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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대한민국 저출산 문제

“韓 저출산 예산, 유럽 절반 수준… 육아지원 미래투자 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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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율, 다시 ‘1.0대’로]

‘日 저출산-가족문제 권위자’ 야마구치 도쿄대 교수

동아일보

일본의 가족 문제 전문가인 야마구치 신타로 도쿄대 경제학부 교수가 12일 연구실에서 한국과 일본의 저출산 해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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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저출산 예산 충분하지 못해”

“한국이 15년 동안 280조 원을 지원했으니 금액 자체가 작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한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련 예산의 비중은 겨우 1%대에 그친다.” 일본의 저출산 및 가족 문제 권위자인 야마구치 신타로(山口慎太郎·48) 도쿄대 경제학부 교수가 12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의 저출산 대응이 부족하다고 일침을 가했다. 2020년 기준 한국의 가족지원 예산은 GDP 대비 1.6%로, OECD 평균(2.1%)에 못 미친다. 일본(2.0%)보다도 낮다. 야마구치 교수는 “아이를 낳으면 사회 전체가 키워 준다고 느낄 만큼 정부가 최대치를 지원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

“정부가 육아를 적극 지원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건, 시간이 걸린다 해도 비용 대비 효과를 따져 보면 정말 괜찮은 투자입니다.”

야마구치 신타로(山口慎太郎·48) 도쿄대 경제학부 교수는 12일 동아일보와 만난 자리에서 뜬금없이 “결혼 전에도 아이를 갖고 싶었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딱히 계획을 세워 가진 건 아니다”고 답하자 야마구치 교수는 웃으며 “나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첫아이를 갖기 전까진 자녀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아이가 가족 모든 것의 중심이 됐죠. 이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행복을 매일 느끼고 있습니다. 이걸 경제적인 문제로 포기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울까요?”

야마구치 교수는 최근 일본에서 저출산, 육아 관련 연구로 크게 주목받는 경제학자다. 그의 연구실 벽에는 아이의 천진난만한 미소가 담긴 사진들이 주르륵 걸려 있다. 소셜미디어에 아기 사진을 올려놓고 “초등학생 아들에게 게임 가르쳐주는 걸 좋아한다”고 자신을 소개할 정도로 아이에 대한 애정이 진하다. 그는 “당장 효과를 눈에 볼 수 없어 체감하기 어렵겠지만, 육아 지원은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투자”라고 거듭 강조했다.

―한국과 일본 모두 저출산 문제로 신음하고 있다.

“선진국 중에서도 특히 두 나라 출산율이 매우 낮다.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인 합계출산율을 보면 2022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한국은 0.78명으로 꼴찌, 일본은 1.26명으로 35위다.) 무엇보다 아이를 키우면 더 삶이 힘들어진다는 게 실제로 드러나니 출산율 저하가 가속화되는 게 아닐까. 낮은 합계출산율 숫자 자체보다도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더 문제다.”

―일본에서도 육아가 힘들다는 인식이 강한가.

“아이로 인해 얻는 장점은 표면적으로 설명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안 좋은 점은 바로 드러나지 않나. 돈도 많이 들고 시간도 뺏기고 일에 집중하기도 어렵고…. 특히 일본에는 사회적으로 좋은 건 밖으로 자랑하길 꺼리는 문화가 있다. 육아는 괴롭다는 말은 서로 하면서도, 아이 덕분에 행복하다는 얘기는 남에게 잘 하지 않는다.”

―육아는 옛날이 더 힘들지 않았을까.


“한일 양국 모두 20세기 중·후반 베이비붐을 겪었다. 그때는 앞으로 세상이 좋아질 거라는 희망이 있었다. 사실 지금도 (미래가 어둡다는 주장에) 근거가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지금보다 나아질 거란 전망이 보이지 않으니 청년들이 선뜻 아이를 갖겠다고 결심하지 못하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으니, 결혼이 늦어지고 아예 연애도 하지 않으려 한다.”

―실제로 육아는 고충이 많이 따른다.

“나 역시 아이를 갖기 전까지 자식을 낳겠단 생각이 없었다. 물론 어릴 때부터 꼭 아이를 갖겠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난 아이를 좋아하지 않았고 깊이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경험에 비춰보면 아이를 가진 내가 (아이가 없던) 과거의 나를 설득할 수 없을 것 같긴 하다. 아이를 갖지 않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긴 하다.”

야마구치 교수는 이런 이유로 “핵가족화로 아이를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청년들에게 육아 체험의 기회를 주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그는 “요즘 청년들은 아기를 접할 기회가 드물어 아기가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느낌을 이해하기 어렵다”며 “그런 상황에서 육아가 어렵다는 얘기만 들으니 육아를 할 수 있다는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일본의 몇몇 비정부기구(NGO) 단체는 중고생이나 대학생들을 육아 도우미로 활용한다고 한다.

