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몸을 향한 타인의 시선이나 압박은 모두에게 똑같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지난해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2022년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를 보면 성인 남성의 비만율은 47.7%인 반면 여성은 25.7%였다. 비만율은 체중(㎏)을 신장(m)의 제곱으로 나눈 체질량지수(BMI·㎏/㎡)가 25를 넘는 사람의 비율이다. 남성 중에선 과체중·비만·고도비만에 해당하는 사람이 100명 중 47.7명이고, 여성 중에선 25.7명이라는 뜻이다. 비만 여성에 비해 비만 남성이 2배 가까이 많은 것이다.
연령대별로 보면 성별에 따른 차이는 더욱 도드라진다. 20대 남성 비만율은 42.8%인데 30대는 55.7%로 치솟는다. 여성은 20대 비만율이 18.2%이고, 30대도 21.8%에 그친다. 한국인 전체 평균 비만율인 37.2%를 훨씬 밑돈다.
일러스트 작가 황인후씨가 지난 10일 서울 관악구 자택 인근 골목을 걷고 있다. 그는 “좁디좁은 평균에 나를 끼워넣고 맞추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아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고 설명했다. 조태형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젊은 여성의 비만율이 유독 낮은 이유는 명확하다. ‘좋은 몸’에 관한 사회적 기준이 젊은 여성일수록 더 엄격하고 강압적으로 작용한다는 뜻이다. “살찌면 매력 없다” “조금만 빼면 예쁠 텐데” 같은 간섭과 품평은 대부분 여성, 특히 젊은 여성을 겨냥한다.
몸무게가 남들보다 더 나갈 뿐인데 게으르다고 손가락질하는 사회, ‘표준 체중’보다 적은 ‘미용 체중’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회, 기준에서 벗어난 몸은 못난 것 취급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너나없이 특정한 틀에 자신을 맞추려고 분투할 수밖에 없다.
‘보디 포지티브’, 몸 긍정이 세계적인 화두가 됐지만 여전히 타인의 몸에 대한 평가와 판단을 서슴지 않는 사람들에게 살찐 몸들이 묻는다. 어째서 우리의 몸은 숫자로만 평가되는가.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것은 누구인가.
김혜미씨(26)에게 몸과 관련된 기억은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등학교 때 하던 태권도를 그만둔 게 계기였다. 갑자기 뚱뚱해진 몸을 쳐다보기조차 싫었다. 몸무게도 재지 않았고, 바지 사이즈가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고 지냈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교복을 사러 매장에 갔을 때 가게 주인은 이렇게 말했다. “이 치수는 없어요.”
시 외곽에 있는 창고형 매장까지 가서 겨우 맞는 교복 치마를 찾아낸 날, 집에 돌아오자마자 펑펑 울었다. “수백명이 입는 똑같은 교복인데 딱 내 사이즈만 없다면, 내 몸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이건 내 잘못이라고 인식할 수밖에 없었죠.”
플러스 사이즈 모델인 김혜미씨가 지난 5일 경기 수원의 한 스튜디오에서 거울을 보며 미소 짓고 있다. 키 171㎝, 몸무게 72㎏인 김씨는 “마른 사람만 모델을 한다는 인식이 많고 기준이 각박하다 보니 나는 항상 통통하고 살찐 몸이었다”면서 “모델로 일하면서 통통하고 뚱뚱하다고 움츠러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조태형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사람들이 살찐 몸을 질책할 때 가장 먼저 이유로 드는 건 건강이다. 물론 비만은 각종 합병증의 원인이 되고 심각해지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몸무게가 늘어 체내에 지방이 증가하면 당뇨나 고혈압, 지방간 같은 대사성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 생활도 불편하다. 온몸에 살이 붙으면 팔다리의 가동 범위가 좁아져 신체 구석구석까지 손이 닿지 않는다. 양말을 신거나 발톱을 자르는 간단한 일이 어려워지기도 한다. 한쪽 발로 무게를 버티는 게 힘들기 때문에 계단을 오르내리는 게 두려워진다.
