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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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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이제 법조·관료 시대? 나라 이끄는 건 여전히 기업" [박성민 정치의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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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4시간 격정 인터뷰 ②

부·미래는 기업과 기술이 만들어

트럼프가 미국서 평가받는 이유

북 EMP, 일순간 서울 마비시켜

지도자는 핵개발 주장 계속 해야



대한민국 정치는 표 얻는 기술로 전락한 지 오래입니다. 공익보다 사익을 앞세운 정치인들이 야기한 극심한 갈등은 국민을 좌절케 하고 나라를 퇴행시키고 있습니다.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가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정치의 재구성을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는 정치인들을 만나 그들의 진단과 해법을 들었습니다.

첫 번째 인물은 오세훈 서울시장입니다. 지난해 12월 16일 한남동 서울시장 관저에서 4시간 넘게 이어진 인터뷰에서 오 시장은 '정치의 재구성'을 묻는 질문에 역설적으로 "정치를 바꿀 생각이 없다"고 했습니다. 정치란 나라 번영을 이끌고 약자를 챙기는 것, 그게 전부라는 겁니다. 또 정치는 이기심을 다루는 기술이므로 이기심이 꽃 필 수 있도록 만드는 게 보수라고 했습니다. 그는 "국민 절반이 세상 뒤집어졌으면 하는 마음이라면 국민 통합이나 희망찬 미래는 없다"며 "좌파는 말뿐이었고, 보수 우파가 계층 상승 사다리를 통해 상대적 박탈감에 빠진 국민에게 희망을 줘야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인터뷰 주요 내용을 ▶보수가 해야 할 역할과 ▶서울시와 국가가 번영을 위해 취해야 할 지향점, 크게 둘로 나눠 소개합니다.

강찬호·안혜리 논설위원

중앙일보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해 12월 16일 관저인 서울파트너스 하우스에서 박성민 정치컨설턴트와 만나 국가 번영을 위해 정치가 해야할 일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김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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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 (오세훈) 불과 4~5년 전만 해도 안 그랬는데 최근엔 (한국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생각하게 됐어요. 원래 부의 창출은 기업과 기술이 합니다. 이 둘이 서로 시너지 내는 단계에 이르면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어요. 우리가 1등은 많지 않지만 미래 기술에 상당한 경쟁력이 있어요. 배터리, 반도체, 바이오, 양자 컴퓨터 등 갈 길은 멀지만 해볼 만하다는 그런 생각을 요즘 들어 자주 합니다. 기술적으로 초격차 시대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이미 반열에 오른 기업의 기술을 후발주자가 따라잡기 어려워요. 우리가 한창 산업화할 때는 후진국이라 해도 눈썰미 있고 바지런하고 열정만 있으면 따라잡을 수 있는 게 선진국 기술이었어요. 지금은 달라요. 물론 가만히 있으면 도태되죠. 그런 관점에서 정치가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 미래 경쟁력이 그렇게 암울한 정도는 아니라고 얘기하는 겁니다. 국민께 희망을 드리고 싶어요. 다만 인공지능(AI) 이런 첨단기술은 일자리가 따라오지 않는, 고용 없는 성장의 기술들이거든요. 그래서 (서울시가 실험하고 있는) 안심 소득에 천착한 거예요. 획기적인 복지 시스템을 미리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박성민) 정치에 긍정적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더 많다고 보는 것인가요.

A : (오) 미래는 기술과 기업밖에 없어요.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예요. 요즘 전 세계를 풍미하는 스트롱맨 시대의 정치는 자칫 잘못하면 기업과 기술을 옥죄는 기능을 할 수 있어요. 중국에서 나타나잖아요. 시진핑이 경제를 어렵게 만들잖아요. 미국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성인들 보기에는 거칠어도 기업가 출신이라 기업 활동 제대로 하고 기술 발전시키는 데 정치가 장애 사유가 되도록 만들지 않았어요. 미국이 중국에 밀리기 시작할 조짐을 보이니까 속된 표현으로 군기 잡는 걸 시작했죠. 그런 의미에서 미국 사람들이 트럼프를 높이 평가하는 거예요. 어쨌거나 앞으로의 정치는 있는 듯 없는 듯 정치하는 시대로 돌아가는 게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국민이 정치에 관심 안 갖고 정치뉴스 안 보는 나라가 가장 바람직한 이상적인 정치 형태가 아니냐는 생각을 합니다.
중앙일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16일 선거 캠페인 도중 연설을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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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한국을 이끄는 파워 엘리트 그룹을 나눠 봤습니다. 1980년대까지는 맨 위가 군인, 두 번째가 관료, 세 번째가 재벌, 네 번째가 정치라고 생각합니다. 90년대, 그러니까 87년 민주화 이후엔 정치가 맨 위, 두 번째는 역시 관료, 세 번째는 재벌, 네 번째는 언론이었다고 생각합니다. 2000년대가 되자 갑자기 관료가 맨 위로 올라왔어요. 관료는 부처별 기수별로 다 나뉘어 있기에 패권을 장악했다고 동의할 관료는 없을 테지만 제 눈엔 그렇습니다. 두 번째가 재밌는데 갑자기 부각된 그룹, 법조입니다. 헌법재판소는 탄핵심판을 통해 대통령 한 분은 계속하라고, 다른 한 분은 그만하라고 했죠. 정당 해산 명령도 내렸습니다. 대법원은 한일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판결을 했습니다. 군인 시대에는 육사 출신 데려다 썼고 3김 시대에는 운동권 출신 썼는데, 이 두 개의 충원 구조가 끝났죠. 그래서 나타난 파워 엘리트 그룹이 관료와 법조라고 봅니다. 하여간 그 뒤를 잇는 세 번째 그룹이 정치입니다. 군인·재벌·언론은 파워 엘리트 그룹에서 탈락했습니다. 지금 윤석열 정부 시대는 법조 출신 대통령이 행시·외시·사시 붙은 엘리트 관료와 손잡고 정치를 누르는 구도입니다. 문제는 이 세 그룹이 통찰도 성찰도 없는데 과연 대한민국을 끌고 갈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을 누가 이끌고 가고 있다고 보십니까.

