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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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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좀 그만 봐” “공부하는 중이거든?”…‘원피스’에서 철학찾기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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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피스로 철학하기, 권혁웅 지음, 김영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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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적 판매 4억6000만부를 돌파한 일본 인기 만화 ‘원피스’. [사진 출처=대원씨아이]


10대 청소년부터 50대 아재까지 탐독하는 전설의 만화가 있다. 1997년부터 무려 26년째 연재되고 있는 오다 에이치로의 ‘원피스’다. 이 초장수 만화를 진지하게 뜯어보고 ‘철학’을 하자고 권유하는 책이 나왔다. 작가는 놀랍게도 ‘광팬’을 자처하는 문학평론가 권혁웅이다.

누적 판매 4억6000만부를 돌파한 이 만화는 열정이 넘치는 소년들의 모험을 그린 전형적인 소년만화다. 하지만 이야기 곳곳에 철학적 사유를 가능케하는 장치를 숨겨놓았다. 저자는 놀랄만큼 집요한 방식으로 피, 땀, 눈물이 흥건한 만화 속에서 데카르트, 흄, 칸트, 스피노자, 데리다 등 철학적인 ‘보물’을 캐낸다.

제목부터 비밀이 있다. 해적왕 골드 로저가 처형당하며 공표한 보물을 찾아보라고 말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이 보물 ‘원피스’의 정체는 여전히 알려지지 않았다. 저자는 전설의 보물을 찾는 여정을 ‘인간의 앎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본다.

원피스는 세계정부의 해군과 대해적들이 대적하는 철저한 약육강식의 세계다. 힘이 곧 정의인 세계에는 비열한 악당들이 즐비하다. 그런데 루피는 “너, 동료로 들어와라!”라고 외친다. 선장과 부하의 관계가 아닌 모두가 동료의 관계다. 절망에 빠져있어도 그를 건져주는 건 동료들이고, 혼자서는 검술도 항해도 요리도 못하는 루피를 동료들은 지켜준다. 질 들뢰즈 식으로 해석하면 밀집모자 해적단은 동료가 들어올 때마다 특별한 중심 없이 퍼져나가는 덩이줄기(리좀) 모델로 설명된다. 리좀이 되기 위해선 유일한 것을 제거하라는 단 하나의 조건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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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고무처럼 신체가 늘어나는 재주 뿐인 루피는 악마의 열매 능력자들 사이에도 몸뚱이 하나로 싸우는 안쓰러운 존재다. 루피의 기술은 고무고무 총, 고무고무채찍, 고무고무 해머 등으로 발전해간다. 자신의 몸을 일직선, 이차원, 삼차원으로 연장해 전투를 벌이는 셈이다. 이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근대인의 상상과 동일하다. 뉴턴과 칸트가 근대를 열어젖힌 시간과 공간에 관한 설명을 루피는 그야말로 몸으로 증명해낸다.

저자는 여기에서 루피가 ‘근대의 지식’을 상징한다고 추론하며, 원피스를 찾아가는 여정은 과학적 지식을 찾아가는 여정의 상징이라고 해석한다. 모험을 시작할 당시 루피는 인간이 오랜 역사를 거쳐서 받아들였던 연장(延長)으로서의 공간을 대표하는 인물로 출발했다. 모험을 겪으며 근대의 과학, 합리성, 유물론을 대표하는 인물로 성장한다. 그는 몸으로 대표되는, 그리고 그 몸의 여러 변형을 통해서 연장에 대한 사유를 확장하는 인물이다. 원피스 세계에서 루피야말로 인간 자신의 토대인 몸 자체를 대표하는 특별한 존재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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