병문안을 갔는데 뜬금없이 다른 환자의 보호자가 ‘내 친구가 효과를 본 다이어트 비법’을 알려준다며 나선 일, 지인이 일상적인 대화를 하다가 “슬슬 살 뺄 때 되지 않았느냐”고 툭 던진 일. 살찐 몸이기에 겪어야 하는 폭력이다. 몸을 아래위로 훑어보는 것, ‘살쪘는데 왜 그런 옷을 입느냐’고 비난하는 것 같은 노골적인 차별이 있는가 하면 언뜻 칭찬처럼 들리는 미세한 차별도 있다.
‘작은비버’ 필명으로 활동 중인 황인후씨가 자택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며 자신의 옷장을 살펴보고 있다. 조태형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김혜미씨는 아르바이트 동료에게 “네 덕분에 뚱뚱한 사람에 대한 편견이 깨졌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뚱뚱해서 둔할 줄 알았는데, 너는 빠릿빠릿하게 일을 잘한다’고 하더라고요. 처음엔 성격이 좋다, 일을 잘한다는 칭찬인 줄 알았는데 곱씹을수록 의아하더라고요. 그제야 살찐 몸을 바라보는 시선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됐죠.”
마른 몸에 대한 집착은 또래와의 비교가 심한 청소년기 여성에게서 특히 크게 작용한다. 미디어에서 보게 되는 마른 몸뿐 아니라 주위 친구와도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스스로를 검열한다. 김씨는 “뚱뚱한 몸이지만 크게 불편한 것 없이 잘 살아왔다”면서도 “주위에서 하는 말 때문에 상처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체육 시간이 제일 싫었어요. 뛰면서 살이 흔들릴 때마다 모두가 쳐다보는 것 같고, 단체 티셔츠를 맞추면 저만 사이즈가 안 맞아서 꽉 끼었거든요.” 느닷없이 “사람들은 뚱뚱한 여자를 안 좋아한다. 20대가 제일 예쁠 때인데 그걸 못 누리는 게 억울하지 않냐”면서 살을 빼라던 선생님도 있었다.
사람들이 살찐 몸에 대해 쉽게 말을 내뱉는 건 마음만 먹으면 자신의 몸을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한비만학회가 지난해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비만인 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 질문에 ‘게을러 보인다’, ‘의지력과 자제력이 부족해 보인다’고 응답한 사람이 각각 58%, 56%였다. 살찐 사람은 ‘노력이 부족하다’는 편견이 반영된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몸은 개인의 의지보다 환경의 영향을 훨씬 많이 받는다. 타고난 유전자의 영향도 있고, 소득 격차나 생활환경, 습관에 따른 편차도 크다. 특히 소득 수준별로 살폈을 때 여성은 소득이 낮을수록 비만율이 높은 경향이 있다. 2017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펴낸 비만백서를 보면 여성의 비만율(체질량지수 25 이상~30 미만)은 건강보험료 1분위에서 21.8%로 가장 높고, 20분위에서 15.7%로 가장 낮았다. 건강보험료 1분위에 가까울수록 소득과 재산이 적고, 20분위에 가까울수록 많다는 뜻이다.
안씨는 “헬스는 물론 원푸드 다이어트, 1일 1식까지 안 해본 게 없다”면서 “하지만 몸이 내 마음대로 될 것 같으면 누가 걱정하겠느냐”고 말했다. “몸의 구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엔 유전자나 생활습관의 문제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이 사회에서 20~30대 여성이 몸을 돌볼 시간과 여유가 있는지 의문이에요. 누구나 좋은 음식을 잘 챙겨 먹으면서 건강하게 살고 싶지만, 그럴 돈도 시간도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잖아요.”
일러스트 작가인 황인후씨가 자택에서 웹툰 일러스트를 그리고 있다. 그는 “그림 그리는 것, 말하고 생각하는 것, 모두 나를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몸은 몸일뿐이다”라고 강조했다. 조태형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황인후씨는 가정환경이 자신의 몸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그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여파로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초등학생 때 친척 집에 몇년간 얹혀살아야 했다. 그때 은근한 눈치와 따돌림을 받으면서 식습관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했다. “스파게티가 먹고 싶은데 아무도 해줄 것 같지 않아서 스파게티 컵라면을 혼자 몰래 먹다가 들켰어요. 그런데 그걸 본 친척이 웃더니 다른 아이들에게만 진짜 스파게티를 해주더라고요. 그때부터 음식에 대한 집착이 커졌고, 살이 계속 찌면서 몸 돌보기를 포기하게 된 것 같아요.”