A : (오) 기술과 기업이 끌고 가는 겁니다. 재벌·기업 절대 죽지 않았어요. 자본을 축적해서 앞서가는 새로운 기술을 계속 개발하고 그거로 제품과 서비스를 내놓습니다. 옛날에는 건설업이나 제조업으로 승부했다면 지금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바탕으로 하는 문화 상품이나, 반도체 같은 최첨단 과학으로 승부하는 업종으로 옮겨가고 있을 뿐이죠. 한글이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많이 공부하는 언어라고 합니다. 삼성·LG 없으면 가능합니까? 삼성·LG·현대가 죽으면 우리 문화도 같이 무너집니다. 기업이 받쳐주지 않으면 세계가 우리를 그렇게 평가하지 않아요. K팝·K드라마·K 푸드·한글까지 주목받는 이유·는 대한민국 경제력 바탕에 저런 문화가 있었구나, 라는 인식이 바탕에 있기 때문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이제 재벌은 갔다, 이런 분석은 동의할 수 없고요. 법조 엘리트가 뭐를 누르고, 그런 식의 분석은 즐기지 않아요. 뭐든 상관없어요. 표피적인 현상이야. 중요한 건 나라의 지도자가 미래에 뭐로 부를 창출할 것인가, 뭐로 나라의 번영을 유지 관리할 것이냐에 대한 관이 있느냐 없느냐예요. 문재인 전 대통령은 그게 없었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대선에서 거의 대통령이 될 정도의 국민 지지를 받기는 했지만, 기술과 기업의 중요성을 깨달았다는 조짐을 발견한 적이 없어요. 저 사람 머릿속에 과연 기업이 미래를 만들어 간다는 생각이 들어있을까? 기술이 중요하다는 말을 한 걸 본 적도 없어요, 한 번도. 어떤 사람이 지도자가 됐을 때 어떤 나라가 될까를 유심히 살펴보는데 이 대표는 평가나 언급을 한 걸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저 사람이 미래형 지도자가 아니라고 보는 거예요.
중앙일보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해 12월 31일 세계 50개국 3000여 팀의 인플루언서가 참여하는 인플루언서 박람회인 2023 서울콘 크리에이티브 포스 리워즈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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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기업이 전부라고 하셨는데 어떤 산업을 눈여겨보고 있나요.

A : (오) 한국은 다음 단계 경제 발전 단계에 진입하고 있어요. 고부가가치 문화 융합 산업이 중요해요. 다른 최첨단 산업과 달리 이 업종은 사람을 많이 고용해요. 관광, 그다음 콘텐트 산업이 제일 많이 고용을 창출합니다. 경제가 발전할수록 전 세계를 지배하는 건 여가와 놀이 산업이에요. 최첨단 과학기술과 스토리텔링이 합쳐지고, 문화예술이 합쳐지면 엄청난 부가가치가 생기는데 이게 일자리를 만들어요. 양극화 해소에도 도움이 되죠. OECD 선진국들은 GDP의 10~15%를 관광이 창출해요. 우리는 한 3%? 갈 길이 멀어요. 근데 갈 길이 멀다는 건 굉장히 해피한 상황이기도 해요. 시스템만 잘 갖추면 일본을 능가할 수 있어요. 그래서 작심하고 큰 판을 벌였어요. 구독자 몇백만 명씩 가진 전 세계 인플루언서 3000여 명을 지난 연말에 불러 모았어요. 구독자 수 단순합산이 30억 명이에요. 서울에서 제야의 종 치는 걸 3억명이 생중계로 본다는 의미에요. 160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왜 썼느냐고요? 관광객 26명이 들어오면 일자리가 1개 창출된다고 할 정도로 파급 효과가 커요. 그걸 노리는 겁니다.

