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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연금과 보험

“암 진단 받았는데 보험사가 절대 안믿어요”…보험금 안주고 황당한 얘기만 [어쩌다 세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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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자문 표준내부통제기준 취지 무색
보험금 미지급 목적 악용 사례 잇따라
“이럴거면 보험가입 왜”…소비자 신뢰↓


매일경제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사진 제공 = 연합뉴스]


통계청이 이달 1일 발표한 ‘2022년 생명표’를 보면 2022년에 태어난 아이의 기대수명은 82.7년으로 2002년생과 비교해 약 6년 더 사는 것으로 추산됐습니다. 의료기술이 발전한 데다 생활환경도 점점 개선되고 있기 때문이죠.

이렇게 기대수명이 길어지는 추세다보니 사망할 때까지 암이나 뇌출혈과 같은 중대한 질병을 겪게 되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이에 맞춰 보험사들은 특정 질병에 걸리거나 질병으로 인해 몸에 후유장해가 남는 경우 보험금을 지급하는 상품을 출시해 오고 있습니다. 유병자 보험, 쉽게 말해 기존 질환이 있는 사람들도 가입할 수 있는 보험 상품의 판매도 뜨겁습니다.

그런데 막상 질병에 걸리면 보험금을 지급받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통상 몸에 이상을 느껴 병원을 방문했다가 주치의로부터 암이나 뇌경색 등의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은 후 보험금을 청구하게 됩니다.

그러면 보험사는 청구를 접수한 다음 보험사고(암이나 뇌경색 등 질병의 진단확정)가 발생한 것이 맞는지, 가입 전 발병 혹은 고지의무 위반 등 다른 보험금 부지급 사유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위탁손해사정업체에 조사를 의뢰하게 됩니다.

위탁손해사정업체 소속 조사자는 고객을 만나 동의를 구한 뒤 고객의 병원기록을 확인하고, 손해사정조사 보고서라는 것을 작성해 보험사에 제출한 뒤 그에 대한 보수를 받게 됩니다. 조사자는 자기 마음대로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조사과정 중 보험사 담당자와 조사 방향에 대한 협의를 거치게 되는데, 사실상 보험사 담당자의 의견을 거스르기는 어렵다고 합니다.

질병 보험금 청구 이후 이런 조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그 말 많은 의료자문이 실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의료자문은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 심사 업무에 참고하기 위해 주치의가 아닌 다른 전문의사에게 의학적 소견을 구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보험금 부지급의 근거로 활용된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보험소비자 입장에서는 주치의로부터 받은 진단을 보험사가 의료자문을 통해 부정하고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니 의료자문에 대해 불신이 깊습니다.

보험사는 보험금 지급 여부를 심사할 때 진단의 적정성에 대해서 나름대로 따져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법원도 진단의 기초가 된 검사가 미흡하거나 의학계의 일반적인 진단 기준에 만족하지 못하는 등의 사유가 있을 때는 주치의의 진단을 사후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의료자문을 거치는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제도를 정상적으로 운용하지 않고 보험금 부지급을 위해 악용할 때입니다.

매일경제

의료자문 표준내부통제기준.[자료 제공 = 보험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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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영 법무법인 한앤율 변호사를 통해 사례를 하나 소개합니다.

A씨는 검사를 통해 제자리암에 해당한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주치의는 A씨의 세포를 채취해 슬라이드에 도말해 현미경으로 관찰해 작성된 검사기록지를 토대로 이렇게 진단한 것입니다.

A씨는 진단서를 첨부해 보험금을 청구했습니다. 이후 보험사로부터 위탁받은 손해사정업체에서 조사를 나왔고, 의료자문을 실시해야 한다며 동의서를 요청했습니다. A씨는 동의서를 작성해 줬고, 보험사의 의뢰로 다른 병원의 전문의가 자문회신을 보내왔습니다. 회신 내용은 A씨의 질병이 제자리암에 해당한다는 것이었습니다.

A씨는 이제 보험금이 지급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조사자로부터 보험사 담당자가 자문회신 내용을 인정할 수 없어 다시 의료자문을 시행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A씨는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조사자 말에 따르기로 했습니다.

다른 병원에서 2차 자문이 진행됐습니다. 이 병원에서는 A씨의 슬라이드 2개 중 하나에서는 제자리암이 확인되나 다른 슬라이드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의견을 회신했습니다. A씨는 두 번의 의료자문을 통해 제자리암이 확인됐으니 보험사가 보험금을 지급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보험사는 두 번째 자문내용 중 한 슬라이드에서 제자리암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내용만 기재해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면책 공문을 보내왔습니다. 아전인수격 해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A씨가 보험사에 항의하자 보험사는 오히려 A씨가 1차 자문에 이의를 제기해서 2차 자문을 간 것이라며 사실과 다른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보험금을 받아야 할 사람이 제자리암이 맞다는 의료자문 회신에 이의를 제기할 이유가 있을까요.

이같은 일들이 계속되는 이상 보험사는 의료자문이 보험금 부지급의 근거로 활용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보험사는 의료자문 표준내부통제기준이 제정되고 도입된 취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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