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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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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관리 왜 못했냐"…편견 시달리는 1형 당뇨 환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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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관리 왜 못했냐"…편견 시달리는 1형 당뇨 환자들



한눈에 봐도 연령대가 다양했습니다. 6살 아이부터 70대 어르신 모두 '치료를 개인에게만 맡기지 말라'고 적힌 피켓을 꼭 쥐고 있었습니다. 구호를 외치다 눈물을 터뜨렸고, 직접 옷을 올려 배에 붙은 인슐린 패치를 가리켰습니다.

어제(15일) 오전 세종시에서 열린 '1형 당뇨병 환우회 긴급 기자회견' 현장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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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1형 당뇨병 환우회 긴급 기자회견'에서 피켓을 들고 있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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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형 당뇨는 췌장의 베타세포가 파괴돼 몸이 인슐린을 전혀 분비하지 못하는 질환입니다. 평생 외부에서 인슐린을 주입해야 합니다. 식습관, 운동 부족, 유전 등으로 인슐린 작용에 문제가 생기는 '2형 당뇨'와는 다릅니다. 당뇨 환자 열 명 가운데 아홉 명은 2형 당뇨다 보니 1형 당뇨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아직 부족합니다.

그러다 최근 충남 태안에서 1형 당뇨를 앓는 어린 딸과 함께 부부가 숨진 채 발견되며, 그 어려움이 조금씩 알려지고 있습니다. 전국에 1형 당뇨 환자는 5만 7000명 정도로, 90% 이상은 성인입니다.

JTBC 취재진은 소아·청소년 및 성인 1형 당뇨 환자 또는 부모 10명을 인터뷰했습니다. 이들이 털어놓은 이야기에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1형 당뇨 환자들을 돕지 못하는지, 얼마나 잘못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그대로 담겨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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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당뇨 걸리는 맛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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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직장인 김소연 씨는 회사 동료들에게 아직 1형 당뇨라는 사실을 말하지 못했습니다. 잘못된 시선으로 바라볼 게 걱정됐기 때문입니다. 인슐린 주사는 화장실에서 몰래 맞습니다.

“회사에서 다 같이 아이스크림이라도 먹는 날에는 다들 장난스레 '이거 당뇨 걸리는 맛이네!'라고 농담을 하거든요. 속으로 굉장히 불편하죠. 당뇨에 대한 얘기가 나왔을 때 유전적이라거나 '갈 데까지 갔다'는 식의 말들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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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형 당뇨와 2형 당뇨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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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형 당뇨는 2형 당뇨와는 전혀 다르지만, 여전히 '당뇨는 비만 때문' 이란 편견을 가진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취업 준비를 할 때 면접에서 당뇨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주사를 맞아야 하지만 업무에 지장은 없다고요. 그런데 어린 나이에 몸 관리를 왜 그렇게 못 한 거냐고 되묻더라고요. 당뇨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결국 채용은 안 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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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애 음료수 많이 먹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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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살 아이가 어느 날부터 새벽에 30분마다 화장실을 갔습니다. 유치원에서도 소변을 참지 못해 바지를 몇 번이나 갈아입어야 했습니다. 계속 마실 것만 찾더니, 500mL 생수를 아이 혼자 한 자리에서 다 마셔버렸습니다. 황인혜 씨는 아이를 병원에 데려갔고, 1형 당뇨 진단을 받았습니다.

“아이가 아직 어리니까 '쟤(친구)는 주사 안 맞고 그냥 (먹고 싶은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좋겠다'라고 얘기해요. 그럴 때마다 아이에게 말해요. 사람마다 몸이 조금씩 다르니까, 눈이 안좋으면 안경을 쓰는 것처럼 우리는 주사를 맞는 거라고. 의사 선생님들이 더 좋은 거 개발하고 계시니까 엄마가 나오면 바로 해 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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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이가 배에 붙이고 있는 인슐린 주입 패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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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순간 아이의 혈당을 관리하는 황 씨에게 주변에선 잘못된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가 저혈당 때문에 사탕을 먹고 있으면 '쟤 저런 거 너무 많이 먹으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해요. '음료수 많이 먹더니 그럴 줄 알았다'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런 질병이 아니라고 계속 변명을 해야 하더라고요. “

1형 당뇨 환자들은 요양급여가 아닌 요양비를 지원받습니다. 환자가 연속혈당측정기와 같은 기기와 소모품을 구매하고 청구하면 현금으로 일부 환급받는 겁니다. 이렇게 건강보험 적용이 된 건 아직 만 5년도 안 됐습니다.

