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는 일회용컵 보증금제 전국 시행을 유예하고, 시행 지역도 제주와 세종으로 좁혔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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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제주도의회에서 일회용컵 보증금제의 전국 시행을 촉구하는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의결됐습니다.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컵에 보증금을 매기는 제도인데요. 음료를 일회용 플라스틱 컵이나 종이컵에 담아가면 300원의 보증금을 냈다가 컵을 반납할 때 돌려주는 제도입니다.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사용한 일회용컵은 따로 회수해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친환경 정책이죠.
제주도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제도를 시행해 왔는데요.
1년이 지난 지금, 친환경 정책을 추진해야 하는 환경부에 오히려 지자체가 규제 강화를 촉구하는 상황이 빚어졌습니다. 제주도는 왜 이런 요구를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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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시행 예정이었는데…시행 유예·지역 축소한 '컵 보증금제'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원래 지난해 6월부터 전국에서 시행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환경부는 제도 시행을 20여 일 앞두고 “일회용컵 보증금제 시행을 2022년 12월 1일까지 유예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코로나19 침체기를 견딘 중소상공인의 부담을 가중시킬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하지만 유예기간이 지난 뒤에도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전국에서 시행되지 못했습니다. 정부가 세종시와 제주도에서 제도를 먼저 운영해본 뒤 전국으로 확대하겠다고 방침을 바꿨기 때문이었죠.
현재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제주도와 세종시에 위치해 있으면서, 전국에 100개 이상 가맹점을 갖춘 식음료 매장에서만 운영되고 있습니다.
환경부는 세종과 제주 외 지역은 3년 이내에, 즉 2025년 12월 전에 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제도를 먼저 도입한 제주도는 전국 확대 시행을 앞두고 제도 안착에 나섰습니다.
제도 시행 초기 전체 매장 467곳 중 269개 매장이 참여해 57.6%였던 이행률을, 올해 9월에는 96.8%(총 502개 매장 중 486개 참여)까지 끌어올렸습니다.
컵 반환율도 10%에서 80% 수준으로 높였죠.
서울 등 다른 지자체들도 제도 도입을 준비해 왔습니다. 서울시는 세종과 제주 지역에서의 제도 시행 결과를 바탕으로, 2025년부터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선제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세종시청 내 카페에 설치된 일회용 컵 간이 회수기.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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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 자율 시행도 검토”…환경부 입장 변화에 혼선
━그런데 지난 9월 환경부가 또다시 미묘한 입장 변화를 보였습니다.
지자체 여건에 맞게 컵 보증금제를 자율 시행토록 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이 국회에서 발의됐는데, 이를 함께 검토하기로 한 거죠.
당시 환경부 관계자는 JTBC 취재진에 "시범운영을 하며 현장 목소리를 들어 보니 농촌 지역 등에서도 일률적으로 일회용 컵 보증금제를 운영하는 것이 맞는지, 주민 불편이나 행정비용을 고려했을 때 효과가 있는 건지 등을 고민하게 됐다"며 "제도를 지자체 자율에 맡기고 정부는 행정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같이 놓고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처음에(2020년) 법이 개정될 때 천편일률적으로 법이 도입된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컵 보증금 제도를 전국적으로 시행하는 안마저 철회될 가능성이 생긴 겁니다.
정부 입장 변화에 현장에선 혼선이 빚어졌습니다.
제주도 관계자는 “정부 입장 발표 이후 제도를 시행하다가 이탈한 곳들이 있다”면서 “그동안 전국 확대 시행 등 형평성을 전제로 여러 가지 불편과 민원을 감수하며 동참했던 자영업자들 입장에서는 전국 시행 철회 언급까지 나오니 제도를 더이상 유지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제도 시행을 준비하던 서울시도 난처한 상황입니다. 서울시 관계자는 “환경부가 제주와 세종에서의 제도 시행 결과를 평가하고 개선방안을 마련해 발표하겠다고 했으니, 일단은 그걸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습니다.
일회용컵 보증금제 시행을 중단한 제주도 카페.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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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일회용품 규제 '주춤'…먼저 나서는 지자체
━환경부는 최근 카페나 식당 안에서도 종이컵에 음료를 마실 수 있도록 일회용품 규제를 일부 완화했는데요. 정부가 일회용품 사용 규제에 주춤하는 사이, 지자체들이 친환경 정책을 더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제주도는 컵 보증금제를 제주도 내 일부 매장이 아닌 전체 매장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입니다.
제주도 관계자는 “1년 동안 운영한 결과 컵 보증금제가 이제는 익숙한 생활 습관으로 정착된 상황”이라며 “앞으로는 자영업자를 설득해 제도를 전체 매장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매장 크기나 매출액 등 일정 기준에 따라 단계적으로 시행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다만 제주도가 도내 전체 매장으로 제도를 확대하려면 자원재활용법 시행령이 개정돼야 합니다.
제주도의회가 일회용컵 보증금제 전국 확대와 함께 시행령 개정안 추진을 촉구하고 나선 이유죠. 환경부는 올해 초 자원재활용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지만아직 논의에 진척은 없습니다.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아니지만 다른 형태로 일회용품 감축에 나선 지자체도 많습니다.
울산시는 오늘(13일)부터 울산시청 인근 카페들을 대상으로 다회용컵 사용 시범 운영을 시작했는데요.
매장에서는 일회용컵 대신 다회용컵을 제공하고, 고객이 이를 반납하면 세척해 다시 가져다주는 시스템을 시에서 지원하기로 한 겁니다.
특히 자영업자들이 제도를 운영하면서 불편한 점들을 직접 바꿔나갈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었는데요. 이를 통해 제도 안착과 확대 시행이 가능하도록 한다는 방침입니다.
서울시 역시 다회용컵 사용 매장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일회용컵 보증금제도 전국 시행이 무산되면서 일부 프랜차이즈 카페 등에서는 다회용컵 전용 매장을 자체적으로 늘렸는데요. 서울시는 이런 매장의 다회용컵 세척과 물류비용 일부를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또 텀블러 등 개인 컵을 이용하는 고객에게 음료 가격을 할인해주는 매장에는 300원을 추가 할인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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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 “종합적으로 검토 중…시행령 개정은 어려워”
━환경단체들이 일회용컵 보증금제 시행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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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는 일회용컵 보증금제 확대 시행과 관련해 여전히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입니다.
환경부 관계자는 “제주도와 세종시에서의 제도 운영을 1년 동안 모니터링한 뒤 개선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었다”면서 “제도 시행 1년은 지났지만 결과 분석과 개선방안 마련에 시간이 필요해 내년 상반기쯤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한다”고 말헀습니다.
개선 방안을 마련하면서 제도를 전국으로 확대할지, 지자체 자율에 맡길지도 함께 검토한다는 방침이죠.
다만 제주도에서 요구한 자원재활용법 시행령 개정은 당장은 어렵다는 입장입니다.
환경부 관계자는 “시행령 개정은 지금으로써는 추진이 어렵다”면서 “일회용컵 보증금제 자체의 시행 방향이 안 정해진 상태에서 제도 적용 대상이 크게 늘어날 수 있는 시행령 개정은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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