―한국 정부는 15년간 저출산 해결에 280조 원을 썼다.

“큰돈이긴 하다. 하지만 한국의 경제 규모나 문제의 심각성을 고려하면 그렇게 많이 쓴 것도 아니다. 국제적으로 비교해 보면 육아 지원에 인색한 일본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1%대 후반인데, 한국은 1%대 중반이다. 유럽 국가들은 3%대 중후반인 곳도 많다. 유럽 등과 비교하면 한국이 결코 저출산 대책에 많은 예산을 쓴다고 할 수 없다.”

보건복지부와 OECD 등에 따르면 한국의 가족 지원 예산은 2020년 기준 GDP 대비 1.6%로 스웨덴(3.4%)의 절반도 안 된다. 특히 아동수당, 육아휴직 급여 등 현금 지급 예산으로만 따지면 한국은 GDP 대비 0.5%로 OECD 회원국 평균(1.1%)의 45%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합계출산율이 높은 선진국 수준으로 정부의 가족복지 관련 지출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 합계출산율(2022년 0.78명)은 OECD 회원국 중 가족 지원 예산이 가장 많은 스웨덴(1.52명)의 절반가량이다.

2022년 기준 한국의 저출산 예산은 51조7000억 원. 이 중 46%(23조 원)가 주택 구입 및 전세자금 융자, 다가구주택 매입 임대 등 주거 지원 분야에 쓰였다. ‘집이 없어 아이를 못 낳는다’는 여론과 최근 집값 및 전세금 급등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아이를 낳고 키우는 데 돌아갈 직접적인 지원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저출산이 심각한데 왜 정부 지출은 적을까.

“일본은 고령화 진행 영향이 크다. 정부 예산을 배정할 때 육아보다 연금, 의료 등 은퇴한 사람들에게 써야 한다는 압력이 있다. 물론 저출산 해결과 고령화 대응은 모두 중요한 과제다. 다만 현실적으로 젊은층보다 투표 참여율이 높은 고령층의 정치적 영향력이 큰 탓도 있다. 그러다 보니 일본 청년들은 세금, 사회보험료로 돈은 돈대로 내면서 아무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불만이 크다. 이런 결과가 출산율 저하로 이어졌다. 이렇게 되면 젊은 세대들이 노인이 되는 미래의 일본 사회는 어떻게 될까 하는 불안이 크다.”

―현금 지원을 늘리면 저출산이 해결될까.


“(일본은 현재 3세 미만에게는 매달 1만5000엔, 3세부터 중학생까지는 매달 1만 엔의 아동수당을 지급한다.) 한국과 일본 모두 마찬가지일 텐데, 현금을 직접 주면 그 돈은 결국 사교육비로 쓰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육아의 어려움은 오히려 가중될 수 있다. 부모에게 직접 현금을 주는 것보다 급식비나 수학여행비 등 각종 교육 제반 비용을 지원해 부모가 교육에 돈을 적게 써도 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에선 치열한 경쟁 탓에 키울 자신이 없다는 의견도 있다.

“한국의 입시 경쟁은 일본에서도 유명하다. 궁극적으로 사회적 격차가 크다는 게 문제다. 어떤 대학에 입학하느냐에 따라 경제적, 사회적 격차가 커져 버리니 입시에 매달리는 게 아닐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일본이나 중국, 싱가포르 등 아시아 국가들은 비슷한 상황을 많이 겪고 있다. 이는 모두 저출산 현상으로 이어진다. 격차를 줄이고 소득 재분배가 있는 사회로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저출산 해결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도, 일본도 사회 전체가 아이를 키운다는 생각이 부족하다. 사회 전체적으로 육아를 지원해야 한다는 쪽으로 바뀌지 않는 한 저출산 문제는 해결하기 어렵다. 아이에게 부모는 가장 중요한 존재이지만, 부모가 모든 것을 해야 한다는 사회적 부담이 너무 크다. 조금만 부족하면 (사회적으로도, 스스로도) ‘부모로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다 보니 출산, 육아의 벽이 너무 높아졌다. ‘이렇게 힘든데 굳이 부모가 될 필요가 있을까’라는 발상이 퍼지면 아이를 갖지 못하는 사회가 된다.”

―최근 일본에선 ‘2100년까지 인구 8000만 명 유지’를 주요 내용으로 한 ‘인구비전 2100’ 정책이 나왔다.

“출산, 육아를 가로막는 여러 문제가 해소되면 합계출산율이 1.8명까지 갈 것이라는 ‘희망 출산율’이라는 개념이 있다. 문제를 해결해 출산율을 높이고 인구 감소 추세를 낮추자는 메시지를 사회적으로 제시했다는 의미가 있다. 출산율이 0.7명대인 한국은 보다 더 큰 위기감을 갖고 당장 뭔가 해야 할 필요성이 높지 않나. 인구가 줄어들면 지금의 사회 인프라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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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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