날 '25인이나 3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만 1년간 유예 기간을 연장하자'는 타협안까지 제시했으나 민주당은 산안청 설치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사태는 중대재해처벌법 도입 때부터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2018년 발전소 작업 중 숨진 김용균 씨 사고 이후 논의가 시작됐다. 정의당이 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제출했고, 결국 2021년 초 제정됐다.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이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다 하지 못했다면 처벌(사망의 경우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을 받고, 민법상 손해액의 최대 5배 범위에서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입법에 급급하다 보니 처음부터 산재 사망자의 80%를 차지하는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적용 유예를 전제로 2022년 초 시행됐고, 노동계는 '누더기 법'이라고 비판했다. 이번에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은 국회 앞에서 시위를 하면서 유예기간 연장 협상에 나선 민주당을 강하게 압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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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 결렬의 원인으로 떠오른 산안청 설치에 대해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유예 시한이 임박해 무리한 요구를 추가로 들고나왔다"고 주장했고, 민주당은 "유예 얘기가 나온 초창기부터 제시했던 조건이었다"며 서로 책임을 떠넘겼다.

이날 오전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대규모 사업장과 소규모 사업장 간) 격차를 고려하지 않고, 그 격차를 해소하고 보완하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일률적으로 소규모 사업장까지 적용하는 것은 정치가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이 법률을 그대로 적용할 경우 소상공인, 그리고 거기에 고용된 서민들에게 결과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둔 영세 중소기업인들은 불안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소규모 사출 업체를 운영하는 A씨는 "전기차 확대로 일감이 줄면서 부가가치세를 낼 돈을 못 구해 아내가 지인한테 돈을 빌리러 나간 상황"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가죽가공 업체를 경영하는 B씨는 "결국 안전을 관리할 인력을 확보하거나 설비를 개선·보강해야 하는데 모두 비용이 든다"며 "돈이 있는데 아깝다는 뜻이 아니라 진짜 사람을 새로 고용하고 설비를 고칠 돈이 없다"고 호소했다.

이들은 정부에 중대재해처벌법을 대비하기 위한 '가이드라인'과 '자금'을 지원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대기업과 중견기업에 법이 적용된 지난 3년간 영세기업들은 여전히 컨설팅조차 받아보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이들이 경기 악화로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라 설비 등에 투자하기 위한 자금을 정부가 지원해줘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주물 공장을 운영하는 C씨는 "왜 야당 국회의원들은 대기업 노동자와 시민단체 얘기만 듣고 영세중기인들을 뻔뻔한 사람들로 치부하나"라며 "직접 영세중소기업 현장을 찾아 현실을 보고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여야 간 협상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일각에서는 다음 본회의 예정일인 오는 2월 1일 이전에 전격적인 합의 가능성도 제기한다. 중소기업은 물론 자영업자들까지 불안감이 커지면서 야당도 총선 표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날 민주당 의원총회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 2년 유예를 1년으로 단축해 수용하자는 절충안도 제시된 것으로 전해졌다.

최혜영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의원총회를 마친 후 "산안청 설립을 위한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며 "계속 법제사법위원회와 환경노동위원회 의원들과 원내대표가 논의를 이어갈 것"이라고 전했다. 결국 민주당은 의원총회에서 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한 결정을 지도부에 일임하기로 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민주당에서 2월 1일까지 논의해보자는 말이 나온다는 얘기가 있다'는 질문에 "중소기업들이 절박하게 호소하는데 왜 2월 1일까지 미루느냐. 미룰 이유가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전경운 기자 / 김동은 기자 / 박자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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