한번 살이 찌고 나니 몸을 관리하는 게 쉽지 않았다. 황씨는 “어렸을 때부터 몸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으니까 운동을 접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면서 “수영이나 필라테스는 모두 몸 좋은 사람들이 라인이 드러나는 옷을 입고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아무리 스스로 몸을 아끼고 사랑해도, 둘러싼 모든 사람이 “네 몸은 문제야”라고 말할 때 나를 긍정하긴 어렵다. 그래서 이들이 내 몸과 잘 살아간다는 건 매분매초 편견을 깨부수기 위해 싸운다는 의미다. 그저 개인의 ‘노오력’이 부족해 그렇다는 낙인을 벗어던진다는 의미다. 안씨는 “사회의 기준에 들지 못한 내 몸이 잘못이라고 오랫동안 자책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몸을 옥죄는 기준 자체가 이상하다는 걸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살찐 여성의 몸은 하면 안 되는 게 너무 많아요. 꾸미면 꾸몄다고, 반대로 편하게 다니면 살쪘는데 꾸미지도 않는다고 말하죠. 기준을 통일하지도 않고 이 말 저 말 다 하는 거예요. 그래서 하고 싶은 대로 하니까 오히려 편해졌어요. 내가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겠다고 거창하게 말하기보다, 살찐 몸으로 존재하는 것 자체가 다른 누군가에겐 ‘저것도 괜찮나보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될 테니까요.”
황씨는 몸을 가리려고 까만색 긴소매 옷만 입다가 처음으로 밝은 보라색 옷을 추천받아 입었을 때 새로운 기쁨을 발견했다. ‘이게 되네?’라는 기쁨이었다. 좋아하는 옷을 입고 노래를 들으면서 걸을 때의 즐거움을 그제야 알게 됐다. 그는 “스스로 자존감 낮은 발언을 할 때마다, 주위에서 ‘네 몸이 너의 전부가 아니다’라고 해줬다”고 말했다. “그림 그리고, 대화하고, 생각하는 모든 게 모여 내가 된다, 몸은 나를 이루는 요소 중 하나라고 하는 얘기를 듣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살찐 몸도 그냥 몸일 뿐이구나, 딱히 상관없구나.”
김혜미씨가 자신의 몸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위는 눈이다. 사진은 김씨의 눈동자에 자신의 모습이 비치고 있는 모습. 조태형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김혜미씨는 현재 키 171㎝, 몸무게 72㎏의 플러스 사이즈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살찐 자신의 몸이 보기도 싫었던 예전에 비하면 엄청난 변화다. 그는 “매일 몸을 마주 보면서 오히려 내 몸이 특별히 모난 것도, 이상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운동도 해보고, 좋아하는 옷도 찾아 입고, 나를 위한 시간을 많이 가지고 장점이 뭔지를 찾아가면서 더 긍정적으로 바뀐 것 같아요. 스스로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면 정말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지잖아요. 몸도 마찬가지예요.”
내 몸은 매일 예쁠 수도, 반대로 매일 미울 수도 없다. 손가락질당하고 비난받을 때마다 바꾸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자신의 몸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 자체로 아끼게 됐다. 지금 이들에게 몸은 그가 사는 집이자, 주변인과 관계 맺는 통로이자, 그 자체로 ‘나’라는 의미가 있다.
‘작은비버’ 필명으로 활동 중인 황인후씨가 10일 자택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마친 후 손을 펼쳐보이고 있다. 황씨는 신체 중 가장 자신 있는 부분으로 손을 꼽았다. 조태형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김씨는 요즘 ‘굳이’라는 말을 자주 떠올린다고 했다. “입고 싶은 옷인데 맞는 치수가 없을 땐 마른 몸을 가져야 하나 싶기도 해요. 하지만 굳이? 지금 내 몸으로 사는 생활이 너무 즐겁고 좋거든요. 옷 하나 때문이라면 내가 바뀔 이유가 있나요? 오히려 이 몸에도 맞는 옷을 만들어주는 사회가 필요한 것 아닐까요.”
▼ 김정화 기자 clean@khan.kr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진보? 보수? 당신의 정치성향을 테스트해 보세요!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