(박) 서울시가 북한 핵 공격을 받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관련한 생각을 말씀해 주십시오.

A : (오) EMP(핵폭발에 의해 생기는 전자기충격파)를 신경 써야 합니다. 일순간에 블랙아웃 시키기 때문에 선진화한 사회일수록 패닉이 커요. 금융 시스템부터 모든 산업 기능이 완전히 마비되니까요. 한국 사회가 거의 원시시대로 돌아가는 겁니다. 인구 1000만의 대한민국 심장의 기능이 완전히 마비되는 일이 없도록 준비해야겠다 싶어서 두 번 전문가 포럼을 열었어요. 이와 별개로 정치 지도자는 북한 핵이 기정사실화한 이상 자체 핵 개발, 혹은 핵 잠재력을 극대화해 필요하면 6개월~1년 이내에 핵무기를 실용화할 수 있는 단계까지 가는 걸 목표로 해야 한다고 봅니다. 핵 개발이 실제 실현 가능하다고 보지 않아요. 하지만 한국의 유력 정치인이라면 끊임없이, 다양한 시나리오를 계속 얘기해야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5~6년 전부터 얘기했어요. 불가능하다는 거 안다. 그런데 또 세상에 불가능한 건 없다. 모든 건 변한다. 이런 얘기는 학계에서만 하면 안 되고요. 집권 가능성이 1%라도 있는 사람이 해야 해요. 그래야 북한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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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해 7월 안보정책자문단 위촉식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서울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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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저출산·고령화 문제, 서울시 차원이나 국가 차원에서 해법이 있을까요.

(오) 서울시는 종합 선물 세트가 완비돼 있어요.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가치관의 변화를 못 막습니다. 저출산의 바탕에는 가치관의 변화가 있거든요. 애 안 낳고 살겠다, 일 적게 하고 싶다는. '이런 것까지 하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쓸 수 있는 정책은 다 한다고 했어요. 이 세태의 변화를 어떻게 되돌릴 수 있을까요. 결국 부족한 노동력에 대한 해법은 일 안 하려는 젊은 사람들 일을 하게 만들든지, 외국 인력을 쓰든지 이 두 가지잖아요. 그래서 안심 소득을 하는 거에요. 안심 소득은 하후상박, 조금 번 사람은 많이 도와주고 많이 번 사람은 조금 도와줘요. 근데 절묘하게 설계를 해서 결국 총액은 열심히 일한 사람이 더 가져가요. 지금 기초생활 수급 제도는 한 번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되면 일 안 해요. 하고 싶어도 알바라도 해서 한 달에 100만 원 더 벌면 기초 수급 기회 자체를 박탈당하니까요. 이게 서울시가 구사하는 정책이에요. 두 번째가 이민 정책이죠. 그래서 3~4년 전부터 가사도우미 얘기부터 욕먹어가면서 시작했어요. 다행히 정부도 현실을 깨달아 이제 사회 담론이 됐어요. 어떤 비자 제도로 어떻게 끌어들일지는 건 일도 아니에요. 문제는 한국 사회입니다. 한국 사회가 진심으로 이들을 우리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마음가짐이 전제돼야 그 사람들이 여기서 정착을 하기 시작합니다. 단일 민족이니 뭐니 이런 교육을 받아서 심리적 저항이 아직도 커요. 있는데. 저출산으로 인해서 사회의 모든 스탠더드가 바뀌는 데 따라 국민이 수용 태세를 갖추도록 하는 것, 이것이 지금 정치지도자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은퇴자 노동력을 활용하는 겁니다. 일과 자원봉사를 결합한 형태의 일자리를 제공해서 보람을 느끼면서도 일정 소득을 창출할 수 있는가를 한 1000명 정도 실험을 했는데 굉장히 성공적이에요.

(박) 사교육 대책으로 내놓은 서울런이 성과를 거뒀다고 들었습니다.

A : (오) 사실 국가 차원으로 확대할 수도 있다고 보는데, 지난해 사교육 시장 철퇴 분위기가 생겨서 좀 딜레마에요. 서울런이 사교육을 활용하는 방법인데, 대통령실이나 교육부 복지부 모두 기는 분위기라서. 어쨌든 이런 새로운 시도가 전국으로 확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혜택을 받는 사람이 지금 2만 1000명에서 막혀있는데 중위소득 85%까지 확대하면 수혜자가 10만 명 가까이 되거든요. 그러면 대입에서 굉장한 폭발력이 일어날 거라고 봐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0지 사교육 없는 나라는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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