연속혈당측정기 사용 비율은 아직 10%밖에 안 되고, 인슐린 자동 주입기 사용 비율은 훨씬 낮습니다. 경제적으로 부담이라 포기하거나 관리 방법을 제대로 교육받지 못해 혼자 전전긍긍하는 환자가 그만큼 많다는 뜻입니다.

최근 1형 당뇨 환자들의 열악한 진료 현실이 알려지자 보건복지부는 19세 미만 소아·청소년 환자에 한해 기기 구매 비용의 본인 부담률을 30%에서 10%로 줄여주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황 씨는 마냥 반가워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저희가 지원해줄 수 있는 건 한정적이에요. 결국 모든 아이가 성인이 될 텐데, 본인의 생사에 필요한 것들은 경제적으로 큰 부담 없이 해낼 수 있는 환경이 됐으면 좋겠어요.”

황 씨는 아이의 당뇨 관리 비용으로 한 달에 30만원은 지출해야 합니다. 내분비대사내과 전문의가 있고 당뇨병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의료기관은 일부 상급의료기관뿐입니다. 그나마 황 씨가 아이를 데리고 다니던 대학병원의 유일한 소아 내분비내과 의사가 곧 병원을 그만두면서, 황 씨는 이제 더욱 먼 병원을 찾아다녀야 합니다.

“2월 초에 그만둔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다른 병원을 또 알아봐야 해요. 3개월에 한 번씩은 무조건 병원에 가야 하고, 여러 변수가 있어서 한 달 만에 가야 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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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간 시험 '목숨 걸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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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환자 목소희 씨는 2022년 11월에 1형 당뇨 진단을 받았습니다. 어렵고 생소한 병을 제대로 관리하기 위해 목 씨는 병원에서 알려준 내용을 성실히 따랐습니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건 아니었어요. 그래도 의료진 선생님들이 얼마만큼 놓으면 된다고 알려준 용량이 있어서 집에서 딱 그만큼 넣었는데, 밤마다 심하게 저혈당이 왔어요. 온몸이 마비된 적도 있고요. 무서워서 병원에 전화해도 인슐린을 늘리라고만 하고, 얼마나 늘려야 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렇게 한 달을 시달리던 목씨가 해답을 찾은 건, 온라인에서 만난 이름 모을 환우들 덕분이었습니다.

“너무 답답해서 오픈 채팅방에 글을 올렸어요. 고민 상담을 한 거죠. 거기에서 인슐린을 사용하는 방법이나,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꼭 필요한 정보를 그제야 알게 됐어요.”

목 씨는 하루 5번에서 6번 인슐린 주사를 놓습니다. 일상에서 수시로 혈당을 관리하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특히 요즘 같은 취업준비 시기엔 더욱 힘들다고 말합니다.

“제가 준비하고 있는 시험이 한 과목당 2시간 정도 걸려요. 그 시간에는 휴대폰을 제출하니까 혈당을 볼 수 없거든요. 저혈당이 오면 바로 생명이 위험하니까 차라리 제 몸을 고혈당 상태로 만들어요. 제가 몸이 조금 아프고 목이 뻐근하고 머리가 얼얼해도 일단 죽지는 않잖아요.”

1형 당뇨는 아직 완치가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 번 진단 받으면, 평생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합병증 없이 살기 위해선 제대로 된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환자들이 '연령대 상관없는 지원 확대'를 요구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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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무서운 말 "엄마, 배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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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살 아들이 1형 당뇨 진단을 받은 건 이제 막 한 달이 됐습니다. 엄마 서은영 씨는 퇴원하던 날을 '전쟁터에 내몰리는 느낌'으로 기억했습니다.

“가장 무서운 말이 아이가 배고프다고 할 때. 뭘 어떻게 먹여야 하고 주사를 얼마큼 놔줘야 할지 전혀 감을 못 잡으니까요. 퇴원 첫날은 병원 밥과 비슷하게 먹였는데 혈당이 뚝뚝 떨어졌어요. 그러면 또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 아이한테 주스나 사탕을 먹이는 거예요.”

서 씨는 하루하루 살얼음을 걷는다고 말합니다. 며칠 전엔 울면서 아이를 찾아 뛰어나가기도 했습니다.

“아이가 밖에서 1시간만 친구랑 놀고 싶다고 해요. (혈당 관리용) 스마트 워치도 채워주고 휴대폰도 갖고 있게 하는데, 그 날따라 아이 혈당이 뚝 떨어지는 게 보이는 거예요. 근데 전화를 안 받아서 울면서 밖으로 나가 찾았어요. 놀고 있던 아이를 발견하자마자 음식을 먹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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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들이 수시로 혈당을 확인하는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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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순간 아이의 혈당을 관리해야 하지만, 학교는 보내야 하므로 부모들 걱정이 큽니다. 학교보건법에 따르면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 보건교사는 1형 당뇨로 인해 생명이 위급한 학생에게 주사를 비롯한 응급처치를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일상에선 아이의 인슐린 투약을 보조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한국1형당뇨병환우회는 어제 기자회견에서 법을 고쳐 아이들이 안전하게 자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달라고 했습니다. 학교에서 보건 교사를 통한 인슐린 주사 지원을 받고, 교실에서 혈당 관리에 꼭 필요한 전자기기를 쓸 수 있게 해달라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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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된 '처방전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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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1형 당뇨 환자 김환희 씨는 동네 병·의원에서 인슐린을 처방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인슐린과 연속혈당측정기는 계속 필요하니까 구매에 필요한 처방전을 받으러 가는 거예요. 근데 처방을 조심스러워 해요. 환자가 직접 인슐린을 사용해야 하니까 저혈당에 빠지거나 심각한 경우가 발생하는 걸 원치 않는 거예요. 그래서 동네 의원에 가면 대학병원에 가라고 잘라 말해요.”

하지만 인슐린은 매일 사용해야 하고, 매번 대학병원까지 찾아갈 순 없었습니다. 김 씨는 결국 처방전에 필요한 내용을 직접 써두기로 했습니다. 어떤 약물이 필요하고, 어떤 측정기가 필요하고, 며칠 동안 얼마나 필요한지 최대한 상세히 적었습니다.

“사실은 매일 실생활에서 겪는 고충이나 어려움 같은 것들을 상담해서 좀 더 정확한 처방을 받고 싶어요. 하지만 그게 안 되니까 적어도 처방을 거부당하진 않으려 이렇게 써 놓는 거예요.”

김환희 씨는 1형 당뇨의 심각성을 나타낼 수 있게 병명을 '췌도부전증'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합니다. 2012년 간질의 병명이 '뇌전증'으로 바뀐 것처럼 말입니다.

“가장 많은 편견과 오해를 만들어내는 부분 중 하나가 병명이에요. 과도기는 있겠지만, 제대로 된 질환 치료를 위해서라도 명칭이 바뀌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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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사건, 결코 처음이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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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직장인 박경준 씨는 열 살 때 1형 당뇨 진단을 받았습니다. 박 씨에게 이번 태안 일가족 비극은 처음 겪는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1년에 한 번은 꼭 일어났던 거로 기억해요. 관리도 쉽지 않고, 경제적인 부담도 크니까 삶을 포기한 분들 이야기를 종종 접하면서 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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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열린 '1형 당뇨병 환우회 긴급 기자회견' 단상에 올려진 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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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우회는 1형 당뇨를 중증질환으로 인정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지난해 대한당뇨병학회가 주최한 간담회에서도 같은 주장이 나왔습니다. 1형 당뇨는 반나절만 인슐린을 투약하지 않아도 케토산증으로 사망할 수 있을 정도로 중증도가 높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중증난치질환을 일정 수준 이상 유지해야 하는 상급종합병원에선 중증질환이 아닌 1형 당뇨를 적극적으로 보지 않고, 진료할수록 적자가 누적된다며 진료를 기피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복지부 관계자는 “요구사항을 내부에서 논의, 검토하고 있다”고 했지만 당장 결론이 나긴 어려워 보입니다. 복지부는 어제 '치료 기간을 특정하여 운영하는 산정특례제도 취지를 고려해 지정 필요성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심장, 뇌수술의 경우는 30일, 암 등의 경우는 5년 등 치료 기간을 한정해 적용하는 제도 특성을 고려하면 평생 관리가 필요한 1형 당뇨는 성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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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영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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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들은 근본적인 해결이 필요하다고 호소합니다. 전향적인 논의를 통해 중증난치질환으로 인정하고 전문적인 교육과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합니다. 또 연령 구분 없이 의료비 본인 부담률을 10% 이하로 낮춰달라고 말합니다. 고가의 기기는 렌털 지원을 추진해달라고도 했습니다.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김미영 대표는 어제 회견에서 이런 내용이 담긴 호소문을 읽다 결국 눈물을 보였습니다. 김 대표는 7년 전, 환자들을 살리기 위해 연속혈당측정기를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들여왔다가 관세청과 식약처, 검찰 조사까지 받은 바 있습니다.

“이제껏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고통과 아픔에 홀로 신음하며 주변 지인에게조차 위로받기 어려웠습니다. 우리는 태안 1형 당뇨 가족의 비